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세계로 탐구여행을 떠나면서
‘속세를 떠난다’는 의미의 속리산 소재, 법주사 보리수나무 밑에서 서문을 쓴다. 그렇다고 불자(佛子)는 아니다. 어린 시절 마음이 울적할 때 자주 찾아와 사색하던 곳이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왜 미운 오리새끼인가, 압박과 갈등에서 벗어날 길은 없나?” 이 당시 고민하던 주제들이다. 30∼40년이 지난 오늘 그런 생각과 고민을 가슴에 묻고 심리연구가로서 그 마음의 근원을 찾고자 이 자리에 다시 왔다.
이 책은 2007년에 낸 철학사상서 (존재냐? 가치냐!)『인간이란 무엇인가』(한림원)의 후속편이자 15번째 저서이다. 전편에서는 생명, 영혼, 삶의 가치, 그리고 죽음을 조명했다. 이번 후편에서는 전편의 미제로 남긴 ‘마음의 기원과 정체’를 밝혀 보고자 한다. 진화생물학과 인지과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심리를 조명하는 책으로 2005년에 낸『바이오 혁명 그 현장』(한림원)의 후속편이기도 하다. 진화심리연구서이다. 전편에서는 죽음을 통해 인간의 삶의 ‘가치’를 조명한 반면 후편에서는 마음을 통해 인간의 ‘존재’를 조명한다.
언론계에 입문(1978년 3월 20일)한 지 만 30년이 되는 해에 이 책을 내게 되어 더 뜻깊게 생각한다. 수습 동기 구운회·이영만(경향신문), 박영배(한국경제신문), 길윤석(서울경제신문), 김철호(MBC), 최용현(세계일보)과 함께 자축한다.
마음이란 보여질듯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불가사의’한 것을 하나하나 풀어 보려고 하는 것이 바로 마음에 대한 연구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 심리학이다. 인간에 대한 의문점은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그 ‘마음’이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행동, 모든 육체적인 변화를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마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연구해 가다 보면 인간이라는 정체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마음은 어디에 있고, 실체는 무엇이고, 움직이는 동력은 무엇인가? 너와 나, 아니 우리 인간 모두는 외모로 보면 육체만이 존재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 속에 담긴 마음으로 존재한다. “마음에 든다. 당신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라는 등으로 그 존재가 표현된다.
최근에는 진화심리학이 새로운 학문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학문의 이름이 복합어로 돼 있는 경우 뒤쪽에 있는 단어가 그 학문의 계보를, 앞에 있는 단어가 학문의 대상, 목적, 특성, 등을 나타낸다. 따라서 진화심리학은 심리학에 속하는 학문이며 그 대상이 진화 현상인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진화현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연구한다. 흥미 있다. 이 책도 진화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마음을 조명한다. 1장에서 동물과 마음의 세계, 2장에서 인간의 감정, 3장에서 소유와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심리를 살펴보고 4장과 5장에서 인간 및 남녀의 심리를 진화적인 측면에서 조명한 다음, 끝으로 6장에서 사색과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은 진화심리학서이면서 동물학이고, 심리철학서라고 생각한다. 즉 인간의 마음을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진화생물학, 인지과학, 동물학, 종교?철학적으로 조명, 그 정체를 밝혀보고자 하는 것이다. 사진으로 마음을 담을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유·소년기를 농촌에서 보내 산과 들과 하천의 동식물 생태와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의식, 무의식 중에 관찰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청주) 이후 도회지에 나와 살면서 때묻지 않은 자연의 농심과 삭막한 도회지의 인심을 심적 고민과 갈등 속에 대비 체험적으로 느끼며 ‘인간은 왜 이리도 마음이 다르고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 대학에서 철학과 아동심리를 공부하고 사회에 나와 언론인으로 민족사관과 정보산업에 대한 연구를 한 다음 대학원에 진학, 잇따라 경영학(조직심리)과 전산공학(인지과학)을 공부한 후 다시 생명공학, 정신문화, 철학사상, 진화심리에 대한 연구를 하고 50대 후반이 되어 그 의문에 도전하는 것이다. 자연과 생명과 인간과 심리는 결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모두가 연관돼 있다. 저자가 유?소년기 함께한 남한강 상류의 충청도 산골 ‘천왕고원’의 자연은 이 책을 쓰는 근원이다. 중학교 때까지 호롱불 밑에서 공부하며 함께 했다. 진화심리학도로서 자연에 감사한다. 자연은 삶의 교과서로 우리가 사는 길을 알려준다. 무지해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 시간이 지나면 아! 그렇구나 하고 인식하게 된다. 자연 속에 우리가 사는 길이 있다.
