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는 던져졌다.’ 한창 열이 오른 도박사처럼 열정이 불붙은 다음에야 비로소 카이사르는 전진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이성적인 계산을 하기에는 너무 위험이 컸다. 또 헤아릴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탈리아로 밀고 내려오면서 카이사르가 동료들에게 털어놓았듯, 그는 자기가 세계 전쟁을 감행하고 있음을 알았고, 그 전망을 예견하고 몸을 떨었다. 그러나 카이사르처럼 명철한 사람도 자신이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할 수 없었다. ‘디스크리멘’이라는 말에는 ‘중대한 고비’라는 뜻뿐만 아니라 ‘분수령’이라는 뜻도 있다. 루비콘이 바로 그런 의미의 단어가 된다. 그 강을 건넘으로써 카이사르는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는 한편 로마의 고대적 자유가 무너지고 그 폐허 위에 군주제가 세워지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군주제의 성립은 서구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다. (프롤로그 9쪽)
서구 민주주의의 기원을 아테네에서만 찾는 것은 자만심의 소치다. 좋든 싫든 간에 우리는 로마 공화국의 상속자이기도 하니까. 나는 이 책 의 제목을 ‘시민’으로 하고 싶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시민이며, 공화국이 궤멸했다는 비극도 시민의 비극이기 때문이다. 로마인들 역시 나중에는 고대적인 덕성이 지겨워져서 손쉬운 노예제와 평화가 주는 안락을 선택했다. 끝도 없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보다는 빵과 원형경기장의 공연이 더 나았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자유에 스스로를 파멸시킬 씨앗이 들어 있었음을 인정했다. 또한 그것은 이후 몇 백 년 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안하게 똬리를 틀었다. (프롤로그 12쪽)
민중은 중요한 존재였고, 자기들이 중요시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유권자들이 그렇듯이 이들은 입후보자들이 진땀 흘리며 자기들에게 잘해주도록 만드는 일을 즐겼다. 공화국에서는 “군중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고 무얼 원하는지 파악하기가 힘든 것도 없다. 또 투표라는 시스템만큼 예측하기 힘든 것도 없다.” 그래도 로마 정치에서는 예측 가능한 부분이 더 많았다. 물론 민중은 투표권을 가졌지만 그래도 공직을 따낼 가능성은 부자들에게만 있었고, 입후보자 자신이 이룬 부만으로는 부족한 경우도 있었다. 로마인들은 속물근성이 아주 강했다. 사실 시 민들은 잘 알려진 가문의 인물에 표를 던지는 편을 선호했다. (1장 52쪽)
기원전 89년 가을, 장래를 내다보면서 로마의 민중은 집단적 편집증에 사로잡혀 있었다. 참혹한 전쟁이 끝나가고 있었지만,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길한 기운이 만연했다. 다시 한 번 신들이 괴상한 조짐들로 공화국의 종말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가장 불길한 것은 맑고 구름 없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나팔소리였다. 그 소리가 너무나 불길하게 들렸기에,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질려 반쯤 미쳐버렸다. 점술가들은 불안해하면서 책들을 뒤졌다. 그러다가 그런 이적의 의미는 의심할 여지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세상의 질서에 대격변이 다가오고 있고, 세계를 집어삼킬 운명을 지닌 혁명 속에서 한 시대가 지나가고 다른 시대가 오리라는 것이었다. (2장 91쪽)
장교 한 명을 때려죽인 경험이 있는 술라의 병사들은 건방진 부관을 재빠르게 처리해버리는 데 확실히 맛을 들였던 모양이다. 술라가 연병장에 그들을 소집하고 로마에서 온 소식을 공개하자, 이들은 즉각 마리우스의 특사를 돌로 쳐죽였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술라에게 수도로 가자고 외쳤으며, 술라는 이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술라의 부관들은 이 계획에 크게 놀라 한 명 외에는 전부 물러섰다. 술라는 이제 자기가 선을 넘었음을 알았으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놀라 포위전을 계속하도록 군단 하나만 뒤에 남기고 그는 북쪽으로 행군했다. 술라가 접근해온다는 소식을 듣고 로마에서는 다들 귀를 의심했다. 해임된 집정관인 폼페이우스 루푸스 같은 몇몇 사람은 이 소식을 반기고 서둘러 그와 합세하러 달려갔지만 대부분이 느끼는 감정은 충격과 절망감이었다. (3장 104쪽)
카이사르가 보기에 술라가 살아 있는 한 자신은 절대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외국으로 나가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무서운 상황을 피하기 위한 망명 행각은 아니었다. 이제 정치적 명성으로 통하는 지름길이 닫혀버렸으니 카이사르는 더 관례적인 수단을 통해 스스로 빛나는 명성을 얻어야 했다. 유피테르 사제가 되었더라면 말을 타거나 무장 군대를 시찰하거나 한 번에 이틀 이상 로마를 떠나는 것도 금지되었을 것이다. 뛰어난 승마술을 지녔으며 캄푸스 에서 규칙적으로 무술 훈련을 하고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와 활력을 가진 카이사르 같은 남자에게 그런 고리타분한 금기는 답답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그가 받은 모든 교육은 영광을 출생에 따른 당연한 권리처럼 여기라고 가르쳤다. 이제 술라 덕분에 그는 자기 욕망을 따를 기회를 얻었다.
