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민 (shine@yes24.com)
'비가 올 것 같다' 는 느낌을 알고 계세요? 팔, 다리가 쑤시는 신호나 제비가 날고, 개미들이 바삐 움직이는 그런 신호가 아닌, 꾸물거리는 하늘의 저 하늘 '색'에서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요. 어린 시절, 저희 집 거실에서 내다보면 이층 집이 보였는데 그 집 옥탑방에 칠해진 페인트 색과 하늘의 색 (푸른 하늘색이 아니라)이 꼭 같아지면 비가 오곤 했습니다. 그 색은 참 오묘했지요. 노란빛도 푸른빛도 그렇다고 완전한 잿빛도 아니었답니다. 이 책에서는 그런 하늘색을 또렷이 기억나게 합니다.
비가 오는 소리를 알고 계세요? 덜 잠근 수도꼭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아니라 시계초침 소리가 째각째각 크게 들릴 만큼 고요할 때에 지붕 위로 떨어지기 시작해서, 창문을 두드리고, 처마 밑으로 굴러 떨어져 홈통으로 흘러나오는 힘센 빗소리 말이에요. 이 책에서는 귀 귀울이며 들었던 그 소리를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비가 오는 세상을 상상해 보셨나요? 집들이 꽉 들어찬 도시와 골목 어귀는 물론이고, 새들이 앉아 있던 온 들판과 언덕, 이름 모를 풀이 뒤덮인 풀밭 위에도 골고루 내리는 비가 오는 장면을요. 비는 개구리가 울고 있는 연못도 빠뜨리지 않고 골고루 내리며, 빗줄기가 굵어지면 내를 이루어 강을 지나 마침내는 바다에 이른답니다. 그러면 바다는 더 세차게 파도를 만들고 파도와 파도가 부딪히며 높이 솟구쳐 오르기도 하지요. 하늘로 부터 그은 빗줄기가 바다로 이어져, 바다는 점점 넘실넘실 부풀어 오르고, 하늘에 닿을 것처럼 녹아 듭니다. 그 무한한 공간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빗줄기가 흘러 흘러 작은 웅덩이를 만들게 되면, 소녀는 진흙땅을 신나게 뛰어보고, 작은 배를 띄울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 그리고 군데군데 물 웅덩이가 보여주는 구름을 한 조각 한 조각 뛰어넘을 거랍니다. 소녀는 알고 있습니다. 비갠 뒤 하늘에는 햇빛을 받아 무지개가 피어 오르고, 충분히 물을 머금은 새싹이 움트고. 거리는 온통 깨끗하게 변해 있을 것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소녀는 사실 밖을 내다보지 않고도 비가 오는 것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만으로도 비를 기억하고 있던 것이지요. 우리는 그 다음부터 소녀가 들려주는 비 오는 풍경을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중에 유리 슐레비츠의 책을 보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분도 있습니다. 유리 슐레비츠의 리얼리즘을 살린 환타지 그림책을 보다 보면 그만의 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지요.
이 책은 화려한 문체와 화려한 그림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 독자들에게는 비와 세상에 대한 생각의 자리를 넓히고, 어른 독자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그 비와 세상을 다시 생각나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