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와 쓰기는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읽기와 쓰기는 각각 단독으로 단련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잘 읽고 싶다면 쓰기를 전제로 읽어야 하고, 잘 쓰고 싶다면 누군가 내 글을 읽을 거라는 전제하에 써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읽고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며, 어떤 주제와 어떤 형식이 주어지든 막힘없이 써내려갈 수 있다. _ 14쪽 자기표현이 서툴고,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자기 어필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아니, 아무리 말을 잘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글의 힘을 이길 수 없다. 말은 순간순간의 생각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논리적 오류가 생길 수 있고,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로 곤경에 빠질 수도 있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생각이 정제되어 있고 논리정연하며 명료하기 때문에 훨씬 강력하다. --- p.23
원고지 10장을 쓸 수 있는 힘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모두가 쓸 수 있다. 또 10장을 쓸 수 있게 되면 다음은 20장, 30장 이렇게 양을 늘려가는 건 훨씬 쉽다. 게다가 글쓰기도 결국 몸이 기억하는 작업이다. 원고지에 연필로 써내려가든, 컴퓨터에서 자판으로 써내려가든 글쓰기도 몸이 기억한다. 몸이 같이 훈련되는 한 글쓰기 능력 역시 영원히 기억된다. --- p.80
내 경우에는 글을 쓰기 전에 발문을 나열하여 먼저 목차를 만든다. 발문만으로도 훌륭한 목차가 된다. 목차가 완성되었다고 하는 것은 이미 그 사람은 ‘쓸 수 있다’는 말이다. 글의 기본 구조는 질문을 만들어 거기에 대답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 p.93
글도 마찬가지다. 아니, 뉴스보다 더욱더 결론을 앞에 배치해 읽는 이의 관심을 집중시켜야 한다. ‘말’은 그나마 처음에 좀 지루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더라도 조금은 들어줄 만하지만, 글은 처음에 읽었을 때 바로 지루함을 느끼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으면 그다음은 아예 읽으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 p.111
우리들은 상대가 쓴 글이나 말에서 그 사람의 인격과 능력을 미루어 짐작한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경험을 쌓아왔으며, 앞으로 어떤 미래가 있을까 등. 이러한 종합적인 판단을 글과 말을 통해 내리는 것이다. 사회는 냉혹하다. 학교에서처럼 첨삭을 해주지도 않고 실수를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그저 아무 말 없이 관계를 끊거나 일의 의뢰를 줄이거나, 때로는 커뮤니티에서 은근히 방출시키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독서와 글쓰기는 이 냉혹한 사회를 헤엄쳐 건너가는 수영법을 몸에 배게 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