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실제로 세계 4위의 군사강대국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미국의 부속국가인 한에서만 사실일 수 있다―50개 주 가운데 어느 곳도 연방정부로부터 이에 상응하는 혜택을 받지 않기 때문에 몇몇의 주장처럼 이스라엘을 미국의 51번째 주로 보는 것은 공정하지 않을 것이다. 적이 약한데도 불구하고, 레바논 침공 역시 금새 아주 명확해진 미국의 지원에 기대고 있었다. 메이어 파일이 쓴 것처럼, "모든 징후들은 레바논의 시리아인들에게 지상과 공중에서 모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 뒤에도 미국 정부가 IDF의 레바논 침공에 적당한 정치적 지원을 했음을 보여준다. 레이건 행정부는 백악관 고문 에드윈 미즈의 말처럼 "미국 사람들과 국회의원들 사이에" 이스라엘의 침공에 반대하는 "정서가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갈 "충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이스라엘을 "반소"하지는 않겠지만 "이것은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다원주의적 함의" 때문에 정부가 이스라엘의 공격을 어쩔 수 없이 지지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하자. 오히려, (비록 야당인 민주당보다는 덜 열정적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지지하는 침략을 찬성하는 합의를 만드는 것이 문제였다. 이스라엘 지지자들은 이 문제를 인식했으며, 신문광고, 편지, 사설(예컨대, 『뉴 리퍼블릭』에서도 거듭됐다) 등을 통해 침략에 대한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이 이 지역에서 미국의 힘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늘 호소했다. 우리는 이미 많은 사례들을 보았다. 그런 진술에 서명한 사람들 중 일부가 다른 경우에는 미국의 무력 시위를 걱정했던 사람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또다른 흥미로운 주장은 이스라엘은 러시아보다 미국이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비록 이런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았지만, 그 주장에 유리한 합리성만을 가진 막대한 "방어"의 구축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 pp.350-351
미국이 거대한 이스라엘을 창조하는 데 기여한 바의 본질적인 성격은 1982년 9월 베이루트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대량학살한 사건에서 적나라하고 잔인한 형태로 드러났다. (……)
이스라엘 안에서는 베이루트 대학살로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폭발했으며, 처음으로 야당인 노동당이 지원한 엄청난 대중시위를 포함해 전례없는 반정부 물결이 일었다. 그러나 베긴과 집권 리쿠드당에 대한 지지는 크게 줄지 않았다. 비용이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그 뒤 몇 달간 반대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대량학살은 레바논에서의 군사작전에 국민 대다수가 보낸 열정적이고 강력한 지지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미국의 반응은 흥미롭다. 처음엔 날키롭게 비난했지만, 아주 다양한 계층이 보인 전반적인 반응은 이 사건들과 잇따른 대응이 이스라엘 특유의 높은 도덕적 기준을 잘 드러냈다는 것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이스라엘의 분노가 "도덕적 민감성이 정치의 원리인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스라엘에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고 간주되곤 하는 신문들마저 비슷한 논조였다. 가령 『타임』은 IDF 내부의 항의를 언급하면서, "그런 분위기는 처음부터 거친 역사를 거치며 이스라엘을 이끌어온 정의로운 분노와 높은 도덕적 목적에 의해 활기를 띠게 되었다"고 썼다. 몇 개월 뒤 이스라엘의 대량학살 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논평은 자못 열광적이다. 이스라엘은 "구원"을 추구해 이를 성취했으며, 이스라엘의 성과는 "고귀하다"
--- pp.45-46
1981년과 1982년에 익숙한 '공포'를 야기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평화안과 아랍 국가들의 다른 화해 조처만이 아니었다. 훨씬 심각한 문제는, 특히 PLO가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도발에도 불구하고 레바논-이스라엘 국경에서 미국이 조종한 정전을 준수했다는 점에서 PLO를 단순한 테러집단으로 묘사하기가 점차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 위협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레바논을 침공하게 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였음을 믿을 만한 충분한 까닭이 있다.
이런 고려 사항들을 당분간 논외로 하고 보면, 역사적 사실들은 명백하다. 역사적 사실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거부주의 진영을 이끌었고, 1970년대가 흘러가면서 그 정도가 점점 더 심해졌다는 결론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이 갈등에 직접 관련된 아랍 국가들은 PLO의 주류가 그랬던 것처럼 국제적인 화해주의적 합의에 착수하거나 여기에 합류했다. 이런 고려 사항들과 상관은 없지만, 이 문제에 관한 미국에서의 비이성적 분위기를 보면, 이 역사적 기록은 아랍 국가들―가장 제멋대로 하는 정권―이 제대로 된 정권임을 보여주지 않았고, PLO의 장점을 판단하는 데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을 언급해야겠다. 이것은 단순한 사실의 문제이다.
원칙의 문제를 보면, 이미 밝힌 이유들 때문에 거부주의 정책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 더구나 이 문제에 어떤 입장을 취하든, 이 주제를 다룬 미국 문헌의 특징인 환상과 왜곡을 유지하는 작태는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 pp.153-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