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코, 그래도 어떻게 우리 입장만 생각하나? 사돈댁 입장이라는 것도 있잖아.”
예비 사위는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는 샐러리맨이다. 집은 기후현에서 규모 있는 마트 체인점을 경영하고 있다. 바깥사돈 될 분은 산간 지역에서 태어난 분으로, 그곳에서는 결혼식을 성대하게 올리며 많은 사람들과 떠들썩하게 지내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도쿄에서 결혼 피로연을 성대하게 올리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객들 역시 대부분 마트 거래처 사람들이라 하니, 비즈니스상의 접대를 겸한 결혼 피로연임이 분명했다.
“아무튼 나는 절대로 그런 자리에서 기죽고 싶지 않아.”
그럼 그렇지. 남편은 결국 자신의 본심을 털어놓았다. --- p.9
“반값 세일해서 8천 엔. 면 100프로라서 촉감도 좋고 마음에 들어. 사츠키가 지금 입은 폴로셔츠도 좋은데? 푸른색이 정말 잘 어울려. 유니클로에서 산 거야”
사츠키에게만은 아츠코도 이런 질문을 마음 편하게 던졌다.
“유니클로는 이제 안 가요. 너무 비싸서.”
“비싸다고? 유니클로가”
“네. 그래서 요즘은 시마무라 혹은 라이프를 주로 이용해요. 그것도 세일할 때만….”
사츠키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라이프라면 대형마트에 들어가 있는 거기”
“네, 1층에선 식료품을 팔고 2층에는 옷가게가 들어와 있거든요.”
“진즉에 알고는 있었지만…, 흠…, 그렇구나. 암튼 사츠키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정보를 많이 얻어서 좋아.”
비꼬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다음에 옷을 사러 갈 기회가 있으면 꼭 라이프 2층에도 가보리라 다짐해두었다. --- p.28
“한 달에 9만 엔, 우리랑 같은 금액이었잖아” “어떻게 그 돈만 들어가요? 병원이나 요양원 직원들은 우리가 가 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데. 아무리 못 가도 일주일 에 한 번은 들렀는데, 갈 때마다 빈손으로 갈 수는 없잖아요. 의사에 게도 신경 써야 하고, 간호사들에게 간식이라도 사 들여줘야 하니까 이리저리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고요. 오빠는 남자니까 이런 세 세한 것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할 테지만….”
이렇게 말하며 힐끗 아츠코를 곁눈질한다.
- 하지만 그쪽은 같은 여자니까 잘 알겠죠? 그렇게 말하는 눈초리였다. --- p.47
“만일 4만 엔짜리로 할 경우, 청구서의 명세서에 어떻게 기재되나요?”
“네? 청구서…에요”
혼마가 살짝 일그러진 표정으로 아츠코를 보며 묻는다. “‘마음’이라는 상품명으로 기재되는데요.”
송·죽·매 혹은 상·중·하 등의 표기와는 달리 ‘마음’이라 표기된다면 들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명세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이라 봤자 아츠코 자신과 남편뿐 아닌가.
흠…, 그렇다면 4만 엔짜리로 해도 될 듯하다.
이렇게 마음먹는 순간 시지코의 예리한 눈빛이 머리에 스친다.
똑순이 그녀라면 눈치채지 않을까.
아니다. 제아무리 눈치 빠른 시지코라도 한 번 보고 그 값을 알아차릴 리 없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청구서를 보여달라고 하면 어쩐다?
만일 그러면 바쁜 와중에 청구서를 잃어버렸다고 둘러대면 되겠지. 그도 그럴 것이 시지코 역시 그 가계부 공책을 아츠코에게 안 빌려주었으니 피장파장이다. --- p.91
거실 청소를 하고 있을 때,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다.
남편이다.
근무 중에 전화를 하다니 별일이네.
혹시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나
- 여보세요. 아츠코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 우리 회사, 이젠 글렀어.
“글렀다니? 무슨 말이에요”
남편의 회사가 2008년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지금까지 고전하고 있다는 말은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다.
- 오늘 아침, 본사 인사과에서 나왔는데, 설명에 따르면 본사의 기능만을 남겨두고 전원 해고라는군.
“설마 당신도 포함되어 있는 건 아니겠죠”
- 포함되어 있어. --- p.119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소란 피워 죄송해요. 저는 이 집에 살고 있는 여자의 엄마인데요. 저… 그러니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딸의 몸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아서….”
“아, 어머님이세요.”
여자는 이렇게 말하며 쿡 웃는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하지만 방금 전, 안에서 큰 소리가….”
“늘 그래요.”
여자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고는 조용히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무슨 말?”
아츠코는 속삭이듯 아들에게 물었다. “늘 그렇다니? 늘 이렇게 폭력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고도 저 여자는 지금 웃었단 말야?” --- p.134
며칠 후 남편과 둘이서 요양원으로 향했다.
시어머님은 단정하게 화장을 하고 원피스 위에 재킷을 입고 로비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옷차림새 때문일까? 평소처럼 멍한 인상은 간 곳이 없다.
“시지코에게 대강은 들어서 알고 있다.”
이렇게 생생한 목소리를 들은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평소 찾아가면 담화실에서 뵙게 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야길 듣는 게 싫으신지 곧장 당신 방으로 불러들이셨다.
“둘 다 실업자가 되었다고”
미니키친(mini kitchen)에서 차를 끓이며 어머니가 물었다.
우리를 돌아보는 시어머님의 표정이 즐거워하시는 듯한데, 혹시 잘못 본 건가?
“어머니, 우리 집은 좁고 여기처럼 근사한 곳이 아니라서 죄송하지만….”
--- p.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