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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의 돼지의 낙타
마리의 돼지의 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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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의 돼지의 낙타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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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4월 04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576쪽 | 658g | 128*188*35mm
ISBN13 9788954439619
ISBN10 8954439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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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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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하나의 장애물을 만났을 때에는 그럭저럭 무사히 넘어가는 편이지만 두 개의 장애물을 동시에 맞닥뜨렸을 때에는 갈팡질팡하다가 자포자기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날이 바로 그랬다. 음식에 대한 혹평과 말실수라는 두 개의 장애물 앞에서 그는 중심을 잃고 무너졌다. 하지만 특유의 낙관적인 기질이 그를 하루 만에 일으켜 세웠다. --- p.25

무동은 수백 동의 비닐하우스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그 비닐하우스에 꽃과 채소 대신 사람이 살고 있다. 사람이 광합성을 할 필요는 없으므로 투명한 비닐 위에 보온과 차광을 위하여 검은 천을 덮었다. 처음부터 사람이 살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세운 것은 아니다. 제방이 개축되고 배수시설이 정비되면서 무동이 상습 침수 지역에서 벗어났을 때, 마침 정부는 현대식 영농기술을 보급하고 근교농업을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부가가치가 높은 꽃과 채소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위성천 남쪽의 너른 논밭을 서서히 침식했다. 무동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 p.81

여자는 껍질을 깨끗이 깐 계란을 소금에 찍어 먹었다. 목이 막힐 때마다 물기가 많은 토마토를 한 입 깨물어 먹었다. 여자는 같이 먹자고 권하지도 않았고 혼자 다 먹어도 되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렇게 여자는 혼자서 계란 네 개와 토마토 두 개를 다 먹었다.
“토마토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피부가 정말 좋아 보여요.”
“그걸 이제야 알았어요?”
“제가 좀 느려요.”
“어떡하죠? 저, 밥도 아주 많이 먹거든요.”
“와, 정말 타고났나 봐요. 그렇게 많이 먹고도 이렇게 날씬하다니.”
“어떡하죠? 감당할 수 있겠어요?”
“예?”
남자는 여자의 말을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아아, 그러니까 그 말은…….” --- p.108~109

민구는 손에 든 물통의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영배에게 건넸다. 영배가 물통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민구에게 건넸다. 두 아이는 이 동작을 계속 반복했다.
“이렇게 물을 조금씩 꾸준히 마셔야 해. 숨도 계속 크게 내쉬고 다시 크게 들이마시고.”
평상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일어나 밝은 그늘에 앉은 두 아이에게 다가갔다. 민구가 손을 들어 아이들을 제지했다.
“뒤로 비켜. 빛을 완전히 가리면 안 돼.”
아이들이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유미가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니?”
“광합성.”
아이들은 처음 들어보는 말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광. 합. 성. 물과 공기와 햇빛을 이용해 밥을 만드는 거지. 이렇게 하다 보면 조금 있다가 우리몸속에 설탕물이 생길 거야.”
영배가 흙을 한 줌 집어 입가로 가져가며 물었다.
“나무처럼 흙도 먹어야 하지 않을까?”
“너는 시키는 대로만 해. 흙은 안 먹어도 돼. 먹어봐야 배만 아프지.”
인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 p.160~161

“엄마가 배 속의 아기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걸 태교라고 해. 돼지가 배 속의 새끼에게 한 말도 태교라고 할 수 있지. 돼지가 마침내 임신을 한 지 열두 달 만에 새끼를 낳았어. 원래는 네 달이면 낳거든. 그리고 보통은 한 번에 열 마리 정도는 낳는데 이번에는 딱 한 마리만 낳았어. 우리 식구는 그게 기나긴 가뭄 탓이라고 생각했지. 조금 있으니까 새끼가 몸이 채 마르기도 전에 비틀거리며 일어섰어. 그런데 그 모습이 아무래도 돼지 같지가 않은 거야. 다리도 길고 목도 길고 눈망울도 아주 큰 게 새끼 돼지가 아니라 무슨 송아지처럼 보였어. (중략) 우리 식구는 그제야 녀석의 정체를 알아챘지. 녀석은 돼지도 아니고 송아지도 아니었던 거야. 긴 다리와 길게 굽은 목, 타조처럼 큰 눈. 그리고 길고 두꺼운 속눈썹에 갈라진 윗입술, 거기다가 이제 등에서 자라는 혹까지.” --- p.170~171

경수는 고개를 돌려 민구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뽀얀 흙먼지가 일었고, 그 위로 아주 키가 큰 동물이 보였다. 기린처럼 길고 날씬한 목과 다리에 황소처럼 육중한 몸통! 낙타였다! 연갈색 낙타 한 마리가 터벅터벅 긴 다리를 흐느적거리며 사거리를 가로질러 느티나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낙타의 등에는 돼지가 업혀 있었고 하얀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그 옆에서 걷고 있었다. 낙타가 느티나무 아래 멈추어 섰다. 민구가 달려가 소녀와 돼지, 낙타를 차례로 안았다. --- p.203

경수 엄마는 의사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무동에 당분간 더 머무르는 대신에 감자탕집은 단호하게 그만두고 24시 김밥집에서 일했다. 월급이 조금 줄기는 했지만 남편도 언젠가 다시 일을 할 것이다. 게다가 큰 빚 부담이 사라졌다. 경수 엄마는 앞으로는 조심씩 나아지기만 하리라고 생각했다. 다만 아주 가끔씩 가위에 눌리다 깬 새벽이면 그녀는 스스로가 만든 서늘한 공포에 사로잡히곤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뜻밖의 이익을 보았다면 언젠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몰라. --- p.284

광석은 토마토 문의 여러 사업을 도왔다. 주로 엄마를 닮았지만 아버지에게서 예술적 감수성을 조금 물려받은 광석은 가끔 사업인지 취미인지 애매한 엉뚱한 일을 벌이곤 했다. 무동의 낡은 집에서 깨끗하고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나자 광석에게는 비로소 가난에 대한 물리적 거리와 함께 심리적 거리가 생겼다. 그러자 가난이 물건처럼 느껴졌다. 가난도 물건이라면…… 가난을 한번 팔아보면 어떨까. 요즘 세상에는 가난도 장사가 될 듯했다. 그렇게 해서 구상한 사업이 ‘고가여인숙’과 ‘비닐하우스에서 생긴 일’, ‘가난한 밥상’ 같은 것들이다. --- p.445

성재는 장씨의 이야기를 듣고 화재사건의 내막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인호 아버지와 서로 말이 다른 부분은 장씨 쪽 주장이 더 믿을 만했다. 설득력과 일관성이 있었다. 화재사건과 살인사건이 서로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성재의 예감은 거의 들어맞았다. 그러나 장씨의 이야기는 여러 정황을 고려한 추측일 뿐이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마리의 말을 직접 들어봐야 한다. --- p.457

밖으로 나온 경수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지붕 위의 나무를 다시 바라보았다. 나무의 열매가 엄마가 보낸 편지처럼 보였다.
--- p.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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