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원래 바보처럼 ‘아하 아하’ 웃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이번 일도 그랬다. 어떻게 6년 전에 쓴 사적인 일기를 책으로 펴낸단 말인가. 말하자면 ‘백수의 월요병 2’인 셈이다. 출판사 전화에 “진짜로요?” “아하 아하”’ 그렇게 웃었다. 사실 대박이 나려면 매스컴의 각광을 제법 받았던 그때 났어야 했다. 하지만 사람 일을 누가 알겠는가. 신산한 삶에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이 넘치고 넘쳐, 너도나도 책방에서 집어갈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는 1957년 전북 임실 산이다. 전주 전라고와 성균관대 영문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을 졸업했다. 1982년 동아일보 내근기자로 입사하여 교열부, 편집부, 동아닷컴 취재본부에서 옹근 20년 동안 일했다. 책 읽고 술 마시기를 좋아했으나 글은 써본 적이 없었다. 백수일기 출간을 계기로 생활칼럼니스트를 자처하고 있다. 2002년부터 모교에 정박, 홍보전문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사람 사귀기’를 특기로 내세운다. 호 우천.
‘백수의 월요병’(2005년 서울셀렉션)을 비롯해 ‘나는 휴머니스트다’(2008년 성균관대출판부) ‘은행잎편지 108통’(2010년 이부키)을 출간했다. 문집으로 ‘쉰둥이들의 쉰 이야기’(예맥) ‘대숲 바람소리’(예맥)가 있다.
묵은 일기를 몇 년 만에 다시 읽어보는 것은 쑥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도 피천득님이나 법정스님의 주옥같은 에세이나 안네의 일기, 아미엘의 명상일기도 아닌 한낱 백수의 일기임에야. 게다가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는 것은 더더욱 계면쩍은 일이다. 하지만 글로써 내 자신과 동시대의 벗들을 위로할 수 있다면 약간의 창피를 무릅쓴들 어떠랴 싶어 용기를 낸다.
누구라도 아무 때나 어디서든 쓸 수 있다. 잘 쓰고 못쓰고는 그 다음 문제가 아닐까. 쓰는 것, 기록을 남기는 것은 어쩌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본능일 터. 글 편지가 사라진 시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한마디씩 하는 것도 그런 습성의 유산이 아닐까. …글쓰기가 어찌 문학인들만의 전유물일 수가 있으랴. 결국은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일기로 쓰든, 그럴듯하게 소설로 지어내든, 압축하여 시로 쓰든 '사는 흔적'을 남기는 게 아니고 무엇일까. 한때 글로 목걸이를 만들고 말로 팔찌를 만들어 갖고 다니고 싶어 했다. 이른바 '스토리텔링'이 그것일 것이다. 그런 스토리 텔러를 꿈꾸며 백수시절에 쓴 '백수일기'를 꺼낸다.---‘저자의 글 --- 글 목걸이 또는 말 팔찌’ 중에서, ---pp.4~6
주말을 푹 쉬었는데도 불구하고 월요일에는 왠지 모르게 몸과 마음이 찌뿌드드하고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이 같은 경험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해 보았을 것이다. 이른바 '월요병'이라고 부르는 것. 그런데 백수건달에게도 월요병이라는 게 있다. 성격은 약간 다르지만, 월요일이 오는 게 너무 겁나고 싫은 것이다. 월요일이 아예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무슨 말인가. 백수들도 토요일, 일요일을 눈이 빠지게 기다린다. 왜냐? 그때는 세상 사람들이 다 쉬는 날이니까 백수인지 아닌지 모르지 않는가 말이다. 군중, 대중 속에 같이 있으니까 동류의식을 느낀다. 그런데 가장 죽을 맛은 월요일 아침이다. 어디 갈 데가 없지 않은가. 한번 생각해 보라. 남들은 다 직장 간다고 출근하는데, 아이들 학교 보내고 아내 눈치 좀 보다 일례 행사로 인터넷 구직 사이트 쭉 훑어보고 나봤자 9시 반 정도 된다.---‘백수의 월요병’ 중에서, ---pp.50~54
'백수 일기를 쓰는 까닭은?'에서 말했듯이 이것은 순전히 나의 넋두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의 일기에 무슨 메시지가 있나? 내가 무어라고 증언부언, 삶에 대해 떠든단 말인가. 그럴 실력이나 자격이 있는가. 나는 단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불특정 다수에게 말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1년여의 백수생활이 외로웠고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지난 1년은 나름대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49년 동안 살면서 처음으로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반성과 성찰, 침잠의 세월 한 편으로 내 생에 있어 생각의 발효와 사고의 숙성기간이기도 했다.---‘무한한 마침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