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에서 천인관계론은 의심할 것 없이 중국 전통사유를 규정하는 특징적인 문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천인관계에 대한 문제는 이미 흘러가 버린 역사의 긴 강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현실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어떤 분야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다. 따라서 역사상의 천인관계론 및 그것의 현실에의 영향에 대하여 깊이 있게, 그리고 전반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연구는 중국철학의 특징을 밝히고 역사의 유산을 청산하면서 챙겨야 할 ‘알맹이’(精華)와 버려야 할 찌꺼기를 구별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곽말약(郭沫若)이 30년대에「선진 천도관의 발전」(원제:「先秦天道觀之進展」)이라는 논문을 쓴 뒤로 현대의 많은 학자들이 중국 역대의 천인관계론을 연구하였고, 또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하고 제고해야 할 일련의 문제들이 남아 있다.
현재까지 연구 성과를 볼 때, 역사상의 개별 사상가의 천인관계론에 대한 연구, 예를 들면 순자의 “하늘과 인간의 구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明於天人之分)와 같은 이론은 비교적 깊이 연구되었다. 그러나 체계적이고 총체적이며 거시적인 연구는 아직도 부족한 것 같다. 대만 학자 양혜걸(楊慧傑)은 『천인관계론(天人關係論)』5pt; COLOR: #282828; FONT-FAMILY: 'HY신명조';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 또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면서 현실에 근거한 거시적 연구가 요청된다. 이러한 연구는 반드시 정확한 미시적 연구의 기반 위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또 많은 역사적 문헌에 대한 치밀하고 객관적인 고찰에 기초하여야 한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서 하루아침에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장기적 과제이다.
다른 한편에서 볼 때, 몇몇 연구자들은 천인관계론을 단순히 자연관, 혹은 우주론(cosmology)의 영역으로만 한정한다. 그러나 중국 역대의 천인관계론에서 다루어진 철학적 문제는 매우 광범위하다. 그것은 자연관이나 우주론적 문제를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적어도 인식론, 인성론, 역사관 등 다방면의 문제를 포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위에서 지적한 단순화한 견해로부터 출발한다면 3000여 년 동안 진행된 천인관계론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이 귀중한 유산을 과학적이고 총체적으로 개괄해 낼 수도 없을 것이다. 단순화의 또 다른 표현은 역사상의 천인관계론을 유신론과 무신론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만 구분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유신론의 형태를 또 ‘천명관’(天命觀)으로 개괄하는데, 이것은 매우 부당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천인관계를 둘러싼 문제의 하나로서 유신론과 무신론의 투쟁이 있었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복잡하고 착종된 모캅 대립적 사상 및 학파가 존재하였다. 따라서 그것은 진지한 연구와 치밀한 분석을 요구한다. 천인관계의 형태를 단순하게 두 가지로 구분하는 예로는 당대(唐代)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유우석(劉禹錫)의 다음과 같은 지적을 들 수 있다. “세상에서 주장하는 하늘에 관한 견해는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하늘이 선행을 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악행을 저지른 사람에게 재앙을 내린다는 이른바 ‘음즐설’(陰?說;재앙은 반드시 자기가 지은 죄로부터 말미암고, 복록은 반드시 자기가 행한 선행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주장을 중심으로 한 학설을 가리킨다)이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이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한 ‘자연설’(自然說)이 그것이다. 그러나 유우석은「천론」에서 자신의 철학적 이론을 전개할 때 실제로 이 두 가지 형태를 지양하면서 천명결정론에 중점을 두고 분석하였다. 이러한 논점은 ‘자연설’과 다를 뿐만 아니라 ‘음즐설’과도 다르다. 가령 우리가 천인관계론의 역사를 분석한다 하더라도 1000여 년 전 옛 철학자들의 견해에 총체적으로 접근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
천인관계론에 대한 오늘날의 연구에서 발견되는 다른 하나의 중요한 결함은 천인관계론이 가지고 있는 현실성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역사적 사실의 고증에 매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면 당대 중기의 ‘천론’ 발생의 구체적 연대를 고증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매우 중요한 것이며, 특히 그것은 거시적 연구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만약 역사상의 어떤 구체적 관점이나 구체적 사건의 고증에 만족해 버리고 그것의 현실에 대한 영향이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는다면, 심지어 옛 문헌을 줄줄이 늘어놓기만 한다면,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역사발전 법칙을 개괄해 낼 수 없을 것이며, 또 그것은 중국철학의 특징을 설명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중국 역대의 천인관계론에 대하여 체계적이고 총체적이며, 또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면서 현실에 근거한 거시적 연구가 요청된다. 이러한 연구는 반드시 정확한 미시적 연구의 기반 위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또 많은 역사적 문헌에 대한 치밀하고 객관적인 고찰에 기초하여야 한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서 하루아침에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장기적 과제이다.
