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도둑의 일기』의 화자는 본인 설명에 따르자면, 아일랜드 출신 촌뜨기(culchie)이고 알코올 중독자인 데다 출중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대체로 운이 좋지 못한 광고업계 아트 디렉터다. 데이트하는 여성들로부터 자주 “웃는 얼굴이 매력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자부하지만, 외모와 성기 크기에 상당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자기는 ‘여성 혐오자’이며, 이렇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긴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상처받은 사람이 상처를 주는 것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하면서 말이다.
익명의 화자는 변변한 직업도 없고, 늘 술독에 빠져 살던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해 준 여성이 있었노라고 언급한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열등감에 사로잡혀 진심을 열어 보인 상대들을 모조리 정신적으로 학대한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같은 남성에게 신세를 비관하여 화풀이를 하는 건 두려운 일이기 때문에, 매번 독한 알코올의 힘을 빌려 여성들에게 욕지거리를 하고 상처를 준다. 그런 식으로 본인의 자존심을 세우고, 거기서 쾌락을 느끼며, 심지어 자기가 피해자라며 자위를 일삼기까지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산소 도둑’에게 과분한 행운이 찾아온다. 미국의 거물 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익명의 화자는 이제야 제대로 잘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면서 덥석 미국으로 떠나고, 지루할 정도로 안정적인 하루하루가, 근사한 저택과 거액의 월급, 직업적 성공 따위가 계속 이어진다. 바로 그때, 화자는 큰 프로젝트를 따내 뉴욕으로 출장을 가고, 그 잠들지 않는 도시에서 사진작가 아슐링을 만나게 된다. “성모 마리아”를 방불하게 하는 아슐링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산소 도둑’에게 일생일대의 전환점이 되고, 상황은 예기치 못한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