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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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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의 일기

심윤서 | 가하 | 2010년 05월 0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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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5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372쪽 | 376g | 128*188*30mm
ISBN13 9788993883213
ISBN10 899388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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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없는 건가요?”

광폭한 짐승처럼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에 여자의 목소리가 묻혔다. 그 목소리 끝에서 느낀 떨림 때문이었을까. 이기자 여사는 마주앉은 젊은 여자를 찬찬히 다시 바라보았다.
노란 고무줄로 아무렇게나 질끈 묶은 머리. 검게 그은 피부. 콧등과 뺨까지 퍼진 자잘한 주근깨. 낡은 청바지. 게다가 회색 후드 티셔츠는 잦은 세탁으로 가슴에 인쇄된 ‘Only Hope’라는 글씨가 자글자글했다. 이기자 여사의 꼼꼼한 눈초리가 불편한지 여자는 손을 들어 주근깨가 박힌 콧등을 슬쩍 문질렀다. 스물세 살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여자의 손끝은 거칠게 갈라지고 손톱은 뭉툭했다. 스타킹 따위는 엄두도 내지 못할 손이었다.
처음이었다. 환자를 걱정하는 사람은. 오늘로써 다섯 명을 만났지만 그중에 단 한 사람도 환자의 상태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지 않을까 탐색하는 물음 외에 다른 관심은 없었다. 물론 관심을 보였어도 싫었을 테지만.

“1년, 아니, 어쩌면 10개월.”

이기자 여사는 번쩍하고 마른 벼락이 내리치는 하늘로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이 상황이, 아들의 남은 시간을 가늠하는 이 순간이 여사에게는 말 그대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아드님은 찬성하셨나요?”

“그건 아가씨가 걱정할 일이 아니지.”

“그래도…….”

“이봐요, 윤 양. 윤 양은 돈이 필요하고 나는 내 아들의 핏줄이 필요할 뿐이야. 죽어가는 놈의 의견 따위 필요 없어.”

성마르게 은빛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물고 라이터를 켜다가 이기자 여사는 갑자기 라이터와 담배를 집어던지고 이마를 짚었다. 상아색 가죽 소파에 무너지듯 등을 기대는 여사의 어깨가 몹시도 떨렸다. 완두콩만 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 손가락 역시 불안하게 흔들렸다.

“스물다섯 살에 그 아이를 유복자로 낳았어. 그런데 그 아이가 죽어가. 어쩌면 내 손자도 유복자가 될지도 모른다니……, 기막히게 드센 팔자야.”

어느새 감정을 정리하고 담배를 피워문 이기자 여사의 목소리는 낮고 깔끄러웠다.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커다란 창으로 순식간에 먹장구름이 몰려왔다. 응접실에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눈이 부실 만큼 빛을 뿌리고 있었지만 산란한 빛 조각에 무겁고 습한 공기가 눅눅하게 들러붙었다.

“도와줘요.”

여사는 여자의 눈이 마음에 들었다. 꼭 집어 말할 순 없었지만 담담한 까만 눈동자에 어린 기운이 마음에 들었다. 진심을, 어디까지나 여사의 주관적인 감정이었지만 여자의 눈동자는 진심을 담고 있었다.

“도와줘요, 윤 양.”

이기자 여사는 여자의 후드 티셔츠에 인쇄된 ‘Only Hope’라는 글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애원했다. 갑자기 앞에 앉아 있는 여자가 단 하나의 희망처럼 절박해졌다.

“조건이 있습니다.”

무거운 수증기를 머금고 뒤엉켜 꿈틀거리는 검은 구름을 응시하던 여자는 주먹을 모아쥐고 이기자 여사의 시선을 찾았다. 빨갛게 핏발이 선 여사의 눈을 바라보며 여자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10개월, 함께 지내게 해주세요.”

쏴아아아.
여자의 말과 동시에 기어이 사나운 소나기가 쏟아졌다.


200X 6월 1일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 낮 최고기온 22도.

서른.
그에게 남은 시간은 10개월.
이를 악물고 버티어준다면 1년쯤.
어쩌면 그는 6월의 소나기를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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