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 커피는 처음엔 적셔만 주어야 해. 처음부터 추출되면 안 되지. 그리고 밍밍한 물맛이 나면 안 된다는 것. 물맛 나는 커피는 마치 지루한 결혼 생활 같은 거야.” --- p.29
에스프레소가 입안에 맴돌면서 자아내는 진한 향이 온몸을 자극했다. 혀끝에 닿는 커피는 진하고 고소했다. 신맛과 단맛과 쓴맛이 고스란히 남아 입안에 강한 향을 풍겼다. 에스프레소 한 잔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 듯이 이렇게 강렬하게, 이렇게 아름답게 왜 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폭풍처럼 밀려왔다. --- p.226
처음 커피전문점 이름을 뭘로 할 거냐는 경재의 질문을 받고 효정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폴인러브!’ 하고 말했다. 커피는 효정에게 새로운 사랑의 방식이었다. 커피를 알면 알수록 커피 속에 들어 있는 인생이 보였다. 그 속에 인생의 철학이 있고, 그리고 사랑이 있었다. --- p.230
“인간에게 사랑이 다가오는 그 순간은 이 세상 어떤 감정보다 높고 뜨거워. 사랑은 에스프레소와 같아서 뜨거울 땐 깊고 진하지만 식으면 쓰기만 하지. 식어버리면 더 이상 크레마가 생기지 않는 이치도 똑같아.” --- p.298
계산이 없는 기다림, 계산 없는 사랑이 나에게는 한 번이라도 존재한 적이 있었을까. 편도가 부은 것처럼 목 안에 뭔가가 가득 차올랐다. --- p.333
인생의 매 순간을 최고로 로스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타버리거나 익지 않아 항상 실패였던 자신의 못난 콩들은 어둠 속에 날려버리고 새롭게 로스팅하고 싶었다. 문득 가슴이 뛰었다. 그것은 아마도 이미 지나온 것들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했다. --- p.335
사랑은 나에게 어려운 숙제와 같은 일이다. 사랑은 경이로움과 권태가 함께 새겨진 행운권 당첨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랑은, 태연히 세상 한가운데에 수많은 의문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