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외화시리즈가 안방 극장을 섭렵하기 시작하던 80년대 후반에, "맥 가이버" 보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프로가 두 개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제시카의 추리극장" 과 "형사 콜롬보" 였다. 사실 어렸을 적부터 남들이 'ABE 시리즈' 를 읽을 때 아가사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부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셜록홈즈의 '너도 밤나무 집의 수수께끼'를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남들보다 법의학에 관심이 많고 생물학에 관심이 많아졌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전공을 생물이나 법의학 쪽으로 할 수 없었던 것은 안타깝게도 나의 비위가 매우 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2002년에 처음 접했던 CSI 시리즈가 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 외화 시리즈는 첫 회에는 50분 러닝타임 중에 35분까지는 사건 해결을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10분 정도 남기고 후다닥 사건을 해결하는, 약간은 엉성한 구석을 보이더니 회가 거듭할수록 진보하는 카메라 기술과 영상미, 그리고 점점 촘촘해지는 플롯까지 갖춰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영시간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잠시 접어두었던 사건추리, 법의학 등에 향한 나의 마음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이다.
그래서 법의학 관련 서적들을 찾아보던 중에 휴먼앤북스(Human&Books)에서 나오는 '프로파일링' 과 '살인의 현장' 그리고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 를 보게 되었다. 이 책들은 올 칼라에 방대한 case study 로 단지 CSI 마니아들이 접하면 흥미로워할 내용 뿐만 아니라, 법의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관심 가질만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 특히 이 중에서도 '프로파일링' 은 범죄형 인간이라는 인물 유형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어떻게 하면 그런 인간을 알아보고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지를 도출해 내려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범죄자는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되어 있는지, 아니면 환경의 영향을 받아 범죄를 저지르는 것인지. 즉, 범죄형 인간을 가려내기 위한 오랜 시도 끝에 마침내 특정 범죄의 정황들을 통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신체적, 정신적 특성을 추정해 내는 '심리 분석'을 '프로파일'화 하여 정리해 놓았다. 이런 책, 혹은 이런 영상물들은 '과학적 해결의 신비함' 과 '현실적인 묘사 혹은 영상' 이 백미라기 보다는, 이미 죽은 사람들 혹은 다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게 해주는 경찰들과 해결사들의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이 더 인상적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시체는 말을 한다'는 사실이 뒷받침 되어 사건이 해결되는 것은 언제나 진리가 이겨야 한다는 나의 이상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죽은 사람이 사실은 정말 나쁜 사람이어서 착한 사람이 수십 년 동안 이를 갈다 꼼꼼히 계획하여 복수하기 위해 죽였다' 하는 '소년탐정 김전일' 류의 복수극이 이런 책들 안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복수로 살인이 정당화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안양, 군포시 일대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의 용의자가 잡혔다. 귀가하던 여성을 세 명이나 이유 없이 죽였다. 게다가 그 남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여학교 앞의 바바리 코트를 입은 변태도 아니었고, 백수도 아니었으며, 정신병자도 아니었다고 한다(물론 살인을 했으니 정신병자이겠지만).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들은 그 사건의 범인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정상적인 집안에서 교육받아 취업한, 그냥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타입의 사람이었는데 연쇄살인범이라니. '프로파일링' 에 나온 자료가 점점 복잡해지는 우리 사회에 맞춰 업데이트가 되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