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편의 시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진정 의미 있는 시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편들과 다수의 시집들로 구성되는 시인의 시적 궤적이 완성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시는 목표가 아니며, 시는 과정이다. 시는 한 명의 시인이 시에 대한 견해를 완성시키기 위해 활용하는 도구이며, 시의 새로운 영역을 창출해 내는 여정 그 자체인 것이다.
--- 황인찬「시를 벗어나는 시, 시가 아닌 시, 시를 의심하는 시」중에서
시를 쓰는 일이 일상이 될 수 있다. 나야 원래 시는 굳이 청탁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쓰는 편이라서 더 그렇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어느 시기엔 며칠 내내 한 편의 시에 매달린다. 다른 일상을 전폐하고. 그런데 갈수록 그런 시간을 내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다.
--- 이이체「의미의 의심과 의심의 의미」중에서
나는 시가 온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나는 걷고 먹고 자고 웃는 등 모든 행위를 통해 몸 안에서 시가 축적된다고 믿는다. 시는 오는 게 아니라, 몸 안에서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몸에 집중해야 하고, 몸의 언어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 이우성「시를 잊고, 다시 시를 쓰다」중에서
마음은 어렵다.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면 거기 남은 내가 그렇게 앙상할 수 없다. 흙 속에 묻힌 죽은 몸. 무덤을 파헤치고 부드러운 피와 살이 모두 썩은 해골을 보는 일 같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감정적으로 살아온 것 같은데, 마음은 대부분 썩고 없다. 흰 뼈 같은 시간만 남아 있다.
--- 유계영「모르는 아름다움을 모르는 채로 적어 두는 일」중에서
우리가 흔히 시 쓰기라고 부르는 과정, 즉 시어를 선택하고 배치하는 일련의 과정에 깊은 고민이 동반되는 까닭은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이 최대한 손실 없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겁니다. 쓰는 동안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거죠. 물론 그다음은 제 몫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 안희연「나의 시, 나의 알렙El Aleph」중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현실’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아닌 것들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시에 나타나는 모든 것들을 시인의 일상적 경험이나 경제·사회적 맥락 아래에서만 읽어 버리면 시는 좀 이상한 글이 되고 만다. 왜 그런 것들을 쓰기 위한 보다 정직한 장르를 택하지 않고 시라는 장르를 택했겠는가?
--- 송승언「나는 매번 시 쓰기가 재미있다」중에서
겨우 시가 나의 어떤 시절의 좌절감을 떼어먹고 점점 더 어둡고 차갑게 나를 이끈다는 것이 신기하다. 시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을 어떻게 배반할지 시 안에서 고민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하다고 하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런 엇갈림을 시에서 배웠다.
--- 서윤후「시 다음 잠 다음 시 다음 잠 다음……」중에서
꾸준히 직장에 다녀야 하는 탓에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것은 주로 평일 밤이나 주말 새벽이지만 시어를 생각하거나 한 문장쯤 쓰는 것은 대중없다. 회의나 운전을 하다가도, 술을 마시거나 밤에 잠깐 일어났을 때에도 그때그때 떠오르는 시어나 문장을 적어 둔다. 그러고는 그 시어나 문장을 살려 아름다운 시를 완성하겠다는 꿈을 품는다. 매번 꿈만 크다.
--- 박준「사랑과 연애의 잔상」중에서
시는 어떤 식으로든 피 흘리는 기억을 보듬어 안을 운명에 처해 있다. 지난날의 나는 시가 사랑을 더욱 탐스럽게 치장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시가, 사랑을 시로 쓰는 일이 그 살아 꿈틀대는 사랑을 죽이고 또 죽여서 곁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일임을 알 것 같다.
--- 박소란「전부를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중에서
전작들을 쭉 다시 읽는다. 어떻게 시를 썼더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보통 이렇게 해야,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구분이 된다. 그러면서 내 시는 아주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전진이든 퇴보든 이동이라는 것에 안심이 된다. 시는 움직이는 것이고 움직이려고 하는 잠재 중인 어떤 것이다.
--- 박성준「쓰는 동안의 동안」중에서
라디오를 끄고 집을 벗어나면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고 책도 읽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일합니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놉니다. 그 생활 속에서도 라디오를 들을 때처럼 시적인 순간, 사연, 사건이 찾아오고 그걸 자주 놓치지만 때때로 잘 붙잡아 두는 때도 있습니다. 모든 일상의 순간은 시적인, 예술적인 순간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 김현「이곳의 소수자」중에서
나는 사랑이 넘치는 시를 쓸 수 없다. 소박한 사랑이 담긴 시도 쓸 수 없다. 나는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어떤 모양을 파악하고서 이런 모양이라고 짚어 줄 뿐이다. 사랑은 시의 것이다. 시 자신의 것이다. 연애를 해야 시를 쓸 수 있다고들 한다. 그건 거짓말이다.
--- 김승일「시는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흔적이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