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하다고 그것이 꼭 답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궁금함은 질문이 아니라 관심이기 때문이다. 알고 싶은 것이 많아지고 책에서 작은 단서라도 보이면 그것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알아낼’ 태세를 갖춘다. 그래서 책에 더 쉽게 빠져들게 된다. 간혹 궁금함이 궁금함의 꼬리를 물고 질문하고 답하기를 반복하다가 스스로 답을 찾을 때도 있다. --- p.23
예리함은 모두 내려놓은 듯이 깔깔거리면서 책을 보다가 이 부분에서 잠시 조용해졌다. 여러 생각이 든다. ‘중년은 그런 거야’가 아니라 ‘중년에는 이렇게 스스로 보완하는 거야’가 들린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자기 생각만’ 하게 되니 남을 생각하도록 ‘스스로 잔소리를’ 하라는 것이다. --- p.55
교황청이 먹지 말라고 금지령을 내린 버터를, 면죄부를 사면 먹을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버터가 일찍부터 일상의 식재료였던 독일, 헝가리, 보헤미아 등지에서는 면죄부를 사서라도 버터 넣은 식사를 하려고 했고, 버터 홀릭 북부 사람들 덕에 사제들은 돈을 두둑이 챙겼던 것이다. 면죄부를 한탄하던 의식 있는 한 대학교수가 ‘하느님이 언제부터 사람들의 먹고 입는 것까지 관여했느냐’라고 타락한 교회를 꾸짖는 대자보를 써서 교회에 붙였던 사건은 유명하다. 그 교수가 루터다. --- p.72
바퀴가 달린 높은 가마를 집 안에 주차하느라 대문이 높았으니 솟을대문은 자연스럽게 ‘대감’집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이마저도 양 반 비율이 10퍼센트 미만이던 조선 초기와 달리 조선 후기에는 70퍼센트가 양반이라 솟을대문은 유행처럼 지어졌을 것이다. 더 이상 솟을대문이 아니고 대문이 되었을 것이다. 솟을대문에 수레가 드나드는 것을 상상하니 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 p.105
흥미로운 발견을 눈으로만 보기가 아쉽다. 책을 보다가 곁길로 새어 만난 이야기는 반가움의 표시로, 공감의 표시로, 꼭 기억해두겠다는 표시로 줄을 긋거나 추임새 같은 낙서를 하면 책 읽는 맛이 제법이다. 하지만 빌려서 보는 책은 그것이 어렵다. 아무래도 책과 주고받을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서 ‘내’ 책으로 읽어야겠다. 휴일 아침 서점 문이 열리기를 기다려 책을 사서 나온다. --- pp.122~123
사람들은 서로 닮아가고 있다. 명품 브랜드를 사고, 유명한 대학과 기업을 목표로 하고, 면접시험을 위해 동일한 토론의견을 준비한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곳에 가고, 같은 말을 한다. 남들이 보는 영화를 보고 남들이 가는 카페에 간다. 너무 비슷해져서, 닮아간다는 말보다 복제되고 있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자발적으로 같은 사람이 되고 그것을 안정이라고 느낀다. --- pp.155~156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볼까? 어떻게 볼까? 책장 가까이 가 본다. 내 책장에 있는 책도 있고, 낯선 책들도 있다. 이런 책도 있구나, 사람들은 이런 책을 보는구나 하며 책 구경을 한다. 그러던 중 제목 하나가 눈에 띈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 언젠가 들어본 것도 같고 낯설지 않은 제목이다.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주고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이야기해줄 것 같다. --- p.163
학은 다리가 긴 이유가 있고 오리는 다리가 짧은 이유가 있는데 어설프게 상대를 위한다고 똑같은 다리를 만들려 하면 안 된다는 것, 천리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지만 쥐를 잡지는 못한다는 것,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라는 것,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것……. --- p.201
마음속 감정이 40개의 얼굴 근육을 움직여 1만 개의 표정이 된다. 한 사람의 1만 개 표정이 친구를 만나면 수만 개의 표정이 되고, 그 표정이 세월을 만나서 셀 수 없는 표정이 쌓인다. 경이롭다. 사진 속 여인들의 웃는 얼굴을 다시 보니, 또 웃음이 난다. 여인들의 마음속 즐거움이 웃는 표정을 만드는 모든 얼굴 근육을 움직이게 하나 보다. 서로의 인생을 안아주는 평온함이 느껴진다. 웃음소리가 들릴 듯한 맑은 사진을 뒤로하고 몇 장 넘겨본다. --- p.241
사람들은 친해질수록 ‘친해 졌으니까’라는 빌미로 상대방에게 일상의 지친 감정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요구하는데 오래되고 편한 관계에서도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는 만큼의 거리를 챙겨야 한다는 것(공야장편), 자기가 바라는 것으로 미루어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유추하고 그것을 이루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것이 사람다움을 행하는 방법이라는 것(옹야편),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주저 없이 고치는 것은 아무나 못하니 실수하거든 곧장 고치도록 노력하여 고치는 습관을 들이라는 것(학이편), 윗사람이 잘못하는 것을 너무 자주 지적하면 된통 당하는 일이 생기고 친구에게도 너무 자주 충고하면 멀어진다는 것(이인편)……. --- pp.276~277
책은 왜 그렇게 사냐고 말한다. 왜 굳이 스스로 시간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느냐고, 시간을 더 작은 단위로 쪼개어 쓰는 것을 시간을 잘 다스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호되게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빼곡하게 살던 생활은 숨이 가빴다. --- p.303
책이 말해주는 것은 그저 생각의 씨앗일 뿐이다. 책이 말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생각을 널리 펼쳐볼 수 있다면 그것이 자기만의 책이 되는 것이다. 한 권을 완독하거나,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거나, 유명한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좋겠지만, 책을 읽기 전의 자신에게 없던 생각이 책을 읽는 동안 생겨나고 커지고 통찰이 되어 삶에 조그만 힘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생각독서이리라!
--- p.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