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지 않으면 빼앗기고 만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분신사바라는 놀이를 떠올렸다.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여러 명이 연필을 마주잡고 둘러앉아 분신사바, 분신사바를 읊조리면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 주인공 ‘태이’와 ‘종목’을 비롯한 친구들이 했던 ‘소리나무 놀이’는 이 분신사바와 얼추 비슷하다. 분신사바는 저 세계에서 이 세계로 죽은 자를 소환하는 것이고, 소리나무 놀이는 소리나무를 두드려 ‘그것’들을 불러낸다.
‘그것’들은 자신을 불러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그 ‘얼굴’을 뺏으려한다. ‘그것’들이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얼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사람을 쫓아다니며 계속해서 질문을 한다.
- 내가 누구니
소리나무 놀이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 놀이는 사람에게 한없이 불리하다. 얼굴을 빼앗기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그것’의 질문에 답을 해서는 안 된다. 반칙을 해서도 안 된다. 틀린 답을 말하거나 반칙을 하면 ‘그것’에게 얼굴을 뺏기고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불러낸 사람은 규칙도 잘 모르며, 대답역시 알 방도가 없다.
태이는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발견된 낡은 공책에서 우연히 이 소리나무 놀이에 대해 알게 되고, ‘김이알’이라는 석수장이를 찾아가면 친구에 대한 복수를 할 수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한다. 태이에게는 재호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순진했던 친구는 ‘이빨’이라고 불리던 일명 ‘일진’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친구를 죽음으로 내몬 그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친구를 외면했던 자괴감에 휩싸여 태이는 이 놀이가 어떤 사태를 불러올지도 모르고 김이알을 찾아 그가 사는 돌내리로 간다. 그리고 여러 친구들이 하나둘씩 가담하여 시작된 소리나무 놀이. 아이들은 밤마다 석수장이의 집으로 가서 소리나무를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그리고 결국 보게 된 버선발처럼 생긴 3개의 발과 아홉 번째 소리나무를 두드리는 존재, 드디어 나타난 ‘그것’들.
‘그것’들이 나타난 후 태이가 좋아했던 ‘연서’라는 여자아이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또 재희를 괴롭혔던 ‘이빨’ 다섯 명이 모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는데 CCTV에 찍힌 영상에는 놀랍게도 태이가 있었다. 태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한 ‘그것’이 이빨들을 죽였음을 깨닫고, 할아버지 역시 태이가 위험한 놀이에 가담한 것을 눈치 채고 서둘러 태이를 서울로 올려 보낸다. 손자를 비롯한 가담자 모두를 도동마을에서 무사히 쫓아내지만, 딱 한명. ‘종목’이라는 친구만이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도동마을에 남는다. 그렇게 15년의 세월이 흐른다.
어느 날, 놀이의 가담자중 한명이었던 ‘국수’에게서 단서를 발견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종목이 있는 도동마을로 15년 만에 모이기로 한 친구들. 하지만 택시운전사였던 ‘국수’는 도동마을로 오는 도중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국수에게 놀이를 끝낼 해답을 얻었다는 연극배우 ‘용주’역시 무대 위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태이는 복수에 눈이 멀어 이 위험한 놀이에 친구들을 끌어들인 자신의 미련함을 탓하며, 자신의 손으로 이 놀이를 끝내고자한다. 하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인 해답, 매일매일 찾아와 얼굴을 뺏으려하는 ‘그것’들, 이 놀이의 시작인 석수장이 김이알의 실종, 갑자기 나타난 묘령의 여인 ‘창아’와 정체를 숨기고 소리나무 놀이에 가담한 ‘처단자’, 의미를 알 수 없는 반쪽짜리 그림 한 장.
이 미스터리한 사건 속에서 다행히 차 형사라는 인물이 나타나 태이와 종목을 도우고, 그림과 김이알에 대해 잘 아는 풍교수가 일종의 힌트를 던져주지만 결국 열린 결말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고, … 아홉이 여덟이 되고, 여덟이 일곱이 되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놀이. 그 시작은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빼앗으려는 자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가 존재하는 한 아마 영원히 반복될 놀이.
그것이 나타나서 질문을 던질 때마다 점점 고통에 매몰되고, 존재자체에 의문을 갖게 되는 인간이라는 존재. 그것이 강하다기보다 폭력에 가까울만큼 쏟아지는 질문에, 마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 같은 상황. 그속에서 나약해지는 마음이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 그 불안함에 기생해 그것들이 야금야금 삶을 이어간다는 것. 또한 은애 - 남을 사랑하는 감정이 있기에 인간이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 밖에 없는 놀이라는 것. 열린결말도 싫지만 가장 슬펐던 건 이렇게 ‘인간’이라는 존재가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존재라는게 왜 나약하게 비쳐져야 하는지, 그 사실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