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이었다. 쇠가죽으로 만들었다. 징을 박아 가죽이 덧나지 않게 했다. 최고급 가죽으로 만든, 소위 명품이다.
명품. 장윤정은 속물 같은 생각을 접으며 가방을 노려보았다. 언뜻 보기에는 서류가방이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건지도 모른다. 다만 무언가 계속 걸린다. 어째서 저 가방이 국립중앙박물관 지하 수장고에 묻혔던 거지? --- p.16
“한국전쟁 당시, 이 대대 대대장이 바로 할아버지셨어.”
“우리 대대 말씀입니까?”
박연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성욱의 눈가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럼 아버지를 찾아왔다는 말씀은?”
“그래, 내 아버지는 할아버지 유해를 찾고 싶으셨던 거야. 내가 겨우 걸음마를 할 때였어. 사단 BOQ에서, 아버지는 차근차근 할아버지의 흔적을 더듬었던 모양이야. 어느 날 저녁에 술에 잔뜩 취한 아버지가 나를 안고 놀면서 이러더라고.
‘할아버지를 찾은 것 같아.’
그 말을 건넨 아버지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어. 급기야 엉엉 울며 통곡까지 하셨지. 아마 어린 내게 우는 아버지의 모습이 큰 충격이었던가 봐.”
25년 전, 정확하게는 갓 네 살이 되었을 때다. 군인아파트 놀이터 그네에서였다. --- p.35~36
인사동 한복판, 종로경찰서와 수운회관 뒤편, 정확하게는 관훈동인 이곳은 개축도, 증축도 불가능하다. 벽을 맞댄 오래된 건물과 함께 사람 말고는 진입이 불가능한 골목 탓이다. 표면적인 이유야 그렇다 해도 인사동은 무엇보다 서로가 숨기려는 게 많은 곳이다. 모파상만 해도 그렇다.
누가 자리를 잡았는지 모르는 이곳 모파상은, 양아버지인 장지유가 그림자 노인에게 물려받은 가게라고 한다. 그림자 노인의 소재가 불명해진 뒤 장지유는 가게를 대대적으로 수리하려 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모파상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달려고. 그러나 지하를 보고 마음을 바꾸었다. 건물의 지하는 지하가 아니라 도로였기 때문이다. --- p.39~40
일한이 노트북을 꺼냈다. 스마트폰을 노트북과 연결하자 적외선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한글이야. 종이가 긁히지 않게 세필로 썼어. 종이가 울지 않은 걸 보면 대단히 세심하게 처리했을 거야.”
일한은 윤정이 보라는 듯 모니터를 돌렸다.
“아마도 얇은 종이를 위에 덧대고 아래에는 투명한 물을 흡수할 천을 놓았을 거고.”
윤정은 일한의 설명을 상상했다. 그랬다면 아마 펜처럼 쓴 글씨가 남게 되었으리라.
‘대한제국 융희황제의 명을 받들어 무천이 쓰노라.
서력 1910년 4월 2일에야 온전히 명을 받들게 되었도다.
조선의 마지막 남은 모든 유산이 황제의 명에 의해 봉인되도다.
9년 11년이 지나면 100년을 봉인하리라.
다만 하나, 조선에 日이 다시 덧씌워지니 걷힐 날을 알 수 없노라.’
“뭐야, 이런 글씨를 보고.”
어디서 저 문구로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보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을까. 윤정이 느끼기에는 다섯 줄의 문장이 ‘이 가방은 가짜입니다.’하고 말하는 듯했다. --- p.58
저주!
음양사들이 가진 비책 중에는 저주가 있었다.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고도 해서 귀혼술鬼魂術이라고도 불린다. 서양의 과학이 메이지시대에 급격하게 유입되며 저주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밝히려는 노력이 글로 전해졌다. 음양사의 저주와 가장 가까운 단어는 최면이었다.
귀혼술의 단계는 세 가지다. 가장 빠른 시간에 상대의 혼을 빼놓는 것, 마치 귀신이 명령을 내리듯 혼이 빠진 사람의 뇌에 명령을 새겨 넣는 것, 마지막은 수련 단계에 따라 다르지만 오랫동안 명령을 유지하는 것이다. 세 가지에 통달할 즈음이면 죽을 때라고 해서 음양사들 사이에서는 지사술知死術이라고도 불린다.
아베노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혼을 빼앗긴 어린 내관에게 다가가 뇌를 파먹을 만큼 저주를 퍼부었다. 어린 내관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게 보였다. --- p.89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단아는 그것이 좋았다. 어떤 특별한 일상도 단아는 거부했다. 그저 어제처럼. 무천이 약속했던 겨울이 지나 구릉에는 상당한 풀과 나무들이 심어졌다. 잡초는 벌써 구릉의 아래쪽부터 기세를 더했다.
