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봄 우리 집 마당가에 핀 명자꽃은 별스럽게도 붉었습니다 옆집에 살던 명자 누나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누나의 아랫입술이 다른 여자애들보다 도톰한 것을 생각하고는 혼자 뒷방 담요 위에서 명자나무 이파리처럼 파랗게 뒤척이며 명자꽃을 생각하고 또 문득 누나에게도 낯설었을 初經이며 누나의 속옷이 받아낸 붉디붉은 꽃잎까지 속속들이 생각하였습니다 In the spring that year, the flowers of the myeongja flowering quince in our garden were exceptionally red. I thought it was because of Myeongja, the girl who lived next door. I thought that her lower lip was fuller than those of other girls, as I tossed and turned like a quince leaf, alone on my blanket in my back room, thinking about quince flowers, and her unaccustomed first period, I even kept thinking of the deep red petals that her underwear had welcomed. --- 본문 중에서
내가 말에 홀려 살아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쓴 문장이 당신의 마음을 흐리게 만들었다. 당신의 마음을 씻는 일이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I thought that I had lived bewitched with words, but it was not so. The phrases I wrote muddied your heart. It seems that ultimately it is my task to wash your heart. --- 시인노트 중에서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낸 이후 2012년 『북항』을 내고 몇 년간 절필했다 돌아온 최근 에 이르기까지, 안도현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태도는 소외된 이들을 향한 사랑과 연대의 시선이 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물론 자연을 향해서도 시인의 시선은 낮은 곳, 소외된 곳까지 미친다. After publishing his first collection of poems, “Jeon Bong-jun on his Way to Seoul,” in 1985, then “North Port” in 2012, Ahn Do-Hyun stopped writing poetry for some years, but has recently begun again. The attitude penetrating his poetry can be considered as a gaze of love and solidarity directed at those who are marginalized. The poet’s gaze reaches not only the world where humans live together but also the world of nature. --- 해설 중에서
시인이 ‘보는 사람’이라면 안도현은 “세상의 뒤쪽이거나 아래쪽”을 보아내는 것으로는 이미 일가를 이루었다. 그가 보아내는 존재들은 사람이기도 하고 자연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우리가 우리 뒤로 미뤄놓았던 감정의 본모습이기도 하다. 그것들은 한없이 연약해서 안도현은 언어의 손길로 가만가만 어루만진다. 그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어루만지고 감싸 안으면서 안도현의 시는 우리 세계의 거대한 사랑 하나를 기어이 완성해내려는 중이다. 김 근
나는 안도현 시인이 ‘연탄’을 소재로 한 시를 좋아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연탄에도 사랑을 줄 줄 아는 시인의 시. 「가을 엽서」에서도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는 낙엽은 가을이 되어 그냥 떨어지는 낙엽이 아니라 땅에 사랑을 주려고 살포시 내려앉는다는 것을 배운다. 나의 인생관인 낙관주의를 안도현의 시에서 찾아볼 수 있어서 세계 사람들에게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받아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릴 수 있다. 괵셀 튀르쾨쥬(터키)
그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연어』처럼 안도현의 시는 반짝거리며 흐른다. 사람과의 교제의 귀중함을 무감각하게 위협하는 일상생활의 압박감 속에서, 그의 「겨울 강가에서」 「연탄 한 장」 시들에 나타나는 기품과 겸손함은 우리의 삶을 지속시켜 주는 건 서로와의 훈훈함과 기본적 품위라는 것을 편안히 상기시킨다. 우리는 안도현의 시적세계에서 삶을 살만한 가치가 있게 하는 작은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브루스 풀턴(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