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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숲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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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숲으로

김윤수 | 로담 | 2014년 03월 1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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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3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372g | 128*188*30mm
ISBN13 9791156410041
ISBN10 1156410045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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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   콘판나   평점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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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사귀고 싶어요?”
“네.”
“그건 곤란한데.”
그는 태연히 대꾸했다.
“나는 집안에서 정해준 여자와 결혼해야 하거든요.”
그렇겠지. 그는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었다. 그렇다면 깨끗이 물러나는 게 맞는 거다. 비로소 나는 안도했다. 이제야 뭔가 제 궤도에 오른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군요. 당연하죠. 오빠 정도면 당연히 애인이 있겠죠. 무슨 기대를 갖고 얘기한 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나 애인 없는데.”
“네?”
“아직 정해지진 않았거든요. 누가 될지는.”
선뜻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정해준 여자와 결혼을 해야 하는데 아직 그 여자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럼 지금은 애인이 없다는 소리잖아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요. 내가 싫으면 그냥 싫다고 얘기하면 돼요. 아직 결혼할 여자도 없다면서 결혼 땜에 거절하는 건 말이 안 되거든요?”
내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짜증이 묻어났다. 이런 신이 내린 미모의 소유자에게 짜증을 내다니, 내면서도 자책감이 들 지경이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난 그쪽이 싫지 않아요. 그러니 싫다고 거절할 수는 없어요.”
나직하고 차분한 음성이었다. 이번만큼은 그의 무심하던 음성에 뭔가 감정이 실려 있는 듯했다. 내가 싫지 않다고? 순간 이게 뭔가 싶었다. 심장이 다시금 쿵쾅거렸다.
“그렇다고 그쪽과 결혼할 수는 없으니, 사귀어선 안 되잖아요.”
하!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스무 살에 연애를 하면서 누가 결혼을 생각하나? 난 이제 막 고교를 졸업한, 새내기란 말이다.
나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빠, 나 이제 겨우 스물이거든요? 누가 이 나이에 결혼을 생각하고 만나요?”
내가 최장 시간 남친과 사귄 기간은 딱 백 일이다. 그 외에는 일주일 만에 헤어진 적도 있고, 대부분은 두어 달을 넘기지 못했다. 이 남자는 그중에서 가장 스펙 쩔고 퀄리티 돋는 몽타주니 한 6개월은 갈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이 남자한테 차일 확률이 백 퍼센트지만.
뭐 어쨌든 돌려 말하든 메쳐 말하든 결론은 같다. 나는 할 만큼 했고, 이제 여한은 없다. 이만큼 상대해 준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다.
“오빠 뜻은 알았어요.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래도 내가 반한 사람이 반듯한 성품을 지닌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혼? 많이 앞서가긴 해도, 기분은 괜찮네. 대놓고 싫다는 소릴 듣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거절당하는 게 훨 낫지. 역시 내가 보는 눈은 있었어.’
입가엔 미소가 고였지만,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냥 마음이 아팠다. 백 일 동안 사귀었던 정민 오빠와 헤어졌을 때도 이렇게까지 마음이 아프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날 밤 두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다. 그저 외모에 반했을 뿐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애써 자위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와 직접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눠보니 그에 대한 마음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내가 싫어서 거절을 한다면 한 번쯤 기회를 달라고 떼를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할 수 있는 여자하고만 사귀겠다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난 그때 신분제가 철폐되었다고 믿었던 우리나라에 아직까지도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자각했던 거다.

‘네가 싫진 않지만, 넌 나와 신분이 달라서 사귈 수 없어.’

이 얼마나 모욕적이고 굴욕적인 언사인가. 그러나 그때 나는 너무 어렸다. 그저 듣기 좋은

말로 거절해주는 것을 고마워했을 뿐, 그의 진정한 속뜻을 헤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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