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미셸 드 몽테뉴는 1533년에 보르도(Bordeaux)의 약 30마일 동쪽에 있는 도르도뉴(Dordogne)의 에이켐(Eyquem) 가(家)의 귀족령(貴族領) 몽테뉴(Montaigne) 관(館)에서 태어났다. 미셸의 아버지 피에르(Pierre)는 젊은 시절에 프랑소와(Francois) 1세의 이탈리아 원정에 종군하여 돌아온 그는 가세(家勢)를 확장시켜 보르도(Bordeaux)의 시장(市長)이 되었다. 미셸(Michel)은 태어나자마자 가난한 초부(樵夫)의 집에 양자로 보내져 양육되다 돌아온 미셸은 가정교사에게 맡겨져 라틴어만을 사용하며 양육된다. 여섯 살이 되자 미셸은 보르도에 있는 귀이엔느(Guyenne) 학교에 입학했는데, 라틴어를 잘하는 미셸은 곧 상급반으로 편입하여 13세에 그 전 과정을 마쳤다. 1554년 툴루즈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마치고, 페리그(Perigueux) 시(市)에 개설된 어용금(御用金) 재판소의 참사(參事)가 되었다. 1565년 9월 23일 보르도 고등법원의 재판관의 딸 프랑소와 드 라 샤세뉴(Francois de La Chassaigne)와 결혼하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딸 여섯을 낳았지만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찍 죽는다. 1568년 갑작스레 아버지를 잃은 그는 생전의 아버지의 부탁에 따라 레이몽 스봉(Raymond Sebond)의 ≪자연신학(自然神學)≫을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간행한다. 1570년 7월 24일 보르도(Bordeaux) 고등법원을 은퇴하고 영지(領地) 몽테뉴로 돌아왔다. 1580년 6월에 ≪수상록≫ 초판본 두 권을 간행한 후 그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막내 동생과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여행 도중 ≪여행 일기(Travel Journal)≫를 남겼다. 1581년 9월, 그는 보르도(Bordeaux) 시(市)의 참의(參議)로부터 보르도의 시장(市長)에 선출되었다는 통지를 받고 시장 취임을 수락하고 11월에 보르도로 돌아와 시장에 취임한다. 1586년 2월 시장직(市長職)을 그만두고 전에 간행한 ≪수상록≫의 초판을 대폭 수정하고 제3권에 수록할 수상(隨想) 13개의 장(章)을 썼다. 원고가 정리되자 1588년 2월 파리로 가서 증보 수정(增補修正)된 ≪수상록≫을 간행했다. 1590년 앙리 4세는 몽테뉴에게 요직(要職)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으나 건강을 이유로 거절한다. 1592년 9월 13일 인후염(咽喉炎)으로 말을 할 수가 없어 주위 사람들과 글로써 대화를 나누고 부근에 사는 귀족들과 함께 미사를 올린 뒤 59세 나이로 숨을 거둔다.
1934년 서울 출생이며 서울대학교불문학과를 졸업하고 同대학원 불어불문학과를 수료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연구논문 「플로베르의성격과작품연구」이 있다. 외무부 외교연구원 불어 강사와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강사, 성균관대학교부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외국어교육과부교수, 교수, 계명대학교 외국어대학 프랑스과 교수, 한양대학교불문과교수 등을 역임했다. 1984년 PEN번역 문학상과 1985년 프랑스대통령으로부터 문화공로 훈장을 받았으며 1999년 PEN번역 2차 수상을 했다. 저서로는 『프랑스문학사』, 『사르트로 연구』외 다수가 있고, 역서는 『에밀』, 『시지프스의 신화』, 『현대불문학사』, 『보봐리 부인』, 『좁은문』, 『초대받은 여자』 외 다수가 있다. 또한 불역서로는 『한국시집』, 『춘향전』, 『별주부전』, 『토지』, 『김춘수 시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