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K양이 남자친구를 표현하는 주된 말도 ‘남자답다’는 것. 늘 주위에서 남자답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온 그다. 그런데 이 사회가 격투가 벌어지는 링도 아니고, 힘이 세고 싸움을 잘하는 게 남자다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특히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밑에 있다는 느낌을 받거나 승부에서 질 때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는 남자친구였다. 남자라면 다른 사람을 지배해야 하고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다. 무엇보다 그가 ‘나는 원래 이렇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모습은 안타깝기까지 했다.
우리는 곧잘 ‘내 성격을 나도 잘 모르겠다’거나 ‘내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주장을 펼치고 싶은데 소심한 성격 탓에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고, 주변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고 싶은데 조금만 성질을 건드리면 폭발하고 만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원래 이래’ ‘나도 나를 어쩔 수가 없어’라는 말은 스스로의 잘못과 단점을 방어하기 위한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타고난 성격 탓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K양의 남자친구 역시 일을 하면서는 어떤 경우라도 냉정을 유지한다고 했다. 즉 얼마든지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세상에 이루기 어렵고 힘든 일은 있지만,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란 없는 것 같다. 특히나 자신과 관련된 문제라면 의지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바꾸겠다는 의지와 바꾸려는 노력만 있다면, ‘나는 원래 이래’라는 변명 뒤에 숨는 일은 없을 것이다. ---「 툭하면 욱하는 남자친구, 어쩌면 좋죠?」중에서
저는 여자가 많기로 소문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과에 재학중인 남학생입니다. 여학생이 재학생의 70퍼센트인 천국 같은 이곳에서 OT, MT, 체육대회, 축제 때마다 여학생들과 같이 어울린다면 남자 입장에서는 정말 좋겠죠? 하지만 제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랍니다. 저는 이 많은 여학생 중에 손 한번 잡아본 여학생이 없어요. 대학생활뿐만 아니라 태어나서 23년 동안 단 한 번도 여자의 손을 잡아본 적이 없습니다.
이게 제 고민이에요. 외모나 성격이 비호감도 아니고 나름 재치와 유머감각도 있고 공부와 운동도 괜찮게 하고 노래도 잘해요. 당연히 그림도 잘 그리죠! 그런데 왜 저는 아직까지 여자 손을 못 잡아본 걸까요? 주변을 살펴보면 저는 천연기념물이에요. 여자들은 몰라도 남자들은 저만 빼놓고 다들 열심히 연애하면서 사귀고 헤어지고 하더군요.
제 친구는 여자친구랑 뽀뽀도 해봤대요. 정말 부럽습니다. 한 번이 아니라 엄청 많이 해봤다는군요. 진짜 부럽습니다. 다른 친구는 여자친구가 바뀔 때마다 하루 만에 손을 잡기도 하고 키스도 한다네요. 제게는 정말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저도 진심으로 뽀뽀도 하고 싶고 키스도 해보고 싶죠. 그런데 현실은 스물세 살이 되도록 아직까지 여자 손도 못 잡아본 한심한 인생입니다. 큰맘 먹고 여자한테 고백해보려고 해도 가슴이 쿵쾅대고 차일까봐 불안해서 말도 안 나오니, 제가 스물세 살이 되도록 이 꼴인 거죠. ---「여자 손 한번 잡아보는 게 소원이에요」중에서
할 수만 있다면 아들 머릿속에 들어가서 무슨 생각에서 그러는지 보고 싶다는 K씨. 왜 아무리 가까워져도 상대의 마음을 100퍼센트 알 수는 없는 걸까. 제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그의 속내를 꿰뚫어볼 수는 없기에, 우리는 늘 궁금해하고 속을 태우고 답답해한다. 이 사람, 나를 정말 좋아하긴 하는 건지, 내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건지, 상대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만큼 알고 싶은 것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은 마음을 더욱 조급하고 갑갑하게 만든다.상대가 입에 지퍼라도 채운 양,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말싸움 도중에 입을 다물어버린 애인, 뭐가 불만인지 한숨만 푹푹 쉬어대는 상사, 갑자기 토라져서는 입만 샐쭉대는 친구를 보노라면,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진심을 확인하고픈 마음이 불쑥불쑥 치솟곤 한다. 그런데 K씨는 무려 2년이나 아들의 침묵과 마주해야 했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방송의 문을 두드렸지만, 역시나 아들은 출연을 완강히 거부했다. 제작팀이 간곡히 부탁하고 집요하게 설득해봤지만 좀처럼 생각을 돌리지 않았다.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애태우길 며칠, 엄마와 아들을 화해시키고 싶은 다른 가족들의 간절한 청을 듣고서야 간신히 긍정의 답변을 내놓았다. 마침내 녹화날. 