---한국어판 저자 서문 중에서
중국 역사에서 천인관계론은 의심할 것 없이 중국 전통사유를 규정하는 특징적인 문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천인관계에 대한 문제는 이미 흘러가 버린 역사의 긴 강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현실에 영향을 끼치고 현명하고 재능이 뛰어난 자는 항상 불운하고, 간사하고 아첨 잘하는 소인배들이 오히려 부귀영화를 누린다
한유는 「여최군서」라는 글에서 부귀나 세속적 성공은 개인의 성실성이라든가 선행과 상반된다는 점을 한탄 섞인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로부터 현명한 자는 적고 어리석은 자는 많다. 그런데 나는 세상의 물정을 알게 된 뒤로 현명한 자는 항상 불운하고 현명하지 못한 자는 어깨를 으쓱대면서 청색 자색의 관복을 걸치고 다니며, 현명한 자는 항상 제 몸 하나 온전히 보존하기가 어려운데 현명하지 못한 자는 뜻을 이루고 의기양양하게 살아가며, 현명한 자는 비록 하찮은 관직을 얻었다 하더라도 곧 죄를 얻어 죽게 되지만, 현명하지 못한 자는 장수한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조물주의 궁극적인 의도가 결국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의 호오(好惡)는 인간의 마음과 다른 것은 아닐까? 혹은 아무런 의식도 없이 인간 자신에게 사생(死生)과 수요(壽夭)를 맡겨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지 못하겠다. 인간에게는 본디부터 경상(卿相)이라는 높은 벼슬이나 천승(千乘)의 높은 지위를 하찮게 여기고 누추한 곳에서 시래깃국 마시며 살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같은 사람이라도 호오가 이와 같이 다른 것을 놓고 볼 때 하늘과 인간은! 반드시 호오가 다를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늘과 일치되면서 인간과 괴리되는 생활을 한들 무슨 해가 되겠는가?
한유는 일생을 통해 벼슬길이 매우 험난하였다. 그는 현명한 자나 재능이 뛰어난 자가 대우받기는커녕 항상 재앙을 받는다든지, 간사하고 아첨 잘하며 인민을 학대하는 소인배들이 오히려 오랫동안 부귀를 누린다든지 하는 것들을 무수히 체험하고 목격하였다. 위의 말은 그가 몸소 그러한 일을 겪거나 보고 들으면서 쌓아왔던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p. 79
사마천은 『사기』를 쓰면서 세 가지의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천인관계를 연구하는 것’이 그중 하나였다. 그가 말한 ‘천인관계를 연구하는 것’이란 주로 역사발전 속에서 천명과 인력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점과 관련하여 「백이열전」에서 다음과 같이 자기 생각을 피력하였다.
“천도는 항상 선행을 하는 사람을 보살펴 준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백이ㆍ숙제 같은 사람은 선행을 한 사람이 아니던가? 그들은 어진 일을 많이 하고 청렴하게 행동하였지만 끝내 굶어 죽었다. 또 제자 70여명 가운데서 공자는 안연이 가장 학문을 좋아한다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안연도 먹을 것이 자주 떨어졌고 지게미나 쌀겨로 만든 음식을 싫어하지 않았지만, 결국 요절하고 말았다. 하늘이 선행을 하는 사람에게 보답을 해 준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오늘날에도 도리에 어긋나게 살아가고 도맡아 기강을 파괴하는 사람이 오히려 죽을 때까지 편안함과 쾌락을 누리고 자신의 부를 자자손손 대물림한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정당한 곳만 골라서 가고, 적절한 때를 골라 (조심스럽게)말하고, 정도가 아닌 길은 가지 않고, 공정한 일이 아니면 분발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당한 자가 너무 많아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나는 이런 점들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한다. 이른! 바 천도라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사마천은 천명결정론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천도가 선한 자에게 복을 주고 악한 자에게 재앙을 내린다는 감응론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역사발전을 결정하는 힘은 무엇일까? 원대한 포부를 가진 사마천은 『사기』에서 시종일관 만족할 만한 대답을 제시하지 않고 끝없는 의문만 남겨 두었다.
---p. 149-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