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가 일어나기 전 광장은 클로버 밭이었다. 평화롭고 평범했다. 하지만 집요하게 관찰하자 클로버 꽃의 풍부한 꿀을 빨아먹는 벌떼가 눈에 들어왔다. 번잡한 화요일 아침, 찰리는 비밀스러운 벌집, 장 조레스 광장이 소매치기들의 천국이라는 사실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 p.17
“우린 폭력 따위는 쓰지 않아.” 아미르가 설명했다. “실력 있는 기술자는 쇠붙이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 그건 깡패들이나 하는 짓이지.” 아미르는 말이 끝나자마자 한 발끝을 세워 찰리의 왼편으로 빙그르르 돈 다음 지나가는 젊은 여자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소매치기의 아름다움이랄까? 소매치기에는 그게 필요해.” --- p.55
찰리는 지금 저 만을 어슬렁거리는, 햇볕에 그을린 관광객들처럼 전혀 딴판인 두 삶을 오가며 지내고 있었다. 하나는 마르세유에 부임한 미국 총영사의 삐딱한 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소매치기단의 유망한 수습생 그레나딘 키드였다. 어쨌거나 찰리는 행복감을 느꼈다. --- p.182
각각의 기억이 스크린에서 되살아나며 영화 분위기가 코미디에서 비극으로 바뀌었다. 찰리는 문득 지난 몇 주 동안 찍은 이 영화가 결코 가벼운 범죄영화가 아니라 아무 매력도 없는 어둡고 사악한 다큐멘터리였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은 똥멍청이였다. 완벽한 바람잡이였다. --- p.265
생각해보라. 일단 구워진 빵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한다. 아침에 산 바게트는 저녁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오븐에서 방금 꺼낸 빵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본질적인 비극이 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시계태엽처럼, 여느 감각을 지닌 사람이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 제빵사는 다시 오븐 앞에 서서 신선한 빵을 굽는다. 다시 시작한다, 다시 깨어난다.
그 많은 아침들 중 그날 아침. 찰리를 다시 일어나 앉게 하고 세상으로 나가게 한 것은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 p.269
교장이 계속해서 말했다. “생각해봐라, 찰리. 로젠버그 암호문은 처음 만들어진 후 계속 주인이 바뀌었고, 같은 방식으로 내 수중에 들어온 거란다. 도둑질로. 즉 나도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방법으로 얻은 거란다. 이 점을 생각해봐라, 찰리. 이 단순한 지는 수십 명의 손을 거쳐 전해져 내려왔단다. 그런 손 바뀜은 언제나 사소한 손놀림과 재치의 발동으로 가능했지. 설마 너희 아빠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순수하게 접수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천만에, 암호문의 때가 묻지 않은 사람은 없다.” --- p.321
찰리는 문득 자신이 지금 원하는 게 복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이상 로젠버그 암호문을 되찾는 게 아니었다. 단순히 세븐 벨스 학교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 자신의 국가 이익에 저지른 부당행위를 바로잡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아빠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천만에! 자신은 지금 그들과의 게임에서 자신이 이기는 모습을 소매치기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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