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정치이론’이라는 명칭을 더 선호한다. 내가 정치철학과 정치이론을 완전히 다른 과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 반대로, 나는 ‘정치철학’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이 정치이론에서 발견될 수 있고, 그 둘이 겹치는 한, 둘 사이에 중요한 차이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이라는 용어가 순수하게 ‘분석적’ 또는 ‘개념적’ 또는 ‘선험적’인 이론화 작업을 가리키기 위한 것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 책은 (저 용어들에 대한 어떤 이해에 근거할 때에) 그렇지 않은 소재를 포함하고 있다. 철학에 대한 나 자신의 시각은 사실 훨씬 더 넓다. 내 생각에 (최소한, 정치철학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방법은 사실을 우리의 규범적 성찰에 받아들이고 역사를 우리의 개념적 분석의 부분으로 이용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여기에서 논증하기보다는 가정하는 것이다. 아무튼 정치이론은 그런 폐쇄적 경계 정책을 가지고 고민하지 않는다. 정치이론은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곳, 오아시스이다. 그래서 ‘정치이론’이다.”
이 책은 서양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어떤 생각에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신이 곧 발견하게 되겠지만, 생각들의 한 집합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면, 인간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종류의 존엄성을 가진다는 생각은 고대로까지 거슬러 추적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세계 시민”으로 봐야 한다는 스토아 사상이다. 비슷하게, 예절이나 태도의 속성으로서의 존엄성은 수사(修辭)에 관한 고대 로마인의 생각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기독교는 세상에서의 계급과 지위가 참된 존엄성의 원천이라는 생각에 도전하는 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책은 먼저 영어권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였다. 영어권 독자의 문화는 물론 저 서양 전통의 산물이다. 그런데, 고유의 전통이 사뭇 다른 사람들과도 ‘존엄성’이 관계가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 동안 일어났던 엄청난 규모의 악행을 세상이 서서히 기록하기 시작했을 때, 그런 악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그에 맞설 어떤 틀을 모색하는 운동도 일어났다. 저 잔학행위들을 조사해보면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는 그 잔학행위의 상당수가 그들이 행한 일이 정당한 일이었다고 주장한, 예컨대 자신들이 평화롭고 정의로운 미래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예비했다고, 또는 자신들이 공동체를 안에서부터 파괴되지 않도록 지켰다고 주장한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의 희생자들이 마치 그들의 목소리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처럼 하찮게 취급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단지 역사가 나아갈 길에 놓인 장애물이나 심지어 인간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이런 사태에 직면해 인간이 무슨 일이 있어도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마땅히 그렇게 취급되어야 하는 어떤 방식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보였다. 그리고 여러 규약과 조약이 그 목적을 위해 채택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계인권선언은 ‘존엄성’에 핵심적인 지위를 부여했다. 그에 힘입어 존엄성은 그것이 과거에 중요한 용어가 아니었던 나라에서조차 법과 도덕에 관한 논의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쟁점들은, 내가 알기로는, 한국인들에게 특히 설득력이 있다. 나는 최근에 재미 작가 최숙렬의 [떠나 보낼 수 없는 세월]이라는 훌륭한 책을 읽는 행운을 얻었다. 이 책은 할아버지와 살고 있는 소녀 숙안의 눈을 통해 일제강점기에 한국인들이 겪은 고통을 독자로 하여금 경험케 한다. 그 시기에 숙안과 다른 한국인들이 당한 잔인한 행위들은 정말 끔찍한 것이었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우리가 책에서 읽게 되듯이, 고요하고, 인내심 많고, 지혜로운 숙안의 할아버지의 모습이 쉴러와 같은 저자들이 엄청난 압제와 수난의 시기에 존엄의 미덕을 보이는 일에 관해 얘기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것을 정확히 재현한다는 것이다. 그런 경험들을 반성하고, 다른 무엇보다도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어떻게 우리가 막을 수 있을지를 생각할 때에 당신이 이 책에서 도움이 되는 어떤 아이디어들을 발견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저자의 말」중에서
