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 사랑이란 어느 누구보다 한 남자나 한 여자를 특별히 더 좋아하는 거죠.” “그렇다면 얼마 동안이나 좋아하면 되는 건가요? 한 달인가요? 이틀? 아니면 30분?” --- p.24
“여러분들께서는 결혼이 사랑에 기반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육체적 사랑 말고 다른 사랑이 존재할 수 있느냐는 의심을 제기했지요. 그런데 여러분들께서는 결혼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논리로 절 설득하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이 결혼이란 게 말입니다, 요즘 세상엔 한낱 사기극에 불과하다고 전 생각합니다.” --- p.28
“제가 바로 뽀즈드느이셰프입니다. 여러분께서 짐작하고 계시는 그 극단적인 사건, 아내를 죽인 그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접니다.” --- p.30
아내는 몸에 살이 좀 붙더니 눈에 띄게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치 낙엽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발산해 내는 늦여름의 푸르른 나뭇잎 같았습니다. 아내도 자기가 예뻐졌다는 걸 느끼고 몸치장에 신경 썼습니다. 아내에게선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무언가 도발적인 아름다움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아직 아이를 낳지 않고 적당히 살이 오른 쉽게 흥분하는 30대 여자의 전형이었죠. 그런 아내의 모습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 p.111-112
“그러니까 그자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였죠. 프로는 아니었고 세미프로 수준의 연주가였습니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제법 유명인 취급을 받기도 했었죠…” --- p.116
바로 이자가, 그리고 이자의 음악이 그 모든 것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법정에서는 모든 것이 질투심에서 유발되었다는 식으로 사건을 설명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절대로 아니고 말고요. 법정에서는 제 아내가 바람을 피웠고, 그래서 제가 훼손된 명예를 지켜 내느라-법정에서 그렇게들 얘기하더군요-아내를 죽였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 p.117-118
결국 전 아내에게 그자를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대화가 곧 바로 음악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더니 그자가 아내와 함께 연주를 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아내는 그 무렵 늘 그랬듯이 우아하고 고혹적이었으며 불안하리만큼 아름다웠죠. 아내는 처음 본 순간부터 그자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습니다. 게다가 바이올리니스트와 합주를 하게 된다는 것에 기뻐했습니다. --- p.129
“두 사람이 연주했던 곡은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였습니다. 도입부에 나오는 프레스토 부분을 아십니까? 알고 계시냐고요?” 그는 비명에 가까운 큰 소리로 물었다. “아! 정말 끔찍한 소나타입니다. 특히 그 부분이요. 원래 음악이란 거 자체가 끔찍한 거지요. 그게 뭡니까? 이해가 안 갑니다. 음악이 뭡니까? 음악이 뭘 만들어 낼 수 있죠? 음악이 뭔가를 만들어 낸다면 도대체 왜 그런 걸 만들어 내려는 거죠? 흔히들 음악은 정신을 고양시켜 준다고들 합니다만 다 헛소리고 거짓말입니다! 음악이 하는 거라곤 끔찍함을 주는 것 밖에 없습니다. 제 경우를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음악은 저의 정신을 조금도 고양시켜 주지 않죠. 정신을 고양시켜 주지도, 그렇다고 나락으로 떨어뜨리지도 않습니다. 그저 흥분만 돋울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