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사람 위험한 거 같다’고 느끼는 경우는 언제, 무엇 때문일까? ① 상대방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온전히 자기 생각만으로 행동한다. ② 타인에게 적의나 증오심을 갖고 있다. ③ 분노, 질투 등의 감정을 잘 컨트롤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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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도 그런 ‘터무니없는 상사’에게 데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사례로 든 김 부장은 사내에서 우수한 인재로 평가받아, 그 팀에 발탁되는 건 중기에게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하지만 김 부장의 명성은 사실 부하들의 노력과 실적을 자기 걸로 가로챈 덕이 컸다. 자신에게 좋은 이야기만 날조해 ‘일종의 만들어진 전설’이라는 점을 중기가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방식이 아직까지도 통용되고 있을까? 또 김 부장 본인은 악의 없는 표정으로 왜 이런 악랄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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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상사’를 적으로 돌렸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것은 보통의 사과나 변명으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이 위험한 건 한번 ‘적’이라고 인식하면 상대방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쓰러져 완전히 나가떨어질 때까지 말이다. 이런 상황에 빠진 경우,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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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우리 주변의 아파트(맨션, 빌라)나 단독 주택에서는 ‘이웃과의 갈등’이 끊이질 않고 있다. ‘피아노 소리가 시끄럽다’, ‘개 짖는 소리, 애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옆집 사람이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다’ 등…. 일시적인 오해나 갈등 정도면 주민회의(반상회)에서 만나 대화로 풀거나, 주민 대표가 개입해 중재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개중에는 이성적인 대화나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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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의 사례에서 보이는 것처럼 주위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아 건강 상태가 나빠진 사람들이 많다. ?자신은 특별히 잘못한 게 없다. 혹시나 짐작 가는 사안조차 없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잘 지내 오던 사람들이 180도 돌변해 자신을 공격한다. 혹은 뒤에서 욕하거나, 있지도 않은 소문을 만들어 퍼뜨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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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주택 거주자는 어떨까? 언뜻 아무런 갈등이 없을 거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역 내 ‘이웃과의 교제’는 분명 범죄, 화재에 대한 사고 대책을 함께 세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서로간의 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있지도 않은 소문을 퍼뜨리는 등 다양한 ‘주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이웃이 정상적인(?) 상대가 아닐 경우, 점점 ‘위험한 이웃’으로 변해 상상조차 못할 일로 비화되기도 한다. 정도가 심할 경우 장기 대출을 끼고 어렵사리 산 집을, 울며 겨자 먹기로 팔고 이사 갈 수밖에 없는 사례까지 있다. 이 같은 ‘주변 갈등’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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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짝사랑’과 ‘스토커’의 차이는 무엇일까? 실제 상황에서는 ‘그 행위를 받는 사람의 의사(기분이 좋은지, 나쁜지)’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누구든 이성에게 인기 있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이성에게 호의를 받는 데서 기쁨과 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마침 상대방이 자기가 좋아하는 타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좋아하는 상대에게 선물을 받고 데이트 하자는 제안을 받는다면, 아마도 기분이 매우 좋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자기 타입이 아닌 경우라면 어떨까? 상대는 자신을 정말 좋아할지 모른다. 그동안 계속 사모해 왔다고 말하며 애절한 표정을 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그 사람을 사랑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이럴 때 상대방이 “당신이 좋아해 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면 더더욱 곤란하다. 아니, 정말 난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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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괴롭힘’을 당한 경우, 정면으로 맞서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나 하나만 참으면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해 참다 보면, 도리어 점점 더 수위가 높아진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상담해 봐도 “뭐, 회사라는 게 다 그렇지”, “참고 견디다 보면 좋아질 거야” 같은 말을 들어 되려 찝찝해진 기분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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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의 원인으로 ‘커뮤니케이션 부족’이 관계된 경우가 있다. 우리는 사람 관계에서 자주 ‘오해’한다. 당신은 상대방이 화를 내며 ‘왜 그렇게 이야기하느냐’고 따져 물었을 때, ‘나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고 변명했던 기억이 있는가? 실제로 ‘내 발언을 왜 그렇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신체의 시스템에는 ‘자신에 대한 공격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공동생활을 시작한 태초부터 우리는 자기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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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사회가 확산되고 스마트폰이 급속히 보급되면서 이메일, SNS상에서의 문제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자신이 모르는 장소에서 익명의 누군가가 자기 욕을 쓴다. 이에 편승한 이가 나타나고, 순식간에 자신의 ‘나쁜 소문’이 웹상에서 확대, 재생산된다. 이윽고 친구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글을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충격을 받게 된다. 혹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쓴 ‘한마디’가 악의에 찬 누군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곡해되고 확산되어, 인터넷상의 ‘갈등’, ‘싸움’을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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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부터 이런 ‘학급 내 서열 시스템’은 존재했다. 싸움을 잘하는 아이, 시험 성적이 좋은 아이가 학급 내 ‘리더’로 포지셔닝 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현대의 ‘스쿨 카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자신이 있는 곳의 공기(분위기)를 읽고, 그 공기에 적합한 말과 행동을 하며, 주위를 그 공기로 들어오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인 것이다. 거꾸로 그 점이 부족한 아이는 ‘커뮤니케이션 장애’라는 낙인이 찍혀 하위 그룹으로 격하되거나, ‘바보 같은 놈’이란 조롱을 받으며 최하위로 떨어지게 된다. 이로서 일상생활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상위 그룹에 속한 친구에게 “왜 사냐!”고 조롱받고 멸시 당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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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강한 ‘적의’나 ‘악의’를 가진 사람은 자기 마음속에 강한 열등감이나 불안을 가진 경우가 많다. 어릴 때부터 ‘자기긍정’이나 ‘자존심’이 충분히 배양되지 못한 경우, 자신의 ‘영역’이나 ‘이익’을 지키는 데 상당히 예민해지는 경우가 자주 있다.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고 여겨 ‘내 영역을 지키지 못하면 안 된다’는 강한 불안과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상대 입장에서 보면 커다란 ‘착각’일 수 있지만, 본인에게는 중대한 ‘권리 침해’라고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부당한 악의’가 아닌지를 증명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 ‘나는 올바른 입장에서 사안을 이야기한다’는 ‘정의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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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타입의 ‘위험한 이웃’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왜곡된 정의감’으로 부당한 공격을 걸어오는 상대방을 ‘설득’하기란 꽤나 어렵다. 이쪽에게는 ‘부당한 박해’였어도 그들에게는 ‘올바른 행동’이기에, 이쪽이 무슨 말을 한들 ‘꼴사나운 변명’으로밖에 듣지 않는다. 이성적인 대화, 상호 이해에 기초한 협의 여지 등을 바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그런 상대에게는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 상대가 회사 상사, 근처 이웃, 혹은 친척이나 가족이었어도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과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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