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른 손바닥을 뒤로 뻗고 주먹을 꽉 쥐어서 “멈추라”는 수신호를 냈다. 대여섯 발 참으로 강계 포수를 뒤따르던 새끼포수 복길이와 부뜰이가 걸음을 멈추고 마른 침을 삼켰다. 회령 벌판이 한눈에 잡히는 오봉산 7부 능선 길, 앞 쪽으로는 범바위가 우뚝 솟아있는 곳이다.
범바위로 향하는 산모롱이 숲 가운데가 시들부들 누워서 쪽진 가르마처럼 길을 텄다. 강계 어른이 짚신 코 걸음으로 그 길을 두어 장 들어서더니 문득 허리를 숙이곤 무언가를 집어 입에 넣어 오물거렸다간 뱉어냈다. 호분(虎糞)이었다. 강계 포수가 터진 숲길을 되나와 나직하게 말했다.
“얼마 안 됐어, 발자국까지 또렷해.”---1장 호랑이 사냥꾼
2. 프랑스군은 어재연 부대가 숨어있는 광성보에 수시로 정찰병을 보냈다. 그들은 조선군이 주둔한 낌새만 채면 득달같이 총포를 끌고 가 박살냈다. 어재연 부대원은 광성보 성곽 근처에 몸을 숨기고 귀와 눈은 프랑스군 동태만 살폈다. 파란 군복의 정찰병이 먼 곳에서 닥친다는 척후만 보고되면 뿔뿔이 제 살 구멍으로 흩어져 몸통을 감추고 숨소리를 죽여야 했다.
느닷없이 나타난 프랑스 정찰병이 성곽 쪽을 어른거릴 때면 하던 일도 멈추고 그들이 까마득히 먼 시야 바깥으로 벗어날 때까지 산송장 행세를 했다. 광성보에서 목숨을 부지한 나날의 매 일각이 한없이 비참했다. 오랑캐가 한 달여 만에 갑곶이를 철수할 때까지, 어재연은 화승총의 목줄을 졸라 총의 울음을 죽였고 자신의 머리끄덩이를 쥐어뜯어가며 참고 또 참았다.---4장 체읍(涕泣)
3. 억하심정에라도 치받히는 것 같았다. 훈초의 숨구멍을 타고 솟구치는 말들이 목울대에 걸려 컥컥거렸다. 탁탁 소리를 내며 타는 모닥불이 어른의 목 심줄을 오롯이 반사했다. 탱탱한 어른의 언어가 막바지를 치달았다.
“백두산 자락에서 그 무시무시한 고려 범을 기다렸던 숱한 밤들을 떠올려라. 오랑캐가 일곱 장 안에 들어 올 때까지……. 무조건 기다려라. 죽을 수는 있어도, 무릎 꿇어 살 길은 없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더운 가슴으로 끌어안아라, 그게 범 포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