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마을이니, 한국의 마추픽추니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마을의 전경을 바라보니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색감 좋은 거대한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이 모여 거대한 예술 작품이 됐다. 지난 세월을 살아온 원주민들과 외지에서 들어와 살고 있는 새로운 주민, 여기에 뜻있는 작가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작품. 하나하나 떨어트려 놓았으면 별 볼일 없었을 건물들이 아름다운 색감으로 하나가 되어 다시 태어난 것이다. - pp.55~56 [뜨거운 열정이 넘치는 부산 여행]
케냐 AA를 한 잔 주문했다. 아프리카 커피 특유의 신맛이 별로 나지 않았다.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여쭈어 보니 경상도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신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로스팅할 때 강 볶음을 한다는 것이다. 커피가 많이 쓴 듯했지만 뒷맛이 워낙 깔끔해서 만족했다. 뭐랄까, 정말로 당신을 닮은 커피다. 외모에서 느껴지는 선비와 같은 맛. 마치 매화의 그 군더더기 없는 향을 닮은 듯해서 행복했다. - p.142 [울산 커피하우스 빈스톡]
누군가를 위로해 준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하다. 삶이 힘들고 각박해질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고 싶어 한다. 사람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이 되기도 한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줄줄이 밀려오는 파도는 인생을 깨끗하게 살아가라는 듯 순백 그 자체이다. 산산이 부서질 줄 알면서도 맹렬하게 달려오는 파도가 존경스럽다. 나는 저토록 치열하게 온몸이 부서져라 행동한 적이 있었던가. - p.167 [솔향, 커피향이 어우러진 강릉 여행]
제주의 기나긴 돌담을 볼 때마다 김영갑을 떠올린다. 제주의 돌담과 김영갑은 닮아있다. 제주 돌담과 김영갑의 미학은 무얼까, 가슴 숭숭 뚫려 시리고 아프지만 그 어떤 바람도 넓은 가슴으로 받아내는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무애의 경지로 투명한 햇살처럼 모든 바람을 통과시켜버린다. 과연 어느 인간이 제주의 돌담처럼 미약하면 미약한 대로, 강하면 강한 대로 다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세찬 바람도 별일 아니란 듯 무심하게 통과시켜버리는 그 담대함과 허술함. 그래서 제주의 돌담들이 다 까매진 것인지도 모른다. - p.228 [흑룡만리와 바람의 역사 제주 여행]
커피든 풀이든 사람이든 간에 인생의 마지막 순간, 가장 강력하고 고귀한 향을 남기나 보다. 나는 과연 죽을 때 어떤 향을 남기고 떠날까. 두렵기까지 하다. 길거리에 널린 하찮기만 한 풀도, 숱하게 마셨던 분쇄된 커피의 향도 인간에게 감미로운 향을 선사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라야 다르겠는가. 어떻게 살다가 가는 생이 바르고 향기 나는 삶일까? - pp.248~249 [교대 커피하우스 바오밥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