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노먼 베순의 헌신과 희생에 대해 생각해 본다. 쉽게 떠올려지는 단어들이지만 결코 선뜻 실천할 수 없는 단어이기도 하다. 헌신과 희생은 자신보다는 남을 위하고 개인보다는 국가와 세계에 대한 열정을 갖지 못하면 감히 행동할 수 없는 일이다. 노먼 베순은 죽는 그날까지 고귀한 정신을 실천해 나갔다. …… 환자의 상태를 적는 차트에 병명을 폐결핵으로 써야 할지 가난이라고 써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던 휴머니스트 의사, 노먼 베순. 지구촌 평화를 위한 큰 울림으로 남은 그의 목소리 하나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의사들이여! 아픈 사람들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찾아가라!”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환자들이 조금씩 늘어나기는 했지만 수입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모두들 한결같이 가난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급속하게 발전해 가는 도시의 상황과는 달리 주민들은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돈이 없어 치료받을 시기를 놓치기 일쑤였다. 결국 병을 키우는 꼴이라 베순은 그런 환경에 화가 치밀었다. ‘이게 무슨 의사란 말인가? 환자들은 몸에 이상이 생겨도 돈이 없어 쩔쩔매고 있지 않은가. 설령 그들이 병원을 찾아온다고 해도 이미 시기를 놓쳐 버린 후이니 내가 그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대체 무엇인가?’
그의 탐구 정신은 새로운 연구들에 박차를 가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일부 의사들 사이에서 그를 비난하는 말들이 오가기도 했다. 베순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했다. 더군다나 자신의 왼쪽 폐가 계속 수축되는 동안 새롭게 고안해 낸 기흉 장치로 스스로에게 직접 실험을 했다. 끝없는 실험을 통해 기흉술을 보다 효과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여러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는 탐구자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을 만큼 매사에 열정이 넘쳐났다.
그때 다시 포격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왔다. 총탄까지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순은 소년병을 돌보느라 위험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부상병들이 누워 있는 숲 속으로도 총탄이 핑핑 날아들었다. 군의관이 엎드리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베순은 총탄이 날아오는 방향을 막아선 채 부상당한 소년병을 지켰다. 혈액병이 다 비워질 때까지 소년병은 깨어나지 못했다. 심각한 부상을 당한 후 몇 시간이 흘러 이미 몸의 기관들이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였다.
베순은 고무관을 풀어내더니 그 끝에다 주삿바늘을 꽂았다. 그리고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자, 보십시오. 이렇게 하면 됩니다. 먼저 이렇게 팔뚝을 소독합니다. 그리고 정맥에다 바늘을 꽂습니다. 바늘 속에는 구멍이 있어서 그곳을 통해 피가 흘러나오게 됩니다.” 고무관을 타고 나온 붉은 피가 병에 담겨지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 아, 하는 탄성을 질렀다. 병에 혈액이 다 채워지자 베순은 팔에서 재빨리 바늘을 뽑아냈다. 그런 다음 가제 조각을 집어 채혈 부위에 대고 그 위에 반창고를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