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이란 외부적 실체에 의해 유발되지 않은 모든 감각 경험을 가리킨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감 가운데 어느 것이든 환각이 일어날 수 있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며,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데도 냄새를 맡거나, 피부에 아무 것도 닿지 않았는데 벌레들이 팔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환각을 경험하는 사람은 그 감각을 지금 독자들이 이 책에 쓰인 글씨를 읽는 것만큼이나 생생한 현실로 느낀다는 점이다.
--- p.41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 대다수는 항상 다음 번에 다시 악화되는 시기가 언제일까 하는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비논리적이며 이치에 닫지 않는 많은 것들 또한 공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의 내면세계가 얼마나 비논리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지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공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조현병 증상을 앓는 사람은 대부분 삶이 꿈같다고 한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다. 우리가 경험했던 악몽을 떠올린다면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꿈에는 아무런 논리가 없다. 호수에서 평화롭게 수영을 즐기다 어느 새 거리에서 코끼리에게 쫓기기도 한다. 시간, 공간, 심지어 자신의 정체성조차 아무런 예고 없이 바뀐다. 이런 내적혼란 때문에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주위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 “요즘 잘 지내?” 같은 간단한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쩌다 이런 상태를 겪는 사람도 있고, 훨씬 자주 겪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보통 사람과 사뭇 다른 삶을 체험한다.
--- p.48
꼭 기억할 것은 당위성보다 결과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약을 거부하는 것만큼이나 비합리적인 이유로 약이나 치료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그렇더라도 논쟁을 벌이지 않는 편이 낫다. 세계적인 운동선수가 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거나 단순히 수면제로 생각하고 복용하더라도 더 따지지 말라는 뜻이다. 어쨌든 스스로 약을 복용한다면 고마운 일이다. 불쌍한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거나 스스로 의료인들을 연구한다고 생각하면서 병원에 가고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다. 논리를 따지며 논쟁하지 말라. 치료를 잘 받으러 다니는 것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 p.74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을 때 조현병의 재발률은 약 70퍼센트로 알려져 있다.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10명 가운데 7명이 1년 이내에 병원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항정신병약만 복용해도 재발률은 30퍼센트로 떨어진다. 다른 모든 치료는 단독 시행하면 재발률을 유의하게 감소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약을 복용하면서 상담치료를 하면 재발률을 약 20퍼센트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약을 복용하면서 사회적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한다면 재발률은 약 10퍼센트 선까지 떨어져 최선의 효과를 얻는다. 약을 복용하면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을 관리하는 방법을 교육받은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경우에도 비슷한 수준으로 재발률을 낮출 수 있다.
--- p.83
환자가 정신질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는 자신을 믿어주고 보람된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버리지 않는 주위 사람들의 존재가 가장 중요하다. 이런 환경이라면 많은 사람이 직업을 갖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맺으며, 보다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 중증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의 미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회적 낙인을 없애고, 스스로 질병을 떳떳이 인정하며 서비스와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뛰어난 결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우호적인 환경 속에서 하루가 달리 개선되는 약과 서비스가 제공된다면 이들의 삶이 얼마나 향상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 p.90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통받는 이가 “정신질환”이 아니라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란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일이다. 질병을 앓는 이도 사람이다. 감정이 있고, 상처받으며, 쉽게 자신을 잃고 방황한다.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는 스스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해줄 수 있는지 모른 채, 쉽게 “환자”란 꼬리표를 붙인다. 친구와 가족은 사람과 질병을 따로 생각함으로써 이런 경향을 극복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증상은 사람이 아니라 병 때문에 생긴다. 양극성장애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걸핏하면 화를 내고, 술수를 부리면서 가족의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가증스러운 인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머니는 정신질환의 희생자이며, 명료하게 생각하고 정상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뿐이다.
--- p.101
정의상 조현병, 주요 우울증, 정신분열성 정동장애, 양극성장애 등은 주기성 질병이다. 종종 뚜렷한 이유 없이 호전과 악화를 반복한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혹시나 악화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일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시간을 두고 한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면 대개 특징적인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몇 차례 재발을 경험하고 이 양상을 알았다면 가능한 한 조기에 개입해야 한다. 재발을 막지는 못해도 기간과 정도를 최소화할 수 있다.
--- p.151
가족 스스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지 못하면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의 삶도 좋아질 수 없다. 자신을 돌본다는 것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을 잊고 흥미있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반드시 환자와 떨어져 휴가를 즐기고, 별도의 관심사와 활동과 친구를 두어야 한다. 일정한 거리를 허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결코 사랑과 지지를 제공할 수 없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최대한 삶을 누리려면 우선 보호자가 최대한 삶을 누려야 한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종종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것 같지만 정서적인 분위기의 변화는 쉽게 감지한다. 보호자의 기분과 전반적인 상태에 매우 민감하다. 그리고 많은 경우 자신의 병 때문에 가족들의 삶이 크게 변한 데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다. 이런 감정을 정확히 말로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가족들이 의연하게 삶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큰 안도감을 얻는다.
--- p.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