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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사 1

한국경제사 1

: 한국인의 역사적 전개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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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2월 26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720쪽 | 1160g | 190*260*36mm
ISBN13 9788933707234
ISBN10 893370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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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이영훈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1985). 지곡서당芝谷書堂에서 한문을 공부하였다(1977∼1982).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를 거쳐 2002년 이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제사학회, 한국고문서학회,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朝鮮後期社會經濟史』(한길사, 1988),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공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대한민국역사』(기파랑, 2013) 등이 있다. 청람상靑藍賞(한국경제학회, 1990), 경암학술상耕岩學術賞(경암교육문화재단, 2013), Coghlan Prize(Australian Economic History Review, 2015)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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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뚜막을 구비한 주거지에 관한 한국인의 기록은 5세기 이후에야 나타난다. 414년 고구려의 장수왕長壽王이 세운 광개토왕비廣開土王碑에는 왕릉을 지키기 위한 수묘호守墓戶를 각지에서 차출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그에 따르면 장수왕은 고구려의 옛 영토에서 110가家와 새로운 정복지에서 220가를 수묘호로 차출한 다음, 그들을 국연國烟 30과 간연看烟 300으로 편성하였다. 중국의 한자에서 가家 또는 호戶는 개별 세대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이다. 광개토왕비는 그 가나 호가 고구려의 지배체제에 편입되어서는 연烟이라는 고유명사로 규정되었음을 전하고 있다. 다시 말해 5세기 초 고구려에서 가의 제도적 표현은 연이었다. 연은 반지하 움집의 부뚜막에서 밥 짓는 연기가 지붕 위로 솟은 연도를 통해 피어오르는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연 규정은 그러한 이미지에서 고안되었다고 여겨진다. 국연은 간연을 감시하고 독려하는 역할을 맡았다. 대개 국연 하나에 간연 열이 하나의 대오를 편성하여 30개 대오가 순번으로 수묘의 역을 담당했다고 추정되고 있다. 551년 신라는 고구려로부터 단양의 적성赤城을 빼앗은 다음, 주민 가운데 신라의 적성 공략에 협력한 사람들을 포상하였다. 그 포상의 내용을 새긴 것이 1978년에 발견된 단양적성비丹陽赤城碑이다. 동 비문은 신라의 점령지 지배정책에 관해 몇 가지 정보를 전하고 있다. 그 가운데 적성연赤城烟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적성의 백성이라는 뜻이다. 이로부터 신라 역시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그의 백성을 연으로 규정했음을 알 수 있다. 백제가 그의 백성을 연으로 규정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5세기 이후 고구려와 신라는 백성을 연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기초 단위로 한 지배체제를 구축하였다. 역사시대의 상징으로서 국가가 솟아오르고 있음을 알리는 그 같은 변화의 저변에는 소규모 가족이 공동취사의 집단으로부터 분리되어 개별취사의 세대로 자립하게 된 역사적 진보가 가로놓였다.
- 제Ⅰ권 제2장 문명의 아침 중에서

정호는 국가에 대한 조부의 납부에서만 아니라 생산, 결혼, 상속, 촌락 등 일상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기초 단위를 이루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고려인들은 정호를 가리켜 가家라고 칭하였다. 가는 소규모 가족이 아니라 그것이 다수 결합한 친족집단으로서 세대복합체를 가리켰다. 원 복속기의 일이다. 1293년 원으로부터 흘절사팔吃折思八이란 번사蕃師가 고려에 파견되었다. 원래 고려인으로서 1271년 진도가 함락될 때 원에 끌려간 사람인데 승려가 되어 번사로 출세하였다. 32년 만에 고려에 돌아와 서림현西林縣에서 부모를 찾았는데, 부모가 가난하여 능히 자존하지 못하고 남의 집의 용작傭作이 되어 있었다. 이에 왕이 그 족속을 교동현喬桐縣으로 옮기고 토지를 지급하여 가를 이루게 하였다. 1351년 공민왕恭愍王은 중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보허普虛에게 경기도 광주에 있는 왕실의 전장을 하사하였다. 이에 보허가 흩어졌던 친척들을 모아 가를 이루었다.
이 두 예에서 보듯이 고려의 가는 일반적으로 친족집단으로 구성되었다. 고려의 가족이나 친족의 구성 원리는 중국과 달랐다. 그로 인해 중국과 갈등이 빚어진 적이 있다. 고려가 원에 복속할 때 위의 흘절사팔처럼 끝까지 항전하다가 원으로 잡혀간 사람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는 원에 일찍 투항한 사람들의 가속家?이 있었다. 고려는 그러한 사람들을 송환해 주기를 원에 거듭 요청하였다. 이에 원은 일찍 투항한 사람들의 부모와 처와 자녀를 송환하였다. 그러자 고려왕조는 할아버지와 손자, 시아버지, 삼촌과 조카, 형제와 자매도 모두 고려에서는 가속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사람들마저 돌려주기를 청하였다. 이 사건은 중국의 가가 일반적으로 소가족임과 달리 고려의 가는 직계·방계만이 아니라 처족까지 포함하는 친족공동체였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 제Ⅰ권 제4장 국인國人과 전호佃戶 중에서

