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말
인간의 삶은 행복으로의 정진精進이다. 그리고 그 정진의 대상은 반드시 자신에게 부여된다.
톨스토이는 그의 『인생론』 결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간의 삶은 행복으로의 정진精進이다. 그리고 그 정진의 대상은 반드시 자신에게 부여된다.”라고. 인생은 행복으로의 정진! 참 공감이 가는 언표입니다. 저는 교육도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교육뿐만 아니라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문명과 문화, 예컨대 정치, 경제, 사회, 예술, 산업 등 제반 활동이 행복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행복의 의미나 요건은 시대 상황이나 사람의 처지에 따라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행복’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긍정성과 따스한 이미지, 그것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사람을 살리는 방향을 지시합니다.
고등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교육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행복을 향한 열정이 교육에 적극 반영되기를 소망합니다. 초등학생이건, 고등학생이건, 대학생이건, 나아가 어떤 곳에서 공부하건, 아이 어른할 것 없이 그에 맞게 행복하기를 열망해야 합니다. 개인의 행복은 물론 사회의 행복, 나아가 온 인류의 행복을 고려하는 것도 당연지사입니다. 인생에서 삶의 행복을 화두 삼아 정진하는 것은 가장 거룩한 행위가 될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언급을 빌리면, 교육은 행복한 삶을 역동적으로 지속하는 데 진정으로 기여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이는 제가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유교儒敎의 수기修己와 아주 가깝게 느껴집니다.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타자에 이르러 더불어 행복하기. 톨스토이의 교육론을 처음 접한 것은 청계천의 어느 고서점으로 기억됩니다. 1980년대 후반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생의 진로 문제를 고민할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데, 재빠르게 책방 문턱을 넘으려는 순간, 주황색의 빛바랜 ‘세계사상교양전집’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가운데 톨스토이의 예술론, 참회록, 인생론, 신앙론, 교육론이 모두 들어 있는 책이 유난히 돋보였습니다. 당시에는 인생론과 교육론의 일부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고 취직하면서 지난 20여 년간, 그 책은 그냥 서재에 잠들어 있습니다.그러다가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가정과 학교에서, 때로는 가장으로서, 때로는 교육자로서,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등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톨스토이의 교육론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러시아어를 알지 못하니, 기존의 번역본과 일본어, 영어 번역본을 구해 읽었습니다. 그리고 석박사 과정의 제자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번역도 하고, 톨스토이 교육론의 가치를 논의하며 학술발표회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19세기 러시아 사회에서 톨스토이는 분명, 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가 민중 혹은 서민의 교육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습니다. 그의 문학적 성향도 그렇지만, 보통사람들, 일반국민들의 삶과 교육의 문제를 진지하게, 열정적으로 다루었고, 직접 농민학교를 세워 교육실천을 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다시, 톨스토이를 접하면서, 그의 자유정신과 자연주의적 성향, 강제와 억압을 거부하는 인권 존중, 해방을 향한 열망을 느끼면서, 그가 살아있는 과거임을 확인하였습니다. 민주 교육의 전통적 씨앗을 근원에 품고 있음을 인식하였습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19세기 러시아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주종입니다. 하지만, 서구 근대 공교육과 21세기 대한민국의 교육 문제에 비추어 볼 때, 의미 깊은 시사점이 있다고 판단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교육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소개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런 계기가 이 책을 재구성하게 만들었습니다. 공자가 육경六經을 재편집하여 정돈했듯이, 외람되게도 톨스토이의 교육에 관한 담론을 재편집하고 새롭게 해석해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교육자로서의 톨스토이를 부각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글의 구성은 크게 5부로 나누었습니다.
