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러야 할 최선의 경지를 알게 된 이후라야 뜻이 향할 바를 정하게 되며, 뜻이 향할 바를 정한 이후라야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안정될 수 있으며,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안정된 이후라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인 이후라야 매사에 찬찬히 사고할 수 있으며, 매사에 찬찬히 사고한 이후라야 최선의 경지를 얻을 수 있다.
최선의 경지에 머무르는 것, 즉 언제 어디서나 가장 합당하고 적절하게 처신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방법을 말했다. 『대학』에서 추구하는 인격 수양에서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는 최선의 경지에 머무르는 것임을 앞에서 말하였고, 여기서는 한 걸음 나아가 최선의 경지에 머무르는 것을 목표로 설정한 이후 갖춰야 할 자세와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결과를 단계적으로 말했다. 최선의 경지에 머무르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지고 끊임없이 자기를 연마하면서 그 목표를 향해 정진해야 한다. ---「『대학』, 경1장」중에서
‘상아를 자르고 간 듯하다’는 것은 배우고 익힘을 말한 것이요, ‘옥을 쪼고 간 듯하다’는 것은 스스로 갈고닦는 것이다. ‘슬혜한혜’라는 것은 엄숙하고 경건하다는 것이요, ‘혁혜훤혜’라는 것은 위엄과 의표가 있다는 것이다. ‘학식과 덕망을 쌓은 빛나는 군자여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라는 것은 밝은 덕이 지선의 경지에 이르러 사람들이 그를 잊지 못한다는 말이다.
시 내용을 다시 해설했다. 절차탁마하며 수양에 힘쓰는 군자는 그 엄숙함과 경건함이 저절로 겉으로 드러나고 만인의 의표가 되어 영원히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자로서 절차탁마하며 자신을 수양하는 것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군자는 백성이 영원히 잊지 못하기를 의식적으로 원해서 절차탁마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군자의 끝없는 수양은 군자를 지선의 경지에 이르게 하기 마련이며, 자신도 모르게 만인의 의표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 결과로 사람들이 영원히 잊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 전3장」중에서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여 어느 순간 확 뚫리면 세상 모든 것의 겉이나 속이나 세밀한 것에나 소략한 것에나 이르지 않음이 없어서 내 마음의 온전한 본체와 커다란 쓰임이 밝아지지 않는 것이 없으리라.
태학 교육의 시작은 세상 만물의 현상과 질서를 탐구하여 진리를 쌓아가게 하는 것이었음을 앞에서 말했다. ‘활연관통豁然貫通’, 즉 어느 순간 확 뚫린다는 것은 철저하게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을 오래 지속하며 점차 넓고 깊게 확충하면 만물의 본질을 이루는 근본 원리를 파악하게 되고, 만물의 본질을 이루는 근본 원리를 파악하게 되면 비로소 자아와 세계가 합일되는 경지로 나아가 자신의 내면에 온갖 만물의 이치가 구비되고, 그것이 겉으로 발현되면 세계의 조화와 질서를 이루는 데 기여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을 두고 세상 모든 것의 겉이나 속이나 세밀한 것에나 소략한 것에나 이르지 않음이 없어서 내 마음의 온전한 본체와 커다란 쓰임이 밝아지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대학』, 전5장」중에서
윗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으로 아랫사람을 시키지 말며, 아랫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으로 윗사람을 모시지 말며, 앞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으로 뒷사람을 이끌지 말며, 뒷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으로 앞사람을 따라 하지 말며, 오른쪽 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으로 왼쪽 사람에게 건네지 말며, 왼쪽 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꼈던 것으로 오른쪽 사람에게 건네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것을 혈구지도라고 한다.
윗사람이 나에게 함부로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런 나의 마음을 헤아려 아랫사람을 대하고, 아랫사람이 나에게 무례하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런 나의 마음을 헤아려 윗사람을 대하고, 상하 전후좌우에 걸쳐 모든 인간관계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또한 혈구지도이다. 상사에게 꾸중을 받고 부하에게 화풀이하거나 부하가 자기를 공경하지 않는 것을 탓하면서 자기는 상사를 못마땅해 하는 등 인간 사회에 혈구지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혈구지도는 바로 삶을 살아가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대학』, 전10장」중에서
어두운 곳보다 잘 드러나는 곳은 없고, 미세한 것보다 잘 나타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를 가장 조심한다.
