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Liberty 자유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19세기의 철학자이며 사회사상가 죤 스튜어트 밀의 초상화를 보면 어느 것이나 근엄하고 냉철한 인상이다. 그러나 그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절제된 표현을 통해 배어나오는 그의 감성적 고뇌와 갈구에 애처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죤 스튜어트 밀은 유년기를 몰수당한 ‘신동’이었다. 그의 아버지 제임스 밀은 당시 특권층의 지배 하에 있던 불평등 사회를 평등한 사회로 바꾸려 했던 급진주의 사상가 집단의 대표자였는데 자기 맏아들을 자신의 대를 이을 급진주의의 기수로 키웠다. 그는 당시의 학교 교육이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맏아들을 스스로 교육했다.
어린 죤은 그래서 교육실험의 대상이 되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어떤 아이도 받아 본 일이 없는 교육을 받았다. 세 살때부터 희랍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희랍의 문학, 철학, 사상서들을 두루 독파했고, 여덟 살부터는 라전어를 배워서 라전어로 된 문학, 역사, 철학서를 모두 섭렵했다. 그냥 읽기만 한 것이 아니고 읽은 책마다 아버지와 비판적인 분석, 토론을 해야했다. 이런 지적 훈련 덕으로 죤은 16세부터 당대의 법적, 사회적 문제에 관한 문필 논쟁에 적극 참여했고, 그의 일생을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상적 투쟁을 했다.
청년이 되었을 때 밀은 자신의 인류사적 사명에 긍지를 느꼈지만, 인생의 모든 문제를 이성적으로 접근하도록 훈련 받았던 까닭에 20세 되던 해에 자신이 감정이 메말라버린 기계와 같은 인간이라고 느끼게 되고, 생에 대한 의욕을 완전히 상실하는 정신적 위기를 겪게 된다. 감정을 불신하고 경멸하는 아버지 밑에서 죤은 정서적으로 성장하지 못했고, 내면 세계가 매우 빈곤하고 메마르게 되었던 것이다.
4년간을 극심한 우울과 절망 속에서 자살의 벼랑까지 갔던 밀은 어느 날 워즈워스의 시를 읽고 그 전원시 속에서 모든 인간이 같이 느낄 수 있는 내적 환희와 상상력의 즐거움을 발견하고 구원을 얻는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법률, 제도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보장 받아야 할 뿐 아니라 내면이 풍요로운 삶을 살아야 할 필요를 절감하게 된다.
곧 이어 평생의 연인 해리엇 테일러를 만나 세기의 우정을 나누게 된다. 섬세한 감성과 예리한 지성, 그리고 명상적이고 시적인 천성을 지닌 세 아이의 어머니였던 해리엇 테일러와 20년 동안 정신적인 반려자로서의 우정을 나눴는데, 미모의 유부녀와 급진주의 철학자와의 친밀한 교류는 당시 영국 지성 사회의 최대의 스캔들이 된다. 해리엇의 남편이 사망한 후에 둘은 결혼하지만 그 행복한 결혼생활은 해리엇의 사망으로 7년 만에 끝난다. 그녀가 가고 난 후에도 밀은 중요한 저술과 공적인 활동을 많이 하지만 해리엣을 잃은 후의 세월은 자서전 속에 “나의 여생”이라는 장으로 묶여있다.
런던시의 노동자계층 거주지역인 웨스트민스터 선거구의 국회의원 후보가 되어달라는 주민들의 요청을 받고서 밀은 자신은 입후보하더라도 선거비용을 한 푼도 쓰지 않겠고, 유세도 하지 않겠고, 당선 되더라도 지역구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지 않겠다는 전대미문의 공약을 한다. “전능한 신도 그런 공략을 갖고는 당선될 수 없다”고 모두들 고개를 흔들었지만 그의 정직성과 인격을 신뢰한 유권자들의 지지로 당선이 되었다.
의회에 진출한 그는 다른 의원들이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고려해서 감히 하지 못하는 개혁적 발언을 많이 했다. 서민 계급에게까지 참정권을 확대하는 영국 민주주의 발전사에 이정표적인 1867년 제 2차 선거법개정안의 통과를 위해 중요한 변론을 했을 뿐 아니라, 여성참정권, 시 자치의회 설립법 추진, 그리고 영국의 오랜 식민지로 심한 수탈과 차별에 시달리는 아일랜드를 위해 많은 의회연설을 했다.
모든 인간이 인습과 제도의 압박에 의해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자질과 적성을 최대한도로 개발함으로써 모든 개개인이 건강하고 발전적이고 충족적인 삶을 살아야 사회 전체도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계몽과 설득을 했던 죤 스튜어트 밀. 어떤 글에서나 그의 정직성과 겸허함이 느껴지고, 번드레한 거짓 논리를 격파하는 데는 날카로우면서도 정의롭고 관대한 것을 옹호하는 데는 바위같이 굳건했던 신념의 사상가 밀의 과장 없고 가식 없는 자서전은 위선과 독선과 극단적 사고에 병든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