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옹담록≫의 편찬자로 알려진 나엽의 생평에 대해서는 현재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제1권 갑집(甲集)의 표제어 아래에 보이는 ‘여릉 나엽 편(廬陵羅燁編)’이라는 기록을 통해 그가 지금의 장시성(江西省) 지안(吉安) 사람이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이 책에 수록된 내용과 어투를 볼 때, 나엽이 주로 활동했던 시기는 송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취옹’이라는 두 글자는 원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잘 알려진 구양수(歐陽脩)의 호인데, 구양수 또한 북송 시기 여릉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나엽이 책 제목을 정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남송 시기에 중국 전설상의 역사적인 일들로부터 풍속과 지리 등을 논술한 ≪노사(路史)≫ 47권을 편찬했던 나필(羅泌)과 고향이 동일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즉 여릉 지방에는 나씨(羅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데, 나엽은 비록 관직에 오르지 못해 정사(正史)를 비롯한 다른 문헌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집안 분위기와 주위 환경으로 인해 상당한 학식을 갖추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당시 중국의 상층 문인들이 소설을 경시하는 풍조 속에서 나엽처럼 ≪취옹담록≫과 같은 통속적인 내용의 책을 자신의 이름을 걸고 편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서의 서문에 해당하는 <소설인자>와 <소설개벽> 두 편의 글에서는 당시 소설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학식과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 도드라져 보인다.
역자 : 이시찬
이시찬(李時燦)은 중국 고전소설을 전공했다. 성균관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한 뒤 타이완 국립정치대학교에서 <취옹담록 연구(醉翁談錄硏究)>(2002)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베이징대학교에서 <송원 소설가 화본 문헌 전승 연구(宋元小說家話本文獻傳承硏究)>(2007)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사상과 문화로 읽는 동아시아≫(공저,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9)와 ≪고대소설 관련 논문 목록≫(공저, 학고방, 2009)이 있으며, 그 외에 <명(明) 만력(萬曆) 시기소설 선집의출현과형식적특징>을 비롯한 10여 편의 연구 논문이 있다. 중국 역사상 각 시기의 문화적 배경과 해당 시기에 출현한 소설의 특징 및 관련성을 연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중국 문학을 토대로 인문학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 방법론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BK21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화사한 봄볕 아름다운 꽃은 여인네 심정 스산한 달빛 차가운 바람은 사나이 마음. 세 치 혀에 기대어 이야기하지만 천하의 깊고 얕은 이치를 논하네.
●[소설은] 나라의 역적과 간신배와 방종하고 아첨하는 무리를 이야기해 어리석은 백성들을 분노하게 하고, 충신의 억울한 원한을 이야기해 무쇠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도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귀신과 괴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도를 닦은 사람이라도 간담이 서늘해지고, 여인네들의 원한에 대해 이야기하면 재자가인(才子佳人)들도 슬픔과 우수에 잠긴다. 뛰어난 영웅들이 서로 다투는 이야기를 하면 도를 닦은 사람이라도 통쾌한 기분을 느끼며, 군대가 진을 치고 싸우는 이야기를 하면 용감한 사나이가 웅대한 뜻을 품게 된다. 여몽정(呂蒙正)이 청운의 꿈을 실현하는 이야기를 하면 재주 많은 선비들은 많은 책에 관심을 갖게 되고, 석가모니가 쌍림에서 대낮에 하늘로 올라간 이야기를 하면 숨어서 도를 수련하는 은자들이 초심대로 도리를 공부하게 된다. 입신출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미천한 집안의 사람도 분발하게 되고, 의리를 저버리고 배신한 이야기를 하면 간사한 사내가 부끄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눈썹, 눈, 코, 입, 이 네 가지에는 모두 신령함이 깃들어 있다. 하루는 입이 코에게 말했다. ‘자네는 무슨 능력이 있기에 나보다 위에 있는가?’ 코가 말했다. ‘내가 좋은 냄새와 악취를 구별한 후에야 자네가 비로소 먹을 수 있으니까 내가 자네보다 위에 있네.’ 이번에는 코가 눈에게 말했다. ‘자네는 무슨 능력이 있기에 나보다 위에 있는가?’ 눈이 말했다. ‘내가 아름답고 추한 것을 관찰하고 방향을 살피는 데 그 공이 적지 않으니 마땅히 자네 위에 있네.’ 그러자 코가 또 말했다. ‘그렇다면 눈썹은 도대체 무슨 능력이 있기에 또 나보다 위에 있단 말인가?’ 눈썹이 말했다. ‘나 역시 그대들과 이런 일로 논쟁하는 이유를 모르겠네. 내가 만약 눈 밑이나 코 아래에 있다면 자네가 얼굴을 어디다 둘 것인지 모르겠네.’
●귀한 집 도련님이 예전에 훌륭한 말과 수레를 타고 또 많은 돈을 가지고 우리 집에 왔다가 하루아침에 탕진했죠. 우리 모녀가 계략을 짜서 그를 쫓아내고 그 뜻을 잃게 했으니 인륜을 저버리고 말았어요. 하늘을 속이고 사람을 배신했으니 천지신명도 우리를 돕지 않을 겁니다. 지금 어머니는 예순이 넘었는데 앞으로 20년 동안 입고 먹을 비용을 챙겨 드릴 테니 저를 자유롭게 놓아주세요. 저는 마땅히 이 사람과 다른 곳에서 함께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