제1부는 톨스토이의 삶과 교육적 열정을 개략적으로 그려보았습니다. 톨스토이는 단순한 문학가가 아니었습니다. 교육학자인 제 눈에는 소설가 톨스토이보다는 교육자 톨스토이가 더욱 뚜렷이 보였습니다.톨스토이의 일생을 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온 후배들에게 부탁하여 톨스토이 관련 자료를 직접 구해 읽었습니다. 후배들은 자세하게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제2부에서 제5부까지는 톨스토이의 ‘교육론’입니다. 특히 그의 ‘서민교육론’을 핵심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서민교육론은 ‘국민교냀론’ 혹은 ‘민중교육론’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과거에는 민중이라는 말을 선호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는 ‘서민’이라는 말이 ‘귀족’과 같은 특수한 계급계층에 대한 상대어로서 적합한 느낌이 들어, ‘서민교육론’이란 용어를 썼습니다. 분명한 것은, 톨스토이가 자신이 귀족계층이었다가 서민을 위한 교육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그들과 아픔을 함께 하려고 한 인간이자 교육자였다는 점입니다. 저 또한 그런 삶에 공감하기에, ‘서민’이라는 말이 더욱 포근하게 느껴졌습니다. 톨스토이는 서민교육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더불어, 도야와 교육, 교수와 수업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룹니다. 도야는 자유와 연관되고 교육은 강제와 관련됩니다. 또한 진보의 문제에 대해서도 성실하게 고찰하고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역사의 진보가 단순하게 삶의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그리고 교육의 진보가 어떤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기를 권장합니다. 마지막으로 부록을 하나 첨가했습니다. 교육과 관련한 톨스토이의 사유 가운데 100가지를 선정하여 잠언식으로 붙였습니다.
꾸준히 스터디에 참여하여 좋은 의견도 제시하고, 원고 정리를 도와준 제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특히, 장지원 박사는 원고를 모두 읽고 세세한 제목에 대한 조언을 주었습니다. 늘 같은 방에서 도움을 주는 박사과정의 김영훈 목사, 석사과정의 한지윤, 텍스트를 읽으며 함께 고민했던 석사과정의 전선숙, 홍기표, 이동윤, 조경민 군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출판을 허락해준 강완구 사장과 편집진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문학적으로는 친근하지만, 교육적으로 익숙하지 않았던, 세계적 지성 톨스토이의 교육관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육의 희망과 행복을 가늠해보길 기대합니다.
2011. 2
안암동 연구실에서
신창호 배상 ---저자의 말 중에서
대중大衆에게 전합니다.
저의 삶은 이제 전혀 새로운 활동무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제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여러 해에 걸쳐 제 마음에서 단련된 진리라고 생각되는 사상에 대해서도, 무언지 모르지만 두려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런 사상의 대부분이 오류誤謬로 드러날 수도 있다고 판단합니다. 교육의 문제, 특히 일반 서민들의 교육, 민중교육에 관해 열심히 연구해 보았지만, 저의 연구는 한 측면에 불과한, 일종의 관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제시한 의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다른 의견으로 저를 환기해 주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제가 발행하는 기관지에 여러분의 의견을 게재할 수 있도록 기꺼이 지면을 할애할 생각입니다. 다만 제가 우려하는 것은 그 의견들이 감정에 치우치면 곤란하다는 점입니다. 서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교육, 여러 사람에게 귀중하고 중요한 민중교육이라는 이름 하에 이루어지는 교육적 논의가 조소嘲笑와 욕설로 핵심을 비껴가서는 안 됩니다. 모든 서민이나 국민들을 고려해야 하는 주요한 교육적 사안을 단순히 개인적 문제로 전락시키거나 잡지에서의 논쟁으로 번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조소나 욕설, 지나치게 개인적인 문제들에 대해 저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것을 넘어 한층 더 고차원적으로 높이 서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실 교육 문제 자체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해서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펼치려는 사업에 대해 냉정하고 끈기 있는 작업이 중요한데, 자칫 잘못하다가 개인적 논쟁에 열중하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움이 앞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의견에 대해 반대 의견, 혹은 상이한 의견을 제시한 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제발 여러분들이 자신의 견해를 표명할 때는 자기의견을 자세히 설명해 주기 바랍니다. 상호간의 의견 불일치가 단순한 오해에서 발생했을 때는 제가 그것을 입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 그리고 제 의견에 오류가 있다고 입증될 때는, 여러분들의 의견에 제가 선뜻 찬동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명해주기 바랍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