이 책을 내면서 특히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저자는 어린 시절 어른들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정체성 혼란으로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초(浮草)처럼 자라, 말 못할 마음의 고통과 상처를 많이 받았다. 이에 자식들만큼은 아비의 그런 전철을 받지 않게 하려고 애써 왔으나 어미의 보상심리로 자식들도 그런 아픔을 겪고 있어 아비로서 마음이 아프다. 저자는 저술가로서 지금까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왔는데 자식들한테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아비로서의 자책이자, 저술가로서의 고백이다. 그러나 역설적인 말이나 이같이 부초처럼 살아왔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고 사심없이 국가와 민족에 대한 생각을 키우며 이타적으로 세상을 살 수 있었다. 즉 관조(觀照)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이 책을 쓰는, 저자가 갖는 마음의 눈이다.
‘내가 진정 나인가?’ 집필 중 내내 고민한 자문이다. 내 마음도 내가 모르는데 내가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자기 마음을 자기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기 속에 잠재된 자아는 본인도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본능의 경우 ‘유전정보’에 따라 자기 몸 속에 내재돼 있지만 본인이 인식하지 못한다. 여성들로부터 짐승으로 치부되는 남성의 성욕이 대표적인 그 예.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도때도 없이 충동한다. 사춘기 이상의 사내들만 아는 비밀이다.
‘마음을 비우라’ 특히 큰일을 앞두고 자주 쓰는 말이다. 마음을 비우려면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타인의 삶은 주체적인 자아를 상실, 자기를 비우지 못한다. 마마보이가 한 예다. 그릇이 있어야 그 무언가를 담고 비울 수 있는 것이다. 그 그릇 자체가 바로 존재인 자기이다.
“40대 남자가 바다에 빠진 자신의 자녀 2명을 포함해 어린이 6명을 구하고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2007년 8월 1일 오전 10시 10분께 전남 여수시 화정면 자봉도 앞 바다에서 물 놀이를 하던 김모(13)군과 김군의 동생(12)을 비롯한 어린이 6명이 물에 빠졌다. 이를 본 김군의 아버지(43)와 강모(44)씨 등 성인 남성 3명이 물에 뛰어들어 가까스로 어린이 6명 모두를 구조했으나 김군의 아버지는 힘에 부쳐 육지로 나오지 못하고 숨졌다. 목격자 강씨는 ‘물살에 떼밀려가는 아이들을 모두 구조한 뒤 김씨가 힘에 부쳐 실종된 것 같다’고 전했다. 실종 신고를 받은 여수해양경찰서는 경비정 2척 등 선박 4척과 잠수부들을 동원해 인근 해상을 수색해 이날 오후 3시 15분께 김씨의 사체를 인양했다. 충북 충주시에 사는 김씨는 친목회 소속 네 가족 16명과 함께 자봉도로 휴가를 왔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에 난 기사이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인가, 아니면 자식을 구한 부성(父性)인가? 자식을 죽게 하는 부모는 없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목숨(생존)을 버리는 것은 그 자기의 연장(번식)이다. 종족보존은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생태적 본능이다. 여기서 생명체의 모든 것은 출발한다. 인간의 마음도 여기서 나온다. 즉, 마음은 진화생물학적 측면에서, 종족보존에서 연유한다는 말이다.
『메이팅 마인드』의 저자 제프리 밀러는 “아무리 생존능력이 뛰어난 호미니드(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동굴에서 발견된 사람과의 동물)라 할지라도 섹스 파트너를 유혹해 자식을 낳지 못한다면 결코 우리의 조상이 될 수 없었다”고 강조한다. 번식하지 못하는 생존은 진화상으로는 사멸이다. 인간의 진화에서 성선택이 가지는 중요성을 이보다 더 분명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음을 탐구해 들어가다 보면 최종적으로 번식과 만난다. 국내외의 세계적인 진화 생물?심리학자들과 ‘마음의 세계’로 탐구여행을 떠난다.
저자 신 충 우(申 忠 雨)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