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라는 것은 언제나 미완성의 것, 불완전한 것, 아니 오히려 결코 완전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수많은 의미로 가득 찬 세계는 과실로 가득 찬 세계와 같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인생의 의미란 무엇입니까?”하고 묻는다면, 그는 선뜻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 문제로 수없이 고민하기도 하지만 쉽게 답을 얻지는 못한다.
어떤 살인자는 독이 들어 있는 병을 손에 쥐었을 때, 뭔가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보통의 사람들은 살인자가 자기 자신밖에 모르고 다른 사람은 안중에 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또한 독이 든 병을 들고 있는 게 대단한 가치를 주는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식물이 예견을 할 수 있다든가, 모든 결과를 앞당겨 볼 수 있다고 해도, 그런 능력은 식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식물에게 있어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곧 그는 나를 밟아버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발아래에서 무참히 죽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게 어떤 이익이 될까. 식물은 뿌리를 내린 곳에서 도망쳐 나올 수 없다. 그렇지만 움직이는 동물들은 행동을 예견할 수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실로 인해 동물에게는 마음이나 영혼이 있다고 가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어설프게 만들어 내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그와 같은 식으로 해서 현실 속의 어떤 상대와도 사랑할 필요가 없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감정에 깊이 빠지는 것이다. 너무 높은 사랑의 이상 또한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진다. 왜냐하면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범죄자는 훈련되지 않고 미숙한 노동자이다. 그들의 경력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학교시절이나 그 훨씬 이전에 이미 직업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한 요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협동한다는 것을 배운 적이 없는 것이다. 협동은 배우고 훈련받아야만 하는 것인데, 범죄자들은 협동에 대해서 잘 훈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맏이는 잠시 동안 독자(獨子)의 상황을 경험하다가 둘째아이의 탄생과 함께 돌연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도록 강요된다. 맏이는 일반적으로 많은 주의와 보호와 애정을 받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지위가 빼앗겼음을 깨닫게 된다. 또 한 명의 아이가 태어남으로 인해 맏이는 이제 특별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아이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사랑을 자기의 라이벌과 함께 나눠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