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자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로 중앙일보 외교전문기자 역임했다.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및 동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를 거쳐 헝가리 국립과학원(HAS)에서 ‘동유럽 정치체제 전환’을 연구 주제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발칸분쟁사』, 『야만의 시대-영화로 읽는 세계 속 분쟁』, 『독재자 리더십』, 『부다페스트』 등이 있다.
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시대를 만든 인물’이라는 평가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동갑내기 헨리 키신저로부터 이와 같은 극찬을 받았다. “시대가 인물을 만드느냐, 아니면 인물이 시대를 만드느냐 하는 오래된 논쟁에서 리콴유는 후자가 옳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했다. ---p.3
리콴유의 실용주의적 기질은 일본 식민지 시절에 익혔다. 그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며, 필요하다면 누구에게서나 배워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때로는 실용주의가 ‘철학 없는 철학’으로 비치지만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정글 같은 곳에서 생존해야 하는 작은 나라 싱가포르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p.17
리콴유는 군 건설 초기 때부터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혹은 그에 준하는 명문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국군 장학금을 만들었다.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이들 군인들은 전공에 관계없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대학의 전 과정을 국가 장학금을 받아 유학할 수 있었다. 월급뿐만 아니라 학비, 생활비 등 일체를 지급해 주었다. 조건이 있다면 유학 이후 8년 동안 군에서 의무 복무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싱가포르 군대는 무조건 갔다 와야 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상상하기 힘든 특혜를 주었다. 따라서 군에서 능력만 발휘한다면 싱가포르에서 충분히 유능한 인재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싱가포르 정부는 의무 복무를 마친 군부 엘리트들을 정부 관료나 정부 산하 위원회에 우선적으로 임용함으로써 이들을 싱가포르 정부의 엘리트로 충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군의 우수성도 높일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인재 자원을 탄탄하게 만드는 효자 노릇을 했다. ---p.33
21세기 들어 싱가포르 교육은 이제 창의성 교육에 목을 매고 있다. 리콴유의 후계자인 고척동 총리는 2000년 8월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모든 싱가포르의 젊은이들은 혁명가나 반란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이제 단순한 모방으로는 퇴조할 수밖에 없고 창의적인 교육 혁신을 통해 국가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가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싱가포르는 1997년부터 ‘생각하는 학교와 배우는 국민’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학업 성적보다는 문제 해결 능력과 사고력, 창의력 배양에 초점을 맞춘 교육 개혁을 추진해 왔는데, 아예 모든 국민들이 시대의 반란자처럼 행동하라는 극단적인 요구를 할 정도로 교육의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 ---p.42
싱가포르의 안전을 위해서는 그 누구든 싱가포르 국내법에 따라 처벌을 받으며, 혹 그 조치가 전 세계의 비난을 받더라도 싱가포르 정부는 이에 절대 굴복하지 않고 있다. 1993년에 마이클 페이라는 미국 청년이 싱가포르에 와서 장난삼아 20여 대의 민간 차량에 페인트 스프레이를 뿌리고 교통 표지판 등 공공 기물을 훼손했다. 그는 즉각 경찰에 체포되었다. 싱가포르 법원은 페이에게 징역형과 함께 태형으로 곤장 여섯 대를 선고했다. 그러자 미국 정부가 발끈했다. 이 사건으로 전 세계에서 싱가포르 형행 제도의 비민주성과 인권 침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특히 미국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엄청난 압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정부나 법원은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결국 형을 집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