두락당 지대량은 1680년대 이래 1750년대까지는 15~20두 수준에 머물다가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1880년대에 이르러서는 6~7두로까지 낮아져 있었다. 18세기 전반에 비해 1/3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후 1890년대부터 상승의 추세로 반전하여 1940년대까지 15두 수준을 회복하고 있다. 두락당 지대량의 감소를 초래하는 요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두락당 생산량이 감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량 가운데 지대가 차지하는 비율, 곧 지대율이 감소하는 것이다. 17~19세기 민간의 병작(어우리) 관행에 있어서 지대율은 통상 50%였다. 그 지대율이 장기적으로 하락했다는 증거는 어디서고 찾아지지 않는다. 병작 관행에 관한 20세기 초의 조사 자료는 공통으로 지대율이 50%임을 전하고 있다. 36종의 추수기 가운데 2종의 추수기로부터는 지대율을 추정할 수 있는데, 거기서도 지대율은 변하지 않았다. 36종의 추수기 가운데 3종은 두락당 지대량이 아니라 두락당 생산량을 기록한 것이다. 거기서 확인되는 두락당 생산량 역시 위와 같은 형태의 장기추세를 그렸다. 요컨대 18세기 후반 이래 19세기 말까지 두락당 지대량이 근 1/3로 감소하는 장기추세의 기본 요인은 두락당 생산량, 곧 수도작의 토지생산성의 감소에 있었다. 지대율이 감소하여 위와 같은 추세를 가속시킨 기간이 있긴 했었다. 민란이 자주 발생하여 사회기강이 문란해진 1860년대 이후는 지대율의 하락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것은 민란이 종식된 1894년 이후 지대량이 곧바로 상승의 추세로 돌아선 것을 보아서도 짐작할 수 있다.
- 제Ⅰ권 제7장 위기 중에서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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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구성
제1시대(기원전 3세기∼기원후 7세기)에는 소규모 가족이 개별 세대로 성립했는데 이를 연烟이라 하였고, 생산과 수취의 단위는 취락이었다. 연, 세대복합체, 취락, 읍락, 소국으로 상향하는 제1시대의 사회와 국가는 자연현상이나 동물에서 유추된 종교적 상징으로 통합되었다. 4세기 이후 고구려를 선두 주자로 하여 족장사회의 질서를 율령, 관료제, 불교로 대체하는 국가들이 출현하였다. 이 시기 개별 취락은 아직 신분과 계급을 모르는 공동체사회였으며, 밭농사와 수렵이 경제생활의 주를 이루었다. 이 같은 초기농경사회初期農耕社會는 중국 및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한 가운데 그리스·로마까지 통상로가 이어진 활짝 열린 국제사회이기도 하였다.

제2시대(8∼14세기)에는 생산과 수취의 단위로 정丁이 성립하였는데, 정은 여러 세대가 일정 규모의 경지와 결합한 세대복합체世帶複合體였다. 8세기 초 신라는 백성에게 정전丁田을 지급하였다. 이 최초의 토지개혁에서 분배의 단위는 정丁이었다. 정은 일정 규모의 경지와 세대복합체의 결합이다. 신라는 정을 단위로 조와 공물을 수취하였는데, 국가의 지배 단위가 취락에서 정으로 이동한 것은 농업의 발전에 따라 세대복합체의 자립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고려는 이 같은 신라의 체제를 충실히 계승하였다. 제2시대의 농촌은 제1시대와 마찬가지로 공동체사회였으며, 토지소유를 매개로 한 사적인 계급·신분관계는 발달하지 않았다. 귀족, 관부, 사원에 속한 노비가 있었지만 소수에 머물렀다. 제2시대의 두 왕조는 왕도王都에 집주한 귀족과 중앙군의 공동체가 군현으로 재편성된 제1시대의 읍락이나 소국을 군사적으로 지배하는 체제였다. 재분배경제를 영위했으나 체계적이지 못하였으며, 시장은 초보적 수준이었다. 일본과의 관계가 적대적으로 바뀌긴 했으나 이 시기에 바다는 여전히 열려 있었다. 13세기 중반 몽골제국에 복속된 이래 고려의 사회?경제는 크게 변하였다. 무역이 활성화하고, 지역 간의 인구이동이 활발해지고, 농업생산력이 높아졌으며, 농민의 토지에 대한 권리가 강화되었다.
제3시대(15∼19세기)의 조선 왕조는 15세기 중반에 토지와 인구를 따로따로 지배하는 국가체제상의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토지는 양안量案에, 인구는 호적戶籍에 별개의 체계로 등록되었다. 그 과정에서 제2시대의 세대복합체 정丁이 해체되고, 호戶가 성립하였다. 호는 호수戶首의 가족과 그에 예속한 노비로 구성된 인적 결합을 말한다. 정의 해체와 더불어 종래의 공동체사회는 신분제사회로 변환되었다. 유교儒敎를 국시로 삼은 조선 왕조는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위계로 짜인 사회질서와 국제관계를 지향하였다. 조선은 명明의 제후국諸侯國으로 자처했으며, 그에 걸맞은 국가체제를 추구하였다. 제2시대까지 열렸던 바다는 굳게 닫혔다. 16세기 말 이후 조선은 중국과 일본의 무역을 중계하는 지경학적地經學的 이점을 누렸으며, 농촌에 정기시定期市가 성립하고, 동전이 유통되었다. 이 단계에 이르러 소규모 가족은 소농小農으로 자립하였다. 17세기 후반 이래 조선의 농촌은 소농사회小農社會로 나아갔고, 경제활동을 둘러싼 생태계는 도작 일변으로 단순화하였다. 나무가 벌채되고 산지가 개간되어 산림이 황폐해졌다. 이는 도작의 생산성을 떨어뜨렸으며, 농촌시장을 위축시켰다. 곡물을 분배하고 환수하는 재분배경제는 서서히 해체되었다. 반상班常의 위계로 통합되어 온 사회질서도 현저하게 이완되었다. 그 와중에 청과 일본을 선두로 한 제국주의시대가 동아시아에 도래하였다. 500년을 지속한 국가체제와 국제질서의 관성에 눌린 조선왕조는 내외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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