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군은 되도록 내가 비를 맞지 않게 백방으로 고민을 하다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누나, 안되겠네요. 잠시 저 벤치에 앉아 있다 가요. 나무 밑이니까 그래도 비를 덜 맞을 거예요.”
나는 C군의 친절하고 배려 넘치는 제의를 받아들여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한 오 분쯤 앉아 있으려니 빗줄기가 점차 가늘어졌다. 이제는 슬슬 일어나 걸어도 될 것 같았다. 나와 C군은 일어나자는 눈짓을 주고받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퍼억.
무언가, 나무 위에서 힘차게 낙하하여
내 옷으로 떨어졌다.
질척하고 기분 나쁜 색깔의 물질.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비둘기 한 마리가 나무 위에서 푸드덕 날아올랐다.
……
………
…………
묻고 싶다.
내가 살던 곳의 지구 반대편에서
그것도 사흘 연속 무지개 보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중학교 후배랑 데이트 비슷한 거 하다가
생전 단 한 번도 안 맞아 본 새똥을
하필이면 그때 맞을 확률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건지.
사람이 얼마나 재수가 없어야 그딴 걸 겪는지.
그 대척점에 있는 행운은 혹시 로또는 아닌…. 아냐 아냐, 다 집어 치워. 이 망할 새! 잡히기만 해 봐! 항문을 봉합해 줄 테다! 평생 똥은 다 싼 줄 알아라, 이 빌어먹을 조류야!!
그 후, 시간은 참으로 화기애애하고도 더럽게 흘러갔다. 죽고 싶은 마음과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 기관차 엔진처럼 격렬하게 움직였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고, 아아~ 웃고 싶어도 눈물이 났다.
그가 내 옷에 묻은 새 응가를 닦을 티슈를 꺼내 주고, 런던으로 돌아와 맥주를 한잔 하는 것으로 C군과 나는 짧은 인연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끝까지 매너 있고 친절했지만, 한국에 돌아온 후엔 연락을 하지 않는다. 물론 여행지에서 만나 하루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즐겁게 바이바이 하는 것은 흔하디흔한 일이지만, 그날의 만남이 데이트라고 굳게 믿고 싶은 나에게는 그가 연락하지 않는 이유가 오로지 그 망할 비둘기 때문인 것만 같다. 천하의 카사노바라도 ‘쟤는 아까 새똥 맞은 애’라고 생각하면 웃기게만 보이겠지. 나라도 그렇겠다. 쟤 옆에 있다가 나도 개똥이나 밟게 되는 거 아닌가 싶을 거다. C군의 심정, 100퍼센트 이해한다.
2~3년 전, 늘어나는 비둘기를 잡기 위해 런던 시에선 매를 풀었다고 들었다. 혹시 한 번 더 매를 풀 생각이 있다면 연락 주시기 바란다. 기꺼이 기부금을 내겠다.
(본문 87-88쪽 중에서)
머리 위에 은하수를 이고 얼마를 달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를 인도했던 고성 표지판이 보이지 않았다. 100미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하긴 했지만 시야는 이상할 정도로 트여 있었고, 양옆은 난감할 정도로 벌판이었다. 차는 단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별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별똥별이 종종 떨어지는 것이 고마울 뿐.
사라는 자신이 보고 싶었던 성의 위치를 알려 주는 표지판을 확인하기 위해 차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빠, 속도 좀 줄여 봐.”
“왜?”
“계속 같은 말이 반복되는 표지판이 있는데, 차가 빨라서 잘 안 보이거든.”
P씨는 차의 속도를 한층 줄였다. 사라는 조금 후에 나타난 표지판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그러고는 경악하듯 소리를 질렀다.
“오빠, 차 세워!”
“응?”
“저 표지판….”
“뭔데?”
“‘조수 간만의 차를 조심하시오.’라는데!!!!!!!”
끼익. 차가 섰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잠시 후 어둠이 눈에 익자,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벌판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뻘이었다.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다 소리였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저 제부도의 썰물 때에만 나타나는 그런 길이었나 보다. 조금만 더 갔으면 깔끔하게 바다에 다이빙할 판이었다.
조심조심 차를 후진해 그곳을 빠져나왔다. 여전히 북두칠성은 우리 차 옆에서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고, 머리 위에는 은하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갯벌을 빠져나오며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별똥 하나가 또 우리의 눈앞으로 떨어졌다.
거 참, 드라마틱하다, 이번 여행. 지난 여행들보다도 훨씬.
사건과 사고의 연속. 예측하지 못했던 다양한 가능성의 깜짝 출현.
고생도 했다. 이 불운이 얼른 끝나 주길 바라기도 했다.
합리성, 준비성, 치밀성 등이 가져다주는 정답을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정답보다 매력적인 오답도 존재한다. 우리가 무모하게 저지른 이 에든버러 여행처럼.
--- pp.161-162
한참을 꼬불꼬불 달려가던 버스는 이내 포지타노에 도착했다. 바다를 면한 언덕에 파스텔 톤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마치 달력 그림에나 나올 법한 마을이다. 만두와 나는 일부러 좀 먼 길을 택해 내려가며 천천히 마을과 바다를 음미했다. 관광과 어업 외의 산업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듯한 이 남지중해의 마을은 한없이 느긋하고, 한가롭고, 게으르고, 또한 뜨거웠다. 여름이라면 분명 그 열기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거다. 겨울에 이곳에 온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인적은 우리 외에 겨우 몇 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분 좋은 날씨를 덤으로 얻어 가면서 이 아름다운 마을을 과점하다시피 가질 수 있는 때는 딱 11월뿐일 것이다.
바닷가로 내려가자 뜨거운 바다가 우리를 맞았다. 푸른색은 일반적으로 차가운 색으로 알려져 있지만, 포지타노의 바다는 뜨거운 푸른색으로 넘실대고 있었다. 만두와 나는 백사장에 길게 누워 한참 동안 게으름을 피웠다. 아무 곳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곳에서 바다와 독대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이거였을까, 그리니치의 아저씨가 이탈리아로 가라 했던 이유가.
이 바다, 그리고 이 여유 때문이었을까.
옆에서 만두가 리코더를 꺼내서 불기 시작했다. 연습을 한 것도 짠 것도 아닌데, 어느새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중주를 하고 있었다. 리코더라는 악기의 음역상 레퍼토리가 한정되어 있다는 게 좀 슬펐다. 이탈리아의 바다를 앞에 두고 연주할 수 있는 곡이 <섬집 아기>와 <등대지기>밖에 없는 건 역시 좀 슬프잖아. 그나마 <산타루치아> 하나가 좀 폼이 났나 보다. 사람들이 제법 웃으면서 쳐다보는 걸 보니.
예전에 나는 이탈리아를 일러 오만상을 짓게 만드는 쌍놈의 나라라고 했다. 떠나고 나면 왠지 가장 그립고 생각나는 나라이지만, 일단 거기 있는 동안은 소매치기 천지에 더럽고 싸가지 없고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나라가 이탈리아라고 했다.
그 말을 전부 취소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화끈하지만, 언제 어디서 도둑놈으로 돌변할지 알 수 없고 싸가지도 없다. 시스템도 여전히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다 사실로 인정했더라도, 나는 그 바다 앞에서 이탈리아를 사랑하고 말았다.
도대체 그런 바다를 가진 나라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냔 말이다.
--- pp.262-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