어두운 곳은 앞서 말한 보이지 않는 자기 내부의 세계를 말하며 미세한 것은 들리지 않는 자기 내부의 상념을 말한다. 이것들은 겉으로 나타나기 이전에는 남들이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두운 곳이요, 미세한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으로 볼 때는 이보다 잘 드러나고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즉,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상념들이 천리에 의한 것인가 인욕에 의한 것인가, 또는 선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는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자는 홀로 있을 때를 조심해야 하며,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모든 악행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며, 자기가 잘못된 길로 나아가게 되면 어느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가장 먼저, 그리고 훤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용』에서의 신독愼獨은 『대학』에서의 성의誠意, 즉 자신의 의지를 성실히 다지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중용』, 제1장」중에서
공자가 말했다. “도가 행해지지 않는 까닭을 내가 알겠도다. 지혜로운 자는 지나치며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가 밝혀지지 않는 까닭을 내가 알겠도다. 현명한 자는 지나치며 모자란 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누구나 먹고 마시기는 하지만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중용의 용庸에 평상平常이라는 뜻이 있는 것에서 보아도 중용은 원대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가까운 곳 어디에나 있다. 우리가 늘 마주치고 처리하는 일상의 만사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혜로운 자는 너무 지혜를 믿고 추구하는 까닭에 그저 고매하고 원대한 곳에서 중용을 찾으려고 한다. 실제로 우리는 사고와 이론에 치우친 나머지 현상과 실천을 등한히 여기는 경우를 많이 본다. 중용은 그렇게 먼 것이 아니요, 우리 주위 일상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어리석은 자는 그야말로 어리석기 때문에 중용의 소재도 가치도 당위도 깨닫지 못한다. 따라서 지혜로운 자는 너무 지나친 까닭에 어리석은 자는 너무 모르는 까닭에 중용의 도가 행해지기 어려운 것이다. ---「『중용』, 제4장」중에서
공자가 말했다. “배우기를 좋아하면 지혜에 가까운 것이요, 힘써 행하려 하면 어짐에 가까운 것이요, 부끄러움을 알면 용기에 가까운 것이다. 이것을 알면 자신을 수양하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을 수양하는 것을 알면 사람을 다스리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람을 다스리는 것을 알면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것을 알게 된다.”
주희는 애공哀公이 정치에 대해 물은 이후 20장 전체가 공자의 대답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 ‘자왈子曰’은 군더더기라고 하였으니, 전체 문맥으로 보면 일리 있는 견해이다. 천하와 만물에 확충되어 나갈 수 있는 보편적 인간관계, 즉 달도達道를 실행하게 하는 근본이 지혜智.어짐仁.용기勇라는 세 가지 달덕達德임을 앞에서 말했다. 여기서는 달덕을 이루는 단서를 말했다. 가깝다는 말은 단서가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 자체가 지혜는 아니지만 지혜를 이루는 단서가 되며, 힘써 행하는 것 자체가 어짐은 아니지만 어짐을 이루는 단서가 되며, 부끄러움을 아는 것 자체가 용기는 아니지만 용기를 이루는 단서가 된다는 뜻이다. 맹자가 제시한 사단四端과 일맥상통한다. 여기서는 집안을 다스리는 것이 사람을 다스리는 것으로 대치되었지만, 자기 수양으로부터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것으로 나아가는 『대학』의 정신과 같다. ---「『중용』, 제20장」중에서
지성에 이르는 차선의 방법은 어느 한 덕목을 극진히 실현하는 것이다. 세세한 어느 한 덕목에도 진실무망은 있을 수 있으니, 진실무망하면 형체가 나타나고, 형체가 나타나면 뚜렷해지고, 뚜렷해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변하고, 변하면 지성으로 승화하니, 오직 천하의 지성만이 승화하게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천하의 지성만이 나를 비롯하여 천지 만물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성을 실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천지의 도와 짝한다고 한 것은 성인聖人의 경지를 말한 것으로, 보통 사람이 처음부터 이와 같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치곡致曲을 말한 것이니, 치곡은 지성의 차선으로, 인仁.의義.예禮.지智 또는 효孝.제悌.충忠.신信 등 어느 한 덕목을 극진히 실현하는 것이다. 이들 하나하나에도 진실무망이 깃들어 있으니 이를 확충해 나가면 지성에 도달하게 된다는 말이다. 하나의 덕목을 체득하여 온전히 실현하고 이를 점차적으로 확충해 나가면, 지성의 형체가 나타나고, 나타나면 뚜렷해지고, 뚜렷해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변하고, 변하면 승화한다는 것이니, 이는 시기에 빠름과 늦음이 있고 방법에 전체와 일단의 차이가 있을 뿐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경지는 한결같다는 말이다.
---「『중용』, 제23장」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