욕망은 그를 아시아로 이끌었다. (5장 164쪽)
카이사르가 집정관이 된 첫 번째 달이었다. 몇 주 전에 키케로에게 삼두의 대리인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 대리인은 이렇게 물었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손을 잡는 데 관심이 있는지요?” 키케로는 그 제안의 의미를 간파하지 못했다. 즉 로마를 지배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하지만 설령 그가 그 의미를 깨달았다 해도 여전히 그 제안을 거절했을 것이다. 그는 어쨌든 카틸리나의 정복자가 아닌가. 공화국에 대항하는 음모에 어떻게 가담할 수 있겠는가. 그에게는 법의 지배가 최고로 귀중했다. 개인적인 안전보다도 더 귀중했다. 천성적으로 겁이 없지 않았던 키케로는 이 결정으로 인해 자기가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8장 305쪽)
이런 여론의 변화를 클로디우스만큼 민감하게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그는 약점을 탐지하는 후각이 아주 뛰어났다. 그는 폼페이우스가, 평판이 대단하고 충성스러운 퇴역병들이 있기는 하지만 종이호랑이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는 즉시 시험해보지 않고는 배기기 어려운 유혹적인 직감이었다. 폼페이우스가 가장 짜증내는 일이 크라수스 및 카이사르와의 운명적인 동맹을 맺도록 그를 밀어붙인 안건 인 동방 속주의 정착지 편성안에 대한 새삼스러운 공격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자 클로디우스는 곧바로 돌격을 시도했다. (8장 328쪽)
카이사르는 해체 작업을 할 때도 으리으리한 장관을 연출했다. 새 저택을 지었다가 그대로 부수어버린 일이 로마에서 화젯거리가 된 것도 고작 10년 전의 일이었다. 항상 병사와 똑같은 식량을 안장에 앉은 채로 먹고, 전 군단에게 용기를 고취시키는 재능이 있었으며, 부하들에게 부과하는 모든 엄격함과 힘든 일을 함께하고, 망토로 몸을 둘둘 감고 얼어붙은 땅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강철 같은 체격의 이 장군은 지금도 옛날과 똑같은 화려한 카이사르였다. (9장 358쪽)
그곳에서 카이사르는 여전히 군단 하나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폼페이우스가 비상사태를 발동했다는 소식은 10일에 그에게 도착했다. 즉시 그는 군대를 남쪽으로 보내어 변경을 건너 이탈리아 국내의 가장 가까운 도시를 점령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카이사르 본인은 부하들이 진용을 갖추는 동안, 오후에는 목욕을 하고 잔치에 참가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손님들과 잡담을 나누며, 마치 온 세상에 자기가 신경 쓸 일이 전혀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저녁이 되어서야 그는 긴 의자에 서 일어나서 어둠을 타고 지름길로 서둘러 달려가서 루비콘 강둑에서 마침내 자기 군대를 따라잡았다. 한순간 지독히도 망설였지만, 그런 다음 그는 불어난 물을 건너 로마를 향해 이탈리아로 들어갔다.
460년에 걸친 자유 공화국이 종말을 맞았다는 사실을 안 사람이 그때는 아무도 없었다. (9장 398쪽)
브루투스는 폼페이우스의 지시에 따랐다. 그는 로마를 포기했다. 밤새 쓸데없는 논란을 벌이고 손을 휘저으면서 시간을 보낸 원로원의 대부분 의원들도 그렇게 했다. 극소수만이 남아 있었다. 이 도시에서 행정관들이 이 정도로 사라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카이사르가 루비콘을 건넌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세상은 뒤집혀버렸다. (10장 402쪽)
“가장 달콤한 죽음은 무엇일까?” 누가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카이사르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고 없이 오는 죽음.” 경고를 받으면 두려워지고 두려워지면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그날 밤 카이사르의 아내가 악몽을 꾸고, 다음 날 원로원에 나가지 말라고 간청하자 그는 웃었다. 그날 아침 가마에 실려 가다가 그는 자기에게 3월의 이데스를 조심하라고 충고했던 점술가를 만났다. “자네가 경고한 날이 오늘이군.” 카이사르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네.” “예.” 신속하고도 피할 길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오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