구릉은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움을 더해갔다. 십여 년 사이, 몇몇 사람들이 무천의 명을 받아 바깥으로 나갔다. 독립운동을 위함이었고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보물이 들었을, 십여 개의 상자는 갈수록 줄었다. 명백히 순종이 전했을 유물을 들고 나간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향을 올렸고 산에다 막걸리를 뿌렸다.
4월이 되자 무천은 직접 한양으로 향했다. 서력으로 1926년 4월 첫 날이었다. 걸어서 한양까지. 더해 궁궐로 잠입할 시기까지 엿보아야 되는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무천이 떠난 지 26일째 되던 날, 마을에 마른벼락이 내렸다. 안천과 단아는 무서워 서로를 껴안았다.
5월이 되어 무천이 돌아왔다. 그는 세상없는 사람처럼 낙담해 있었다. 무천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터져나왔다.
“지난달 스무엿새에 융희황제께서 승하하셨네.”
무천의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비탄에 잠겼다. 몇몇은 자결을 하려 했고 또 몇몇은 마을을 떠나려 했다. 그때 마른벼락 같은 소리가 마을에 울렸다. 모였던 사람들의 가슴에서 피가 터졌다.
총이다! 누군가가 외쳤다. 마른벼락 같던 소리가 점점 더 마을에 울려 퍼졌다. 단아는 눈을 의심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눈을 부릅뜨고 마을 입구를 보았다. 총을 든 남자는, 견급 내관이었다. --- p.222~223
박연희와 진성욱은 손을 잡고 한 걸음씩, 남내천 방향이 일직선인 산 아래로 내려갔다. 박연희가 금속탐지기로 한 걸음을 탐지하면, 진성욱이 바닥에 있는 잡초를 제초기로 깎으며 전진했다. 그렇게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 두 시간 뒤 박연희와 진성욱은 모습을 감추었다.
여섯 시간 뒤 부대에 박연희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나돌았다. 밤이 되자 대대장과 장교들이 박연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대대장은 탈영으로 볼 것인지 실종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 박연희를 딸처럼 아낀다는 소문이 자자한 사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연희 대위가 보이지 않습니다. 낮에 남방한계선을 넘었던 거 같은데, 연락이 안 됩니다.”
“박연희 대위가? 지뢰 제거 업무를 하고 있지 않았나? 그 누군가 진 병장? 아니다, 진 병장은 다른 부대 사람이었나?”
사단장이 잠시 술에 취한 것처럼 중언부언했다.
“참담합니다. 박연희 대위 아버지가 실종된 지 이십오 년 만에 딸도 실종이 되다니요. 수류탄 투척 사고만 아니었어도 사단장님 진급도 더 빨랐을 텐데 말입니다. 진심으로 애석합니다.”
사단장이 슬픔에 빠진 건가 싶어 대대장은 아는 지식을 짜냈다.
사단장은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는 대신 부대 자체적으로 박연희를 찾아보라 명령했다.
그러나 박연희 대대의 어느 누구도 진성욱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눈앞에서 하얗게 피어올랐다 조금만 멀어져도 사라지는 담배 연기처럼. --- p.228~229
“여기쯤이었지?”
내가 윤정이다, 생각하며 오리걸음을 걸었다. 바로 뒤에는 덕남이 일한을 뒤따랐다. 일한과 윤정은 키가 거의 20센티미터 차이가 났다. 187센티미터인 일한에 비해 아무래도 걸음걸이 폭부터 좁았을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전방을 향해 내디뎠다. 윤정이 보이지 않았던 장소에서 40미터쯤 산 아래로 내려왔을까. 한 걸음에 이어 다시 발을 내딛는데 몸이 기우뚱 앞으로 기울어졌다. 황급히 손으로 땅을 짚게 된다. 그 순간 땅을 짚은 손이 바닥으로 쑥 꺼지며 반회전했다.
어, 어! 몸이 바닥으로 빠지며 머리부터 쓸려 들어갔다. 머리부터 회전하며 떨어진 탓에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중심을 잡아야겠다 싶은 때에 완전히 되구르며 어디인가로 안착했다.
이거였구나. 성인 남자의 보폭과 무게로는 움직이지 않는 발판. 한 발이 발판을 짚으면 일종의 버튼이나 스위치가 눌러진다. 거기서 딱 오리걸음 보폭으로 다른 발이 나가면, 산 아래를 향해 무게중심이 쏠리며 중심을 잃을 만큼만 기우뚱하게 된다. 첫 발에 기우는 정도라면 보통 땅을 잘못 짚었다고 착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두 번째 발로 중심을 잃은 사람이 한 손으로 또는 양손으로 조금 더 멀리 있는 바닥을 누르면 완전히 회전하게 되는 이중 함정이었다.
--- p.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