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 격차와 소득 격차는 아무리 열심히 일한들 따라잡을 수 없었다.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평생 일을 하는데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진의 아버지가 67세에 심장마비로 죽는 날까지 결혼식 행사장과 식당에서 음식 쟁반을 날라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진은 어릴 때부터 이 악순환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훗날 진은 “부유층에게는 보조를, 가난한 이들에게는 자유방임을 적용해온 미국 역사의 관례” 때문에, 즉 부자에게 특혜를 주고, 빈자의 가난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국가의 이중적인 태도 때문에 이러한 재난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하게 된다.
--- p.24
진은 “만약 2차 세계대전이 정말로 도덕적인 목적을 위한 전쟁, 우수 인종과 열등 인종 운운하는 나치의 이념에 대항하는 전쟁이었다면, 미국 정부도 국내의 인종차별 정책을 철폐하는 행동을 보여주었어야 할 것”이라며, 제2차 세계대전이 인종차별주의에 대항하는 전쟁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미국 본토는 물론 군대 내에서 인종분리는 일상적으로 이루어졌고, 미국은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영국도 독일식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추려내어 격리시켰는데, 이 중에는 유대인 피란민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 이탈리아가 참전하자 처칠은 영국에 거주하는 이탈리아인들을 체포하도록 명령했고, 수천 명의 이탈리아인이 체포·격리되었다. 이탈리아인 수용자들을 캐나다로 실어 나르던 영국 선박 한 척이 독일 잠수함에 격침되어 전원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 p.51~52
진은 올버니와 셀마에서 겪은 경험을 통해 “역사라고 불리는 것들의 상당 부분이 어떻게 보통 사람들의 현실-그들의 투쟁, 그들의 감춰진 힘-을 등한시하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또 민권운동이 “사람들이 통례적인 힘의 속성-돈, 정치권력, 물리력-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억압된 분노와 용기, 국민적 요구에 대한 열망으로부터 힘을 탄생시킬 수 있음을, 그리고 충분한 수의 사람들이 그러한 목적에 자신들의 몸과 마음을 바친다면 승리할 수 있음을 입증시켜주었다”고 말한다. 진의 말처럼 흑인을 비롯해 민권운동에 참여한 백인 시민들은 끊임없이 저항했고, 저항의 결과로 승리를 쟁취했다.
--- p.78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될 때부터 추악한 역사를 남겼다. 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진은 바로 그 점에 주목했다. 알려지지 않은 역사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도서관에 묻혀 있던 미국사에서 패배한 이들의 역사를, 권력과 자본에 의해 피해를 당한 자들의 역사를 끄집어내 1980년 『미국 민중사』를 출간한다. 이 책은 누군가의 서평처럼 영웅과 악당이 자리를 바꾼 책이었다. 첫 장부터 진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사실은 탐욕을 위해 원주민들을 고문하고 살해한 잔혹한 인물이었음을 밝힌다. 그것도 콜럼버스가 남긴 기록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연이어 서부 개척의 역사가 인디언 학살의 역사였다는 것을, 인종차별주의가 정책적 산물이었음을,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노동자들이 겪은 참상을 밝혀냈다.
--- p.93~94
시민에게는 “지켜야 할 그 어떤 직위도 없으며, 있다면 오로지 진실만을 주장하는 양심이 있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이것이야말로 시민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이다”라는 게 진이 바라보는 시민의 역할이었다. 진은 정치인과 정부, 전문가보다 시민을 믿었다. 정치인을 움직이고, 정부의 정책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게 시민이기 때문이다.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을 통해 진은 시민들의 작은 행동이 모여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목격했다. 정부를 이끌어가는 소수의 권력자들이 국민들의 희생과 목숨을 담보로 너무나 쉽게 전쟁을 결정하고, 그에 맞춰 언론기관들이 부화뇌동(附和雷同)해 전쟁 참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그런 행태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시민들밖에 없다고 믿었다.
--- p.137~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