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 한상연 1967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현재 가천대 교수이다. 원래 공학을 전공했으나 대학을 졸업한 뒤 독일로 가서 철학과 독문학, 역사학을 공부했다. 니체와 바흐친에 관한 논문으로 독일 보쿰 대학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동 대학에서 하이데거와 슐라이어마허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희망철학연구소에서 여러 철학자들과 함께 인문학 살리기와 관련한 다양한 작업들을 하고 있다. 귀국한 뒤 하이데거, 슐라이어마허, 푸코, 들뢰즈 등에 관한 많은 학술 논문들을 학회지에 게재했다. 저서로 ≪철학을 삼킨 예술≫, ≪세상을 바꾼 철학자들≫(공저), ≪삐뚤빼뚤 생각해도 괜찮아 ? 고민하는 10대를 위한 철학 상담소≫(공저) 등이 있으며,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입문≫을 번역했다. 인문학이란 삶을 보다 강하고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여긴다. 다양한 교양 도서를 기획하고 있으며,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철학 동화도 틈틈이 쓰고 있다. 희망철학연구소의 철학자들과 함께 철학 동화집 ≪쓸모없어도 괜찮아≫를 공저하기도 했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엄청난 열정을 발휘하는 예술가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며칠이고 밤을 새며 미친 듯 작업에 매달리고, 뜻대로 작업이 진척되지 않으면 발작하듯 히스테리를 부리며 괴로워하는 그런 예술가가 현대에는 진정한 예술가의 표본처럼 되어 버렸죠. 단언하건대 이런 식의 예술가 이야기는 사람들을 노예의 정신에 사로잡히게 할 뿐입니다. --- p.15~16
예술의 가장 좋은 점은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는 일 없이 기쁨과 즐거움, 아름다움과 기발함 등을 향한 순수한 충동으로서 우리의 삶과 존재를 이해하게 해준다는 거예요. 훌륭한 예술이란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떨쳐 내지 못하는 사람은 예술의 가장 좋은 점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 p.36~37
고갱의 작품이 위대한 이유는 그것이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정도로 빼어난 기교나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도리어 누구든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심정을 지니고 있으면 직접 한번 해볼 만한 그림이기 때문에 위대한 거죠. --- p.48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다 덧없는 것들이죠.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무상한 것들이고, 우리 자신 또한 그러합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사상은 세계의 무상함을 참되고 영원한 어떤 초월적 존재의 그림자처럼 이해해 왔죠. 문학과 예술은 신과 영혼, 영원불변하는 진리가 무상한 세계의 근거로서 감추어져 있음을 알리고 표현하는 수단처럼 기능해 왔습니다. ‘현대성’ 개념에 대한 보들레르의 설명은 이제부터 이러한 관계가 전도되어야 함을 선언하는 것과도 같아요. 현대적인 문학과 예술은 덧없는 것을 덧없는 것으로서, 허무한 것을 허무한 것으로서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만 하죠. 하지만 그것은 결코 메마른 사실성에의 추구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도리어 여전히 영원한 것과 아름다운 것, 시적인 것을 향한 추구였죠. --- p.67
어쩌면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쓸모 있는 사람인지도 몰라요. 누구나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일상 세계를 지배하는 유용성의 논리는 우리 모두를 유용한 존재가 되도록, 자신의 삶과 존재에 충실하기보다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도록 몰아세웁니다. 그러니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데는 유용성의 논리에 사로잡힌 사람이야말로 쓸모없는 사람이죠. --- p.133~134
도스토옙스키는 《백치》라는 소설에서 주인공 므이쉬킨 공작의 입을 빌어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인간이란 오직 아름다움의 법칙을 따르는 경우에만 구원받을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해요. 그건 아름다움의 법칙을 따르는 것 자체가 가장 자유로운 ‘존재하기 놀이’이기 때문이죠. --- p.141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소중한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물론 자신만 사랑하면 타인을 존중할 줄 모르는 정신적 기형아가 되어 버리고 말죠. 하지만 자신조차 사랑하고 긍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하고 긍정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타인과 함께 있음을 기꺼워할 줄도 모르고, 사랑하는 법도 모르며, 그 때문에 자신이 아닌 그 누군가와 즐겁고 기쁘게 놀 줄도 모르죠. 한마디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우린 세상에서 가장 부자유스럽게 존재하게 되는 거예요. 자신에 대한 사랑은 세상에 대한 사랑의 시발점이며, 이는 오직 세상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하기를 원하면 우린 세상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법을 배워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