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랬다.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고. 내 생각은 이렇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좋아하는 일들만 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 p.10~11.
그때부터였다. 자존감이 끝도 없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광고회사답게 모든 것은 경쟁이었다. 한 달간의 신입연수 때부터 우리는 살아남기를 배웠다. 동기들은 하나같이 특별해 보였다. (…) 특출해 보이는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주로 ‘술 잘 먹는 여자 카피’로 통했다. 물론 그때도 지금도 술을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서만은 아니었다. 돈도 없고 특별한 재능이나 경력도 없던 나는 그저 미친 듯이 술을 먹었고, 그렇게라도 돋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 p.19
친구들의 조언대로 햇볕을 많이 쬐고, 운동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이대로는 내 인생이 무너져버릴 것 같아.’ 초조함마저 내 뒤를 바싹 쫓았다.
--- p.32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낫지 않으면 어떡하지. 평생 이렇게 살아가야 하나. 온갖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잔뜩 겁을 먹은 나에게 박사님은 괜찮다며, 누구나 몸이 아플 수 있듯 마음도 아플 수 있는 것이라고, 마치 감기처럼 오는 것이라 했다. 두려움에 떨던 내 손을 꼭 잡으며,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은 나에게 좋아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이미 스스로 노력하고 있으니 금방 괜찮아질 것이라 했다. 여전히 두렵고 불안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 p.36~37
하고 싶은 ‘일’을 ‘꿈’이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나는 좋았다. 그러나 꿈을 이룬 뒤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그런 것까지 생각하기에 나는 너무 근시안적인 인간이었다.
--- p.39
‘뭐야, 이렇게 간단한 거였어?’ 지구가 무너질 것만 같았던 내 걱정과는 달리, 막내가 점심을 같이 먹지 않는다고 해서 평화로운 점심시간에 갑자기 하늘에서 불기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지구도, 나도, 선배들도 멀쩡했다.
--- p.43
길고 어두운 터널이었다. 끝이 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터널의 끝에는 내가 있었다. 그림자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밝은 빛이 있다는 말처럼, 어두운 시간을 지나고 난 뒤 나는 내 안의 밝은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힘든 시간을 무사히 살아냈다는 신호처럼 진료실의 문을 닫는 소리가 탁 울렸다.
--- p.51
몇 천만 원의 빚이 있든, 어떤 걱정거리가 있든, 파도를 타는 그 순간만큼은 모두 잊을 수 있다고 사장님은 말했다. 다음 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파도를 타는 꿈을 꾸었다.
--- p.58
어떤 순간의 기억들은 간혹 머릿속에 슬로모션으로 남는다. 너무 좋아서, 잊기 싫어서, 자꾸 되감아 플레이하다 결국 늘어진 테이프처럼. 그날의 라이딩이 그랬다. 보드를 들고 서프숍으로 걸어가는 내내 멍했다. 믿기지 않았다. (…) 이후에도 나는 한동안 붕 떠다녔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구름 위를 미끄러진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고 해야 하나.
--- p.66
커피가 당기던 참에 발견한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카푸치노를 주문하니 이름을 물어본다. “SEXY SURFER.” 하와이에 왔으니 꿈꾸었던 섹시 서퍼가 되리, 나는 대답했다. 잠시 뒤, 커피가 나왔다. 종이컵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SIXY SOFO.”
--- p.75~76
퇴사 선언을 하고 며칠 뒤, 어느 부장님이 물었다. “하와이 이민 간다는 소문이 있던데?”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어느새 하와이 이민으로 둔갑해 있었다. 아무려면 어때. 하와이든 호주든 서핑만 할 수 있다면야. 그렇게 4년 2개월간의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시원섭섭하지 않냐고들 물었는데, ‘시원후련’했다. 설렘은 덤이었다.
--- p.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