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 꿈을꾸는나비 1월 6일생. 함박눈이 잔뜩 오던 날 태어남. 로망띠끄와 다음 팬카페 The Secret◈ 에 거주 중 (http://cafe.daum.net/dreamNABY) 강한 남자 캐릭터를 자주 주인공으로 쓰지만 알고 보면 장난꾸러기 캐릭터를 더 좋아함. 유쾌한 이야기를 쓸 때마다 스스로를 흐뭇하게 보는 여자.
“너 자꾸 그럴래?” 오늘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 보라지. 도무지 저놈의 능청맞음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뭐가?” “뭐가라니. 네가 자꾸 내 남자친구라고 소문내고 다니잖아!” 솔지의 말에 진성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저기 잠깐 앉자.” 진성이 가리킨 곳은 한적한 공원 벤치였다. 널브러진 신혁을 잘 내려놓고 진성과 솔지가 마주섰다. “김솔지.” “왜, 왜?” 솔지는 진성이 이렇게 자신을 진지하게 부를 때가 가장 무서웠다. 매사 장난스럽고 능청을 떨어대던 인간이 사뭇 진지해지는 경우는 몇 가지되지 않지 않았다. 정말 화가 났거나 엄청 진지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 단 두 가지 경우뿐이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친구로 남아줄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진성은 길게 한숨을 뱉으며 솔지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꽉 잡았다. 솔지의 눈과 진성의 짙은 갈색의 눈이 허공에서 얽혀들었다. “둔한 척 하지 마. 내가 왜 네 곁에 남아 있는지 너도 알잖아. 우리 그만 다시 시작하자.” 솔지의 커다란 눈이 길게 깜빡였다. 밤공기는 차다. 차가운 밤공기는 온몸의 열기를 더 부추겼다. 무언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마치 꿈틀꿈틀 단단한 알껍데기를 깨려는 움직임처럼.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위로 향긋한 향기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솔지는 지긋이 진성을 쳐다봤다. 과연 다시 시작할 사이였던가. 그들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친구라고 하기엔 너무 가까운, 또 연인이라 하기엔 너무 많이 부족한 그런 관계였다. 딱히 정의할 수 없는, 아니 정의하기 힘든 그런 관계. 단념해야 했고, 상처받지 않으려면 자신을 두터운 보호막으로 지켜 내야 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그 보호막이 자꾸 허물어진다. “갑자기가 아니잖아. 그땐 어려서 가볍게 만날 수도 헤어질 수도 있었어. 난 충분히 널 기다려 줬고 이제는 때가 된 거 아니야? 우리 솔직히 친구사이라고 하기엔 힘든 사이잖아.” 솔지는 바람결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심장 한편이 찌르르 아파왔다. “아니. 너랑 나, 다시 시작할 그런 거 아니야.” 두근대는 심장과는 달리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메마른 사막처럼 건조했다. 목구멍이 모래를 한 움큼을 씹어댄 듯 까끌거리고 따가웠다. “왜?” 되묻는 진성의 말에 솔지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글쎄 왜일까. 정확히는 그를 여전히 믿지 못하는 그녀의 마음 때문이기도 했고 거기다 그녀의 머리는 그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정확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상처는 한 번이면 족했다. 그냥 친구로 이렇게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로 그렇게 남아주길 바랬다. 이기적인 생각인 것을 알지만 이기적이기에 끝까지 모른 체하고 싶었다. “아……. 아무튼 이건 아닌 거 같아.” “내가 싫어?” 조급함, 그리고 다정한 눈빛을 진성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왜 그녀의 입술은 그에게 상처를 줄 말만 뱉어내는 걸까. 솔직히 말하면 이 상황에서 안겨들어 그에게 뜨거운 키스를 퍼부어야만 맞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것도 그녀를 움직이지 않았다. 진성이 싫지 않으며 오히려 그가 없다면 그녀는 굉장히 외롭고 서운할 것이다. 불타오르는 사랑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은 금방 꺼지기 일쑤였다. 오히려 진하게 편안한 그런 만남을 추구하는 편이었다. “아니, 싫지 않아. 그래도 이건 아니야.” 냉정하게 어깨에 오른 진성의 손을 내쳤다. 진성은 솔지가 쳐낸 손을 바라보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우선 데려다줄게. 가자.” 순순히 물러나는 진성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상처받았을까. 솔지는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미안해.” 작게 내뱉은 말은 멀찌감치 걸어가는 진성에게 닿을 리 만무했다. 돌아오는 차안엔 서먹한 기운이 흘러넘쳤다. 언제 어느 곳이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과는 상반된 모습에 솔지는 뭔가 불편했다. 거기다 알 수 없는 불안감까지 그녀를 옥죄었다. 신혁이 다행히 집 앞에서 깨어났다. 그를 데려다줘야 하는 수고는 덜었지만 신혁이 먼저 올라갈 때도 솔지는 계속 그 자리에서 머뭇거렸다. 그리고 어렵사리 진성에게 잘 가라고 인사를 할 때 불편한 감정을 속일 수 없었다. 솔지는 자신의 집 소파에 널브러져 누웠다. 아직도 믿지 못한다. 어릴 때의 불편한 감정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마치 화상 입은 자국처럼 그녀 마음속에서 지워지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