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팀장이 밤을 새면 나도 새야 한다. 밤새 한 번 물어볼까말까 할 질문을 기다리면서……. 사실 물어보지 않는 밤이 99%다. 그런데 그놈은 꼭 내가 같이 밤을 새지 않는 날 궁금한 것이 생기고, 확인할 것이 생긴다. 그리고 사고를 친다. 1%. 그 1% 때문에 하염없이 기다린다. 나는 당연히 그 99%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노느니 장독을 깬다고 글을 쓰자." --- p.11
나는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모른다. 아니면 세상이 희한하니까, 아마도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본 사람이 한 사람 정도는 있지 않을까? 내 여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지만,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려 달라는 사람은 많이 봤다.
그 어떤 종류보다 압도적인 숫자가 '도깨비 방망이형 똥구멍'을 그려 달라는 주문이다.
신발을 만들어달라고 했으면 신어봐야 하는 것인데, 머리에 써 보고는 모자가 아니라면서 고쳐달란다. 그래서 묻는다.
"신발을 만들어 달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클라이언트는 당당하게 말한다.
"내가 말이야, 갑인데, 갑한테 지금 덤비는 거야, 뭐야?" --- p.218
"1자와 4자가 문제가 되니 글자를 고쳐 주시면 됩니다."
"그 정도 고쳐서 될 일이 아닙니다."
그리 말씀드리고 디자인을 고쳐 보려고 했지요. 이미 예산을 다 써서 제가 받을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것도 불만은 아니었습니다. 시간을 '1자와 4자' 고치는 정도로 받을 수밖엔 없다는 현실도 불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앞서 진행했던 사람들이 모았던 자료와 히스토리를 하나도 받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
그동안 우리나라는 물건을 내다 팔아서 먹고 살았습니다. 외국에 내다 파는 물건들은 그나마 디자인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 경쟁을 해야 하는데, 디자인은 필수 조건이니까요. 그러나 나라 안에서 쓰는 물건들은 아무리 봐도 그렇게 디자인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이 보입니다. 차차 나아지겠지요. 그런데 나아지는 방법 중 하나로 '외국 잡지 쭉 찢어 베끼기'는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건 어떤 경우에도 '벤치마킹'이 아닙니다. --- p.270
아주 소박하고 평범한 생각으로 출발한 이 캠페인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럼, 밀튼은 디자인으로 얼마나 벌었을까? 누군가 액수가 궁금해 물었다.
"프로 보노(pro bono)."
밀튼은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공짜란 말이다.
1929년 뉴욕의 변두리 브롱크스에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여느 천재들이 그러하듯, 학교 시험에 떨어지고, 장학금이 날아가고 미술로 장사를 하면 먹고 살 만할 수 있을지 아무런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 그가 미국의 디자인 시장에서 '20세기의 미켈란젤로'라는 칭호를 받으며 디자인한 'I ♥ NY'은 공짜였다. --- p.47
1933년 8월, 지금의 지하철 노선 디자인의 전형이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 땅위에 세상과는 관계없이 수직과 수평의 직선으로 그리고 일정한 사선으로 정리된 디자인. 사람들은 그 선들이 설명하는 정보에 대하여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정리되어 알아보기 쉽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거짓 정보로 지탄되며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던 벡의 디자인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를 담은 디자인으로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특히 명품 디자인으로 살아남아 판매되고 있다. (60쪽)
미니스커트의 다리가 아닌 낡아 뻥 뚫린 청바지 구멍 사이로 무릎이 보인다. 다리를 따라 눈길을 올려보니 애먼 데서 뒹굴다 왔는지 허벅지에도 구멍이 뚫려 있는 게 아닌가. 엉덩이는 비싼 베네통 가방으로 가려 어찌된 것인지는 상상으로 끝냈지만, 머리에 쓴 모자를 보니 전쟁을 한번 치룬 다 낡아 빠진 것이었다. 가방을 보면 가난한 친구는 아닌데, 모자나 바지를 보면 어디서 세게 한번 구르다 온 것 같다.
의상디자인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요즈음 유행이 '빈티지'란다. 빈티 나는 옷차림, 빈티지!? 촌티 나는 옷차림, 촌티지!?
……
'미드 센트리 모던'이란다. 20세기 최고의 문화를 향유하던 1950년대부터 오일 쇼크가 오기 전 1970년 초반까지의 물건들을 구하려고 난리란다. 그 여파를 몰아 전쟁이 없던 시절의 물건들도 덩달아 '미드 센트리 모던'에 합류한 것이다. 정말로 인류가 전쟁을 하지 않았으면 세상의 모든 물건들은 '미드 센트리 모던'이 될 것만 같다.
첫 번째 유행이 빈티지다. 그리고 빈티지를 만든 '미드 센트리 모던'은 단순히 낡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숨결이 묻어 있는 나름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란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쪽 독일에 갇힌 서베를린 사람들의 비상 물자를 팔던 '알디'라는 상품점(3개월 동안 서베를린 비상품 창고에 두었다가 새 물건들로 바꾸면서 싸게 물건들을 파는 곳)에서 산 20년 된 가죽 가방을 가지고 있다. 그 가방 이야기를 서너 번 써서 원고료로 이미 본전은 챙겼다. 그리고 그 가방, 어디 책에 가방 모델로 나가 사진도 찍히고 모델료도 챙겼다. 빈티지는 그런 것이지 하룻밤 만에 도깨비 방망이로 뚝딱해서 만들어 낸 구멍 난 청바지는 절대 아니다. --- pp.96-97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이상한 특징이 있다. 언젠가 신창원이 탈옥해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날아다닐 무렵, 사람들은 신창원이 입었던 알록달록한 '미소니' 쫄티에 열광했다. 전국의 '미소니'는 삽시간에 동이 났다. 신창원은 의적으로 추앙되었고 남대문에서 신창원 쫄티의 짝퉁은 아주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땐 미친 짓이겠거니 했다. 세상이 심심하니 범죄자의 옷 입는 것도 따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린다 김의 선글라스 신드롬은 미친 짓이라고 단정하고 넘기기엔 석연치 않은 내 나라의 국민성이 느껴진다. 죄를 짓고 법정에 출두하면서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쓴 안경알이 왕방울만한 에스카다 선글라스. 그 장면이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방영되고 에스카다 매장의 그 선글라스는 동이 났다. '명품'만 아니라 '짝퉁'까지도 없어서 팔지 못할 지경이었다. 얼굴이 반반하면, 죄목과 관계없이 대중의 인기를 끈다. 그러지 않고서야 선글라스가 갑자기 동이 날 리가 없다.
그리고 이번엔 프랭크 뮬러다.
--- p.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