이 책은 하버드 대학 정치학과 교수 마이클 로젠이 2012년에 출간한 책 Dignity: Its History and Meaning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로젠의 책은 한국에서 지금껏 소개된 적이 없고, 마이클 로젠이라는 학자도 한국에서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것이 이 책이나 이 학자가 번역되고 소개될 가치가 없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아직 우리에게 낯선 마이클 로젠이라는 학자의 사유를 소개하기에 내용면에서나 형식면에서나 매우 적절해 보인다. 비교적 얇으면서도 가볍지 않고, 실제적 문제를 다루면서도 높은 수준의 이론적 추상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이클 로젠은 1952년에 영국에서 태어났다. 1970년에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가 정치학, 철학, 경제학을 공부했고, 그 후 2년간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연구했으며,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1980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헤겔의 변증법과 그에 대한 비판에 관한 것인데, 지도교수가 바로 저명한 헤겔연구자이자 공동체주의 철학자 찰스 테일러이다. 로젠은 그 후 20여 년 동안 옥스퍼드 대학과 런던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정치학과 철학을 가르쳤고, 2006년부터 지금까지 하버드 대학 정치학과에서 정치철학 (그가 선호하는 표현으로는 ‘정치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주요 관심 분야는 독일 관념론, 헤겔, 마르크스, 아도르노, 그리고 롤즈와 현대정치철학이다. 1982년에 헤겔의 변증법에 관한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을 책으로 펴냈고, 1993년에 칸트의 [유고집(Opus Postumum)]을 번역했으며, 1996년에는 허위의식과 이데올로기에 관한 책 [자발적 예속(On Voluntary Servitude)]을 출간했다. 그 밖에도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리 많지 않은 저술과 논문에서 독일적 전통의 사회철학에 대한 저자의 관심이 대체로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 책 [존엄성]에서도 유럽 대륙철학에 대한 저자의 깊은 이해와 관심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 책은 ‘존엄성’에 관한 것이다. 존엄성은 유럽어의 번역어이다. 물론 ‘존엄(尊嚴)’이라는 한자어가 과거에 이 땅에서 한때 지녔던 구별되는 의미가 있을 것이고, 오늘날 이 땅에서 일상어 ‘존엄(성)’이 영어 ‘dignity’와 다르게 지니는 의미가 또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존엄성은 기본적으로 번역어이다. 한국어 ‘존엄(성)’은 서양에서 ‘dignitas/dignity’라는 단어가 함축할 수 있는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의미를 ― 그것을 이 책에서 저자는 세 개의 가닥으로 구분하여 제시하는데 ―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이 책에서는 ‘dignity’를 맥락에 따라 ‘존엄’으로도, ‘위엄’으로도, 때로는 ‘품위’로도 옮겼다. 한국어 ‘존엄(성)’만으로 이런 개념사적 논의와 정치이론적 분석을 전개한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언어가 이미 번역어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육체적 삶과 정신적 삶이 모두, 서구를 힘의 중심으로 하는 지구화한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작업이 오히려 우리의 실제 삶에 대해 배반적일 수 있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이 책을 읽을 때에 한국어 ‘존엄(성)’뿐만 아니라 영어 ‘dignity’를 동시에 그 속에서 읽어야 할 것이다. 사실, 저자 역시 영어권 독자들에게 ‘dignity’라는 단어 속에 숨어 있는 의미의 차이들을 의식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니, 거기에 한국어와 영어/유럽어의 차이를 추가하라는 것이 그리 큰 요구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차이를 의식할 때에 비로소 우리에게 사고 작용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 추천자인 디터 그림도 얘기했지만 ― 이 책은 우리의 지성을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자극하는, 사유를 촉발하는 책이다.
---「옮긴이의 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