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밀물처럼 왔다 썰물처럼 갔다. 내 세계의 절반도 함께 떨어져 나갔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유를 찾기 위해 기억을 해체해봤지만, 그 모든 것이 이유였고 어쩌면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될 수 없었다. --- p.14
우리에게 다음은 없을 거라는 걸 받아들일 예정이었기에 조금은 의연했고 의연하다가도 자주 무너졌다. 무너졌으나 한 발은 현실을 딛고 있었고, 그런 날들이 반복되어서 눈시울이 자주 뜨거워졌으나 울지는 못했다. --- p.36
그가 내 마음 안에 만들어준 따스한 자리는 평생토록 남아 온기를 주고, 그 온기는 내가 가는 시선마다 내려앉을 것이다. 내가 받은 따스함만큼 그도 나를 떠올리면 지나간 계절의 미지근한 바람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 사랑이 끝나고도 그 사랑으로 인해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기를. --- p.66
누군가를 오해하기로 결정한 후 가장 좋은 점은 내 감정이 오롯이 나의 것이 되었다는 점이 다. 지금의 나는 나로 인해 기쁘고, 나로 인해서만 절망할 수 있다. --- p.80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을 너무 이해하고 싶어 습관적으로 노력하지만, 그런 시도를 통해 더 좌절하기도 한다. 서로의 사이에 존재하는 아주 작은 틈을 메우려 하다가 되레 깊은 골짜기를 만들 수도 있다. 때로는 조금 멀찍이 떨어져 우리는 이만큼 다르구나 하며 서로를 그냥 바라보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너를 충분히 이해한다는 말보다는, 너를 감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 더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 p.111
작별 인사를 하지 않고도 헤어지는 법을, 이별의 이유를 묻지 않고도 이별을 받아들이는 법을 친구들과의 이별로 배워온 것 같다. 멀어지면 멀어지는 대로 두는 것 또한 내 삶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만드는 노력이다. --- p.136
내가 누군가를 오해하기로 결정하는 일은 나 또한 그들에게 오해받기로 결정하는 일이다. 오해받는다는 것은 더 이상 내 행동을 수정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시간이 흐른 뒤 후회한다 해도 더 이상 해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해받는 일에는 늘 어떤 각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