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단순한 박학다식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오직 ‘양심의 덕후(한 분야에 광적으로 열중하는 사람)’가 되어 자신의 양심을 밝히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공자가 추구했던 양심은, 선과 악을 명확히 판단하고 늘 선을 추구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이런 양심을 갖고 있는데, 공자는 이러한 양심을 더욱 잘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 평생에 걸쳐 학문을 갈고닦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양심이었을까요? 그것은 ‘양심의 계발’이야말로 ‘인간의 길’의 핵심이었기 때문입니다.
--- p.9
먼저 자신의 아집을 내려놓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의 타고난 공감능력(측은지심)은 남의 처지도 나와 같음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 이것은 나와 남이 본래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집을 내려놓고 보면 이러한 사정이 더 잘 보입니다. … 이것이 양심이 잘 계발된 사람의 태도입니다. 양심을 이해하는 지능, 즉 ‘양심지능’ 또는 ‘영성지능’이 높은 사람은 남의 마음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남을 돕고 싶어 합니다. 늘 자신의 마음을 바탕으로 남의 마음을 이해하고 남을 배려하는 것, 이것이 ‘사랑을 배양하는 방법’입니다.
--- p.12~13
공자는 본인이 평생 공부한 것은 ‘서恕’(인자할 서)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인자할 서’ 자는 나와 남을 똑같이 보는(如) 마음(心), 즉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라는 ‘양심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황금률’과도 그대로 통합니다. 공자는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양심의 본질과 실천’만 평생 연구한 것이죠. 다시 말하면 ‘양심의 학문’을 즐긴 것입니다.
--- p.38~39
‘양심 덕후’가 되어 보세요. 내가 가족이나 남을 위해 뭔가 작은 것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를 한번 돌아보면서, 그날 하루를 자신의 양심에 충실하게 사는 훈련을 해 보세요. 하루에 하나라도 좋으니, 자신의 ‘생각·말·행동’을 재료 삼아 양심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 보세요. ‘양심 작품’을 창조하는 삶은 곧장 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양심이 있으니까요. 이러한 창작이 이어지다 보면 뭔가 좋은 생각이 더욱 떠오르고, 인생의 활로가 보이고, 세상을 바꿀 힘도 생길 것입니다.
--- p.47
양심을 실천할 때에는 진심으로 몰입해서 했는지가 아주 중요합니다. 양심 중 ① ‘사랑’(仁)의 덕목으로 남의 입장을 배려하고, ② ‘정의’(義)의 덕목으로 남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고, ③ ‘예절’(禮)의 덕목으로 남에게 겸손하게 행동하고, ④ ‘지혜’(智)의 덕목으로 자명하게 판단함에 있어서, 이 모든 것을 충성스럽게 했는지를 반성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양심성찰’입니다.
--- p.55~56
공자의 사랑은 예수의 사랑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으로 그들에게 행하라!”라는 것이 공자의 사랑입니다. 우리 겨레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도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이렇게 일반 백성들을 널리 사랑하는 것이 공자의 제자가 되는 조건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해야만 나의 제자라고 가르친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양심의 달인들의 말씀은 이처럼 서로 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양심’은 본래 하나니까요. 이것은 참으로 ‘제자의 조건’이기 이전에 ‘인간의 조건’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p.71~72
그러니 자신이 공감을 정말 잘한다고 쉽게 생각하지 말고 깊이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공감은 자신이 정말 힘들 때에도 자신에게 손해가 오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도, 그 공감을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하는 ‘양심적인 공감’인가요? 아니면 나한테 혹시 해가 되거나 이익이 없다고 판단되면 바로 냉정해질 수 있는 일시적인 감정인가요? 여기까지 확인해 보면 자신의 공감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 마음을 못 잊어서 계속해서 추모하고 기려 줄 수 있는, 그런 공감능력을 가진 사람이 리더가 된다면 백성도 그런 리더의 마음을 금방 배워서 감화될 것입니다. 꼭 임금이 아니더라도 이것이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p.91
우리가 ‘민심은 천심’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백성의 마음 중에서 ‘양심’이 바로 천심입니다. 욕심이 없는 하늘의 마음과 순수하게 바로 통하는 우리의 마음이 양심이니까요. 인간이 갖고 있는 양심은 그대로 하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사적인 욕심 때문이 아니라 양심 때문에 분노하고, 양심 때문에 사랑하고, 양심 때문에 절제하고, 양심 때문에 배려하고, 양심 때문에 옳은 것을 선택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양심이 천심이니, 정치인들이 ‘양심 전문가’인 공자에게 정치를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래서 백성들의 양심 즉 민심을 어떻게 경영하고 관리해야, 천심이 분노하지 않고 만족하는 정치를 할 수 있는지를 공자에게 물은 것이죠. 성인은 인의예지의 양심을 온전히 발현하는 존재이니까요.
--- p.98
우리가 깨어서 ① ‘양심의 현존’에 안주하고, ② ‘양심의 명령’을 직관하고, ③ 양심적으로 분석하고, ④ 양심적으로 행동을 펼치는 것, 이 모든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잠시라도 끊어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공자는 “군자는 밥을 먹는 시간에도 ‘사랑’(仁)을 어겨서는 안 되니, 급박한 순간에 도 반드시 사랑을 어기지 않으며, 엎어지고 넘어질지라도 반드시 사랑을 어기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양심과 진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모두 ‘사랑’이니, ‘인의예지仁義禮智’가 그대로 ‘사랑’(仁)입니다. 인의예지를 모두 포괄하면 사랑이 되는 것이죠. 정의롭고, 무례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랑 말입니다. 군자는 ‘양심 덕후’이니, 이러한 ‘사랑의 실천’에 있어서 절대로 나태한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군자는 ‘사랑’을 실천함에 있어 늘 민첩합니다. 진심으로 그것을 즐기니까요. 남과 시비가 붙거나 어려운 일을 처리하는 순간에도, 항상 자신과 남을 모두 배려하는 ‘win-win’의 결정을 내리는 데 민첩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와 남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방법을 찾고 실천하는 것에 민첩해야, 진정한 양심의 덕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p.120~121
먼저 나 자신부터 ‘양심’을 실천하십시오. 그리고 남이 알아주길 기대하기 전에, 나부터 남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십시오. 사람들이 무슨 마음으로 나에게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를 보다 자명하게 알아보려고 노력하십시오. 상대방이 지금 ‘양심’을 쓰고 있는지, ‘욕심’을 쓰고 있는지도 잘 읽어 내 보십시오. 상대방의 마음을 잘 읽어 낼수록 자신의 양심도 계발되고, 상대방의 마음을 잘 읽어 내야만 상대방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우리의 양심이 계발되면, 그건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사랑’과 ‘정의’로 가득 차면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도움을 많이 받겠습니까? 그러니 되도록 남과 서로 척을 지지 않으면서 남과 내가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는 게, 결국 여러분의 양심을 계발하는 길이고 모두에게 좋은 일입니다.
--- p.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