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현승이 노래한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특히 다음 문구를 강조한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지만 술잔의 절반은 보이지 않는 눈물이다.” 이 시를 읽는 것은 술과 눈물에 대해서 생각해보려는 의도에서다. 만약 술을 만들어 파는 기업이라면 경쟁기업보다 더 향기가 좋고 색깔이 고우며 마시기 편한 술을 개발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술을 개발하고 나면 경쟁기업보다 더 싼 가격으로 판매한다. 기업에서는 이를 ‘혁신’이라고 부르며 사활을 걸고 추진한다. 모든 기업은 혁신을 추구한다. 그러나 정작 이 술을 마시는 고객은 기업이 어떤 혁신을 이뤘는지 알지 못한다. 고객은 기업의 혁신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는 이 술을 마시면서 어떤 눈물을 흘릴지가 더 중요하다. 술을 다 마시고 나면 술잔이 마른다. 그러나 술잔이 말라도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눈물은 눈에는 보이지 않고 고객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술을 만드는 기업이라면 술이 아니라 고객의 눈물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은 제품이 아니라 고객의 마음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 p.14~15
술잔의 절반은 눈물이라는 사실은 기업이 제품의 코모디티화(Commoditization, 제품의 기능이 더 많아지는데도 불구하고 가격은 오히려 하락하는 현상)를 해결하는 힌트가 된다. 제품에 더 많은 기능을 추가하면 가격도 덩달아 올라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을 지나면서 가격은 오히려 하락하기 시작한다. 제품이 평범하고 진부해졌다는 의미다. 진부한 제품을 구입할 고객은 없기 때문에 자연히 가격도 하락한다. 코모디티화는 기업의 고민이다. 어떤 제품이라도 시장에서 히트하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히트기간이 끝나면 제품의 가격이 하락하고 기업 간에 가격경쟁가격경쟁이 일어난다. 서로 가격을 할인해 고객을 확보한다. 가격경쟁의 끝에는 공짜가 기다리고 있다. 제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같이 최첨단 기술이 포함된 제품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술이 아니라 눈물에 주목해야 한다. 코모디티화는 제품에 대해 발생하는 현상이지 고객의 눈물에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 p.42~43
혁신적인 제품을 궁리할 때는 동종업계나 경쟁자가 아니라 고객을 보아야 한다. 이를 잘 말해주는 경영자가 있다. 세븐일레븐의 스즈키 도시후미 회장이다. 세븐일레븐은 40년 전 일본에 도입된 최초의 편의점이다. 이 기업을 크게 성공시킨 스즈키는 지난 40년 동안 다른 기업이 운영하는 편의점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비슷한 형태로 편의점을 운영하는 경쟁기업은 고객이 아니기 때문이다. 편의점은 글자 그대로 고객이 편하게 들어와서 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고객이 편하다고 느끼는지 알려면 경쟁기업이 아니라 고객의 생활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 p.53~54
모든 고객을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은 모든 고객을 차별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단골고객과 어쩌다 한 번 온 고 객을 공평하게 대하는 것은 단골고객의 관점에서는 차별하는 것이다. 기업은 고객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구분해야 한다. 고객을 구분하는 마케팅 방법을 이용해서 제품으로 판매하는 기업이 있다. 바로 일본의 에이벡스 스포츠다. 이 기업은 2015년부터 아트레트 클럽(Athlete club)이라는 브랜드로 유료 SNS 회원제도를 판매하고 있다. 운동선수는 유료로 페이스북 사이트를 개설한다. 만약 이 선수와 소통하려면 회비를 내고 유료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 유료 프로그램 중에는 프로야구 선수 출신의 야구평론가가 개설한 것도 있다. 이 프로그램에 가입하려면 매월 100만 원을 내야 한다. 회원 수는 최대 두 사람으로 한정한다. 두 사람의 회원과 소통하고 공유하는 내용은 다른 프로그램보다 깊이가 있다. 만약 회원이 인생의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직접 만나서 대화하면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용기를 준다.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페이스북에 더해서 실제로 만나고 대화하면서 소통한다. 이러한 소통은 고객을 구분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 p.101~102
로토제약은 주로 안약을 판매했다. 2014년의 매출액은 1조 2000억 원이다. 이 기업에서 개발한 ‘하다라보’라는 브랜드의 화장품은 2014년에 약 1400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려 일본 화장수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크게 히트한 화장품을 제안한 것은 당시 입사 1년 차 직원이었다. (…) 새로운 개념의 화장품을 제안한 신입사원은 어느 날 임원에게 재미있는 물질이 있다고 설명했다. 히알루론산이라는 물질인데 이 물질 1그램이 6리터의 수분을 흡수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특징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혁신적인 화장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을 들은 임원은 강한 흥미를 보였고 즉시 직원 4명으로 개발 팀을 꾸리게 했다. 여기서도 파격적인 행보가 이어졌다. 대기업에서 팀을 구성할 때는 대부분 직책을 중심으로 피라미드 구조의 팀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로토제약에서 구성한 4명의 팀원 가운데 3명은 20대의 새파란 직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