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모험가. 프리랜서 다큐멘터리 피디. 대한민국 최초, 단독 무기항 무원조 요트 세계일주 성공.
1962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으나 그림보다 모험에 미쳐 살았다. 졸업 후에는 일본에서 방송예술을 공부했다. 이후 교도텔레비전에 들어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며, 1995년 귀국해 프리랜서 피디로 활동을 시작했다. KBS [도전 지구탐험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후지TV [머나먼 여정], NHK [지구로의 호기심] 등이 대표작이다. 2001년 뉴질랜드에서 요트의 매력에 푹 빠져 딸과 함께 요트로 태평양을 건너겠다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2010년, 크로아티아에서 중고 요트를 사 한국까지 몰고 오며 항해 경험을 쌓았고, 2013년에는 카리브 해에서 한국까지 요트로 항해하며 ‘단독 무기항 무원조 요트 세계일주’를 결심했다. 남들은 무모한 도전이라 말했지만 1년여 동안 중고 요트를 개조하며 모험을 준비했다. 2014년 10월 19일, 200여 일분의 식량을 싣고 당진 왜목항을 출항했다. 태평양의 돌풍과 무풍, 남극해의 폭풍과 유빙, 인도양의 해적, 요트의 잦은 고장 등 숱한 고비가 있었지만 매 순간 담대하게 극복해냈다. 2015년 5월 16일, 왜목항을 떠난 지 209일 만에 4만 1900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항해를 마치고 귀환했다. 생생한 항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 영상은 MBC [다큐스페셜]로 방영됐다. 대기록 달성 후 해양수산부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됐으며 각계각층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향후 세계 최정상급 요트맨들이 실력을 겨루는 ‘IMOCA 오션 마스터스 월드 챔피언십’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 책 한 권 세상에 던져놓고 그는 다시 바다로 떠났다.
출항 직전, 제작진과 마지막 인터뷰를 가졌다. “혹시 불행한 사고를 당하신다면, 항해 중에 촬영한 영상을 방송해도 되겠습니까?”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대답을 망설일 것도 없었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국민들에게 전달돼야지요. 그렇게 약속했잖아요.” 제작진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요?” “…끊임없이 도전을 갈구하던 사람이 있었다, 라고 기억되면 좋겠네요.” 뜻하지 않게 유언도 남겼다. --- p.53
내가 요트로 무기항 세계일주를 떠나겠다고 했을 때 가은이는 말했다. “아빠가 항상 가고 싶어 했으니까. 하고 싶은 건 해야지.” 그 말이 꿈의 원동력이 되었다. 돈 걱정을 하며 전전긍긍하는 아빠가 아니라 꿈을 실현해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 --- p.93
밤하늘의 은하수와 초승달이 아름답다. 홀로 맞이하는 태평양의 별밤. 역시 오길 잘했다고 되뇌어본다. 데크에 누워 하염없이 밤하늘에 빠져든다. 살갗에 스치는 적도의 바람이 감미롭다. 찰박찰박 조용한 물소리. 살며시 흔들리며 천천히 미끄러지는 아라파니. 느려도 행복한 이곳은 태평양의 적도 바로 위다. --- p.106
망망대해에 있으면 지구가 거대한 물방울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지구地球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행성은 ‘수구水球’다. 지구는 물로 이루어진 별이다. 바다에서 보면 대륙도 다 섬일 뿐이다. 이 아름다운 물방울 위에 산다는 것. 얼마나 엄청난 행운인가! 망망대해를 항해하다 보니 내가 사는 별의 모습이 현실로 다가온다. --- p.120
출항 2주 차부터 부품들이 계속 말썽을 부리며 나와 아라파니를 괴롭히고 있다. 손은 여기저기 상처투성이고, 손톱 밑에는 기름때가 새까맣게 끼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항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까봐 두렵다. --- p.123
“왜 힘들고 고생스러운 일을 하십니까?” 이렇게 묻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당신의 인생 항해는 편안하고 순조로운가요?” 누구나 많은 역경을 이겨내며 살아간다. 내가 폭풍과 싸우고 무풍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도 누구나처럼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항해는 내 인생의 한 부분이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 p.147
아침에 일어나 돛을 펼치면서 보니 풍향풍속계가 고장 났다. 단순 고장은 시간이 걸려도 어떻게든 고칠 수 있지만 전문 지식이 요구되는 전자장비는 고치기 어렵다. 예비 부품을 준비하지도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배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진다. 그렇다고 항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바람을 몸으로 감지해야 하는 불편한 항해가 될 뿐이다. --- p.154
언제라도 배가 전복될 수 있으니 밖에 나가서 작업하기가 어렵다. 나가서 작업할 일이 생기면 매번 심호흡을 한다. 두툼한 방수복에 장화를 신고 출입문 앞에 서서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그린다. 20초 이내에 모든 일을 마치고 되돌아올 수 있도록 이미지 훈련을 한다. 위험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 p.203
남극권에 들어선 지 벌써 23일이 지났다. 연일 휘몰아치는 폭풍,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높은 파도를 넘나들며 어렵게 케이프 혼을 통과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두터운 구름에 덮인 잿빛 하늘, 그리고 온기라곤 없는 배 안에서 나는 몸을 덜덜 떨고 있다. --- p.221
어떤 요티는 유빙을 ‘러시안룰렛’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사람의 눈으로 감시하는 것이 불가능해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해역을 항로로 택한 것이 결정적 실수라고 할 수 있지만, 만약 포클랜드 제도 쪽으로 갔다면 고래와 사투를 벌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이도 저도 복불복이다. 후회는 없다. --- p.234
거센 파도가 아라파니를 때릴 때마다 “쿠릉” 하는 굉음과 함께 배 안의 물건들이 날아간다. 강풍과 함께 부슬비까지 흩날려 시계가 좋지 않다. 전력이 부족해 레이더를 끄고 20분마다 한 번씩 고개를 내밀어 전방을 관측한다. 위성전화 사용료를 내지 못해 며칠째 통신이 투절되고 있다. 육상지원팀과 연락이 되지 않으니 기상 상황을 알 길이 없다. --- p.244
6시간에 걸친 긴 이별식을 마치고 돛을 올렸다. 이제 남극해를 떠나도 될 것 같다. 아쉬움을 남기고 서서히 움직이는 아라파니 뒤로 이리와가 멀어진다. 이리와도 이별을 아는지 더는 따라오지 않는다. 내가 다시 남극해에 온다면 그때는 두려움보다 그리운 새를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렐 것이다. --- p.269
순다 해협 초입까지 남은 거리 30마일. 육상지원팀은 벌써 자카르타에 도착했단다. 혹시 모를 해적의 습격에 대비해야 한다. “제가 이펍(자동조난신호기)을 터뜨리면 그건 조난이 아니라 해적의 습격입니다. 전화는 하지 마세요. 전화기도 감춰둘 겁니다.” 박주용 선장에게 미리 말했다. 그리고 이펍을 옷더미 속에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