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어디 있습니까?” 간호사가 대답했다. “저기요!” 버튼의 눈길이 간호사의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두툼한 하얀 담요를 뒤집어쓰고, 일흔 살쯤 된 듯한 노인이 아기 침대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드문드문한 머리카락은 거의 백발이었고, 턱밑으로 흘러내린 긴 잿빛 수염은 창문에서 솔솔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맥없이 흔들거렸다. 노인이 뭔가 곤혹스런 의문을 감춘 듯한 흐릿한 눈빛으로 버튼을 쳐다보았다. 버튼은 그때까지 자신을 짓누르던 두려움을 잊고 화를 버럭 내며, 천둥처럼 소리쳤다. “내가 미친 거요? 아니면, 이 빌어먹을 병원이 장난을 치는 거요?” 간호사가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에겐 장난으로 보이지 않는데요. 버튼 씨, 당신이 미쳤는지 제정신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 노인이 당신 아이인 건 분명합니다.” 버튼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송골송골 솟았다. 그는 눈을 꼭 감았다 떴다. 그리고 노인을 다시 쳐다보았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의 눈앞에는 일흔 살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일흔 살은 됨직한 아기, 아기 침대에 앉아 두 다리를 침대 밖으로 늘어뜨린 아기였다. --- p.10
“당신은 낭만을 즐길 줄 아는 나이잖아요, 쉰 살이면. 스물다섯은 처세에만 힘쓰고, 서른은 일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요. 또 마흔은 시가 한 대를 다 피워도 얘기가 끝나지 않을 정도로 사연이 많은 나이고, 예순은 일흔에 가까우니 죽을 때를 기다리는 나이지만, 쉰은 한가하고 유유자적한 나이잖아요. 그래서 나는 쉰 살이 좋아요.” 벤자민에게도 쉰 살은 정말 멋진 나이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쉰 살이 되고 싶었다. --- p.30
방에 올라가서 그는 낯익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거울에 가까이 다가가서 걱정스런 마음으로 얼굴을 뜯어보았다. 그리고 군대에 입대하기 직전에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과 비교해보았다. “이럴 수가!” 그 과정이 계속되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제 그는 서른 살처럼 보였다. 기쁘기는커녕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는 점점 젊어지고 있었다! 그때까지 그의 신체나이가 실제나이와 일치하는 시점이 되면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그 해괴한 현상이 멈추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계속 어려지고 있었다. 온몸이 오싹해지고 소름이 돋았다. 그의 운명이 끔찍하게만 여겨졌다. --- p.37
“이제 알겠지. 나는 운명이야.” 유리그릇이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너의 하잘 것 없는 계획들보다 힘이 센 운명이지. 나는 네 작은 꿈들과는 달라. 나는 쏜살같이 날아가는 시간이자, 아름다움의 끝이며, 지각할 수 없는 존재이며, 잔인한 시간들을 형성하는 작은 순간들이 바로 나라는 존재야. 나는 어떤 규칙으로도 증명할 수 없는 예외이며, 네 힘이 미치지 못하는 한계이자, 인생이라는 요리의 양념이야.” --- p.89
그런 뒤 그들은 하늘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다. “몇 층으로 가십니까?” 엘리베이터맨이 물었다. “어느 층이든.” ‘미스터 인’이 말했다. “최상층으로.” ‘미스터 아웃’이 말했다. “여기가 최상층입니다.” 엘리베이터맨이 말했다. “다른 층으로 가게.” ‘미스터 아웃’이 말했다. “더 높이.” ‘미스터 인’이 말했다. “천국으로.” ‘미스터 아웃’이 말했다. “물론 그래. 하지만 네게 있어서 내가 항상 우선은 아닐 거야. 너도 이제 자라서, 네 또래의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하면 아빠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리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