일본의 정원 기술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나무를 가위로 가지런히 자르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러므로 아주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비원의 뜰이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온 일본 관광객이 비원 한가운데를 걸으면서 '그런데 그 유명한 정원은 대체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다는 웃지 못할 삽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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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인이 지구의 각 국민성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 지구인이 아직 본일이 없는 물건 하나를 길 한복판에 떨어뜨린다.그리고 그들은 하늘에 뜬 원반 속에 숨어서 그것을 줍는 지구인들의 반응을 지켜본다.
그때 그 물체를 줍는 순간 눈앞에 갖다대고 이구석 저구석을 살펴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프랑스인일 것이며, 반대로 귀로 가져가 흔들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독일인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미술과 패션의 천재들을 배출한 프랑스인들은 눈으로 사물을 이해하려고 하는데 비해, 베토벤을 낳은 음악적인 민족 독일 사람들은 귀로 그것을 인식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 투우의 나라 스페인은 어떻게 할것인가. 그들은 눈이나 귀로 가져가지 않고 집어들자마자 두드려 빠개 볼 것이다.
그러나 뛰고나서 생각한다는 스페인 사람들과는 달리, 영국인들은 그 물체를 깨뜨리지는 않을 것이다.소중히 집으로 가져가 며칠동안 끈기있게 이것저것 다 맞추어 볼 것이다.그리고 그 물체가 무엇인지를 각자 몸소 경험한 다음에 가족 전원이 모여 엄숙하게 투표로 결정할 것이다.
(중략)여기서 동서를 대표하는 초강대국 미국과 러시아를 빠뜨릴수는 없을 것이다.그러나 사실은 기대와는 딴판일것이다.그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냥 주울뿐이다. 아무 표정도 없다.귀찮게 머리를 짜낼 필요가 없다는 태도이다.즉 미국인은 줍자마자 컴퓨터에 물어보면 될것이며, 러시아 인은 비밀경찰 KGB에 보고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는 일본인이다.
그들은 눈앞에다 대고 뜯어보거나 귀에다 대고 흔들어 보지도 않을 것이다.또 부숴서 분해해보거나 소매속에 슬쩍 감추지도 않는다.더구나 호기심많은 이들이니 컴퓨터나 비밀경찰에 맡기지도 않을 것이다.그렇다.일본인은 그것을 집어들자마자 재빨리 그것과 똑같은것을 흉내내어 만들어 볼것이다.그것도 같은 크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트랜지스터화하여 더욱 정교하게 수십분의 일로 축소해서 손아귀에 쏙 들어가도록 작게 만들것이다.그리고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고는 '나루호도(그렇군)'라고 무릎을 칠것이다.
--- p.33-34
왜 정원을 섬이라고 불렀는가
자연을 자기것으로 만드려는 방법을 보다 직접적인 조원수단으로 나타낸 것이 '축경'정원이다. 그것은 빌리는 자연으로부터 옮기는 자연으로 대상이 되는 경치 자체를 축소하는 방식이다. 이 축경은 에도 시대의 다이묘 정원뿐만 아니라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본 정원의 역사와 거의 맞먹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스까, 나라 시대에는 정원을 시마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당시 자기 저택에 대규모의 정원을 만든 소가 노우마꼬가 시마노오또도라고 불린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 p.132
'미국 국기에는 의미와 주장이 있어요. 국기가 이미 합중국이라는 나라의 본질을 말하고 있지요. 프랑스 국기는 자유, 평등, 박애라고 씌어 있어요. 소련기는 인민과 피라고 써 있는데, 일본 국기는 아무것도 안 써 있어요. 해님이란 것은 국가 형성 이전의 민족에게나 존경할 가치가 있는 것이지, 이런 것을 종이에 그려서 내거는 국가는 아무 주장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평가 야마자키 씨는 말한다. 일본인에게는 확실히 무이념주의의 일면이 있는 것이다. 나카무라씨도, 같은 불교라도 중국의 천태종이 이를 존중한 것에 비해 일본의 그것은 사물을 강조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 p.156
메를로 폰티의 훌륭한 비유와 같이 인간의 정신은 슬롯 머신처럼 동전을 넣어야 움직이는 수동적인 기계가 아니다. 외계에 대해서, 혹은 사물에 대해서 인간은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의식의 지향성을 갖고 있다. 그것이 물질과 만나게 되면 어떤 의미와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기능이나 성질이 각기 다른 여러 가지 형태의 문화가 있지만, 그것을 자세히 뜯어보면 거기엔 일정한 의식의 지향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개개 언어의 의미보다도 그 언어를 구성해가는 한 기호 자체의 체계 속에서 의식의 한 지향성을 발견하게 된다.
--p.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