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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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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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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2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418g | 137*187*30mm
ISBN13 9788973818174
ISBN10 8973818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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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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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행을 대신해주는 사람이다. 의뢰인이 정해준 여행지와 날짜, 기간과 목적에 맞추어 경비를 산출하고 스케줄을 짜고 난이도를 감안하여 일당을 계산한다. 몇 차례의 조율이 끝나고 출발일이 정해지면, 공식적으로 또 대외적으로, 나의 의뢰인을 한동안 ‘여행 중’인 상태로 만드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자신을 여행 중인 상태로 만들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요? 그래서 그들이 얻는 게 뭐죠?” 남자는 디저트로 나온 초콜릿케이크를 포크로 신중하게 자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비웃지도 않았고, 누굴 놀리는 거냐며 내 이야기를 의심하지도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진지하고 순수한 호기심으로 차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나머지 설명을 하기로 했다.
--- p.10

*
정오에 악마가 찾아왔다. 스마트하고 지적인 분위기의 악마로, 다른 날이었다면 그에게 반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은 내 생애 마지막 날이었다. 반하고 말고 할 때가 아닌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우아한 몸짓으로 다가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때, 즐거웠나?” 기계음이 약간 섞인 허스키한 음색은 정확하게 내 취향이었다. 역시 다른 날이었다면 그의 목소리에 반했을 것이다.
--- p.71~72

*
우리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건 없잖아. 그게 사랑이든, 삶이든. 늦기 전에, 나이 들기 전에, 현명해지기 전에,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기 전에, 또 죽기 전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친밀함을 나는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어. 그것이 비록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했다는 착각에서 나온 것일지라도. 난, 사랑은, 하나의 생명처럼, 살아 있는 것이라고 믿어. 작은 바람에도 고개를 돌리고, 작은 비에도 시들어버리고, 아주 작은 부주의에도 죽어버리는. 네 말이 맞아. 사랑은 없어. 우리가 그것을 돌보지 않으면 죽어버리는 거야. 그런 사랑을 살아가게 하는 일이 그토록 무모한 일일까? 너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 p.102

*
그가 그녀의 슈트케이스를 열자, 다섯 켤레의 구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신고 간 구두가 불편해서 새로 하나를 사야 했어. 알잖아, 내가 갔던 그 도시엔 계단이 너무 많았거든. 그런데 새로 산 것도 편하질 않아서, 발이 퉁퉁 부어올랐어. 할 수 없이 세 번째 구두를 사고, 네 번째 구두를 사고, 그러다 보니 다섯 켤레가 된 거야. 그러고 나서 알 게 됐어. 제일 처음의 구두가 제일 편했다는 걸.”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몰랐던 거야? 새로 산 구두는 늘 불편해.”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정말이야? 왜 진작 얘기해주지 않았어?” 그녀는 자신의 발이 못생겨졌다며 속상해했다. “이런 발을 가지고 서른여덟 번째 여행을 떠나고 싶진 않아.” 그녀를 위해 그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그는 순간을 위해, 새롭게 열리는 물길 안에서 숨 쉬는 순간을 위해, 그리고 그녀의 못생겨진 발을 위해 그는 의자를 만들기로 했다.
--- p.114~115

*
자다가 깬 버터 호랑이는 갑자기 배가 고파졌어요. 그래서 베고 자던 딱딱한 빵을 조금 떼어 먹었답니다. 그런데 딱딱한 빵에 보드랍고 노란 액체가 묻어 있는 거예요. 그건 바로 버터 호랑이의 머리에서 흘러내린 버터였답니다. “이렇게 맛있는 빵은 태어나서 처음이야!” 자신의 몸이 조금씩 녹아 흐르는 것도 모른 채, 버터 호랑이는 맛있게 빵을 먹어치웠습니다. 그러고는 그늘을 찾아 들어가,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지요. 그날 저녁, 잠에서 깨어난 버터 호랑이는 자신의 몸이 조금 작아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아아, 재밌어, 정말 재미있는 일이야.”
--- p.166~167

*
정원 한쪽에 동그랗고 하얀 테이블이 있고, 그 위에 와인 한 병과 두 개의 글라스, 그리고 초콜릿 한 상자가 놓여 있다. 나는 어쩐지 조금 슬프고, 조금 난감해진다. 마치 근사한 파티에 초대를 받았는데, 너무 늦게 도착해버린 것 같은, 혹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오래전에는 나의 것이었으나 더 이상은 아닌 열정을 다시 만난 듯한. 하지만 와인은 생명을 머금은 듯 붉고, 장미는 죽음에 저항하며 가느다란 꽃잎을 떨고 있다. 너무 많은 비극을 쓴 그 사람이 이곳에, 국경의 도서관에 있다. 지상의 어떤 슬픔도 비껴가지 못하는 곳에서, 나는 슬픔의 스무 가지 그림자를 헤아리며, 남은 생의 한 모금을 조심스럽게 마신다.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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