왜 엄마에게 말을 하지 않느냐는 MC들의 계속되는 질문에 주저하던 그가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가 힘겹게 털어놓은 이야기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누구에게도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왕따를 당했어요. 친구들의 괴롭힘에 학교 가는 일이 지옥 같았어요. 학년이 바뀌고서는 다행히 그 친구들과 다른 반이 돼서 묻어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엄마 모습에 그 친구들이 겹쳐지는 거예요. 그때부터 엄마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K씨의 눈가에 눈물이 번졌다.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아들이 겪어야 했던 험한 고통을 전혀 몰랐다는 미안함, 혼자서 모든 상처를 감내하면서 아들이 느꼈을 외로움과 두려움에 대한 안타까움이 눈물에 섞여 흐르고 있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쩌면 대화가 단절된 후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K씨보다 아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을 리 없다. 너무 힘들다고, 아프다고, 속상하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에 놀라고 상처받을 가족에 대한 염려와 애써 잊으려고 노력했던 상처를 다시금 끄집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그의 입을 다물게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침묵을 통해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말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있다고, 그 상처를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온다고, 그래서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침묵으로써 전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2년째 저와 한마디도 하지 않는 아들, 어떻게 해야 할까요」중에서
‘절대 안 돼’를 입에 달고 사는 대표님! 이러다보니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두꺼운 잠바를 입고 장갑을 낀 채, 어두컴컴한 사무실에서 일하다 일몰시간이 되면 겨우 전기 스위치를 올리는 것뿐이랍니다. 흔히들 사무실에서 많이 애용하는 티백도 한 번만 우려먹었다간 대표님에게 혼이 납니다. 적어도 세 번 이상 우려먹어야 해요. 퇴근시간쯤에 대표님이 티백을 몇 개나 먹었나 검사하시거든요. 그때 티백을 눌러보고 색깔이 진한 물이 나오면 저희는 죽는 겁니다. 나름 저희도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대표님이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종이컵 두세 개씩 막 끼워서 커피믹스 세 개를 타먹는 파티를 해요. 그때 아니면 못 한다 싶어 억지로 막 먹는 거죠. 저희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건 대표님의 구강청정제 사용법입니다. 청결을 강조하시며 사무실에 구강청정제를 사놓으시는데, 그걸 물이랑 1 대 1도 아니고 1 대 3으로 섞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구강청정제를 써도 전혀 상쾌하지 않습니다. 그럴 거면 왜 쓰는 걸까 싶기도 해요. 입을 헹구고도 찝찝해하는 직원들의 표정을 보면 사장님은 한마디 하시죠.
"여러분 이럴수록 조금씩 힘을 냅시다!”
대표님! 티백 다섯 번 우려먹고 힘날 거 같습니까? 일도 힘든데 환한 데서 차도 마음껏 마시면서 일하고 싶습니다. 대표님도 맛있는 차 드시면 기분좋으시잖아요. 우리 대표님 마음 좀 넉넉하게 쓰시라고 누가 얘기 좀 해주세요! ---「짠돌이 사장님, 나빠요!」중에서
저는 속초에 살고 있는 서른아홉 살 가장입니다. 저는 아주 심각한 고민이 있습니다. 저는 집에서 볼일을 안 봐요. 아니, 사실 못 봅니다.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그게 아닙니다. 제 아내가 집에선 볼일을 보지 말래요! 인간이 밥을 먹었으면 싸는 게 자연의 섭리 아닌가요? 그런데 제 아내는 밥은 주면서 싸지는 못하게 합니다. 제가 참다참다 배를 움켜잡고 화장실에 뛰어들어가면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져요.
"당신! 화장실에서 똥 싸고 있지! 당장 끊고 나와! 나가서 싸란 말이야!”
그럼 저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제 차를 몰아 속초의 자랑 ‘엑스포’로 갑니다. 제가 달릴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갑니다. 운이 좋아 신호등에 걸리지 않으면 3분 안에 도착할 수 있거든요. 그곳에 저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있어요. 저는 이렇게 10년을 ‘속초 엑스포 개방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서, 속초 엑스포 관계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제 아내를 고발하고 싶습니다. 저야 까다로운 여자를 선택한 죄로 이렇게 산다고 하지만, 열다섯 살 한창 사춘기인 제 딸은 무슨 죄란 말입니까? 불쌍한 그 아이도 학교, 학원, 기타 등등의 공중화장실에서 볼일을 해결하고 있어요. 그럼 신성한 우리 집 화장실은 아예 폐쇄된 걸까요? 아닙니다. 오로지 제 아내와 아홉 살 막내아들, 둘이 사용합니다. 아내는 자기의 똥은 자기 거니까 냄새가 나도 괜찮고 막내아이는 아직 아기라서 괜찮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아내가 우리 집 화장실을 독점했습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