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에 요한을 만나 4년을 사귀었고 스물다섯 살 2월에 약혼식을 했다.
그날 밤 같이 있자고 술기운에 졸라서 따라갔는데 임신이 되어버렸다.
결혼식은 겨울로 예정되어 있었다.
아직 때가 아니라며 요한은 친구들도 많이들 한다면서 낙태를 하자고 했다.
나이도 나보다 네 살이나 많고, 좋은 학교도 다니고 있고, 무엇보다 남자라
서 아주 똑똑한 줄 알았다.
난 순진했고 수동적이었다.
막연하게 뭔가 불안했지만 그냥 그 말에 따랐다.
낙태란 나의 필요에 의해서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인 줄만 알았다.
그 땐 동네마다 산부인과가 있었고 아무데서나 쉽게 할 수 있었다.
아, 그러나 하늘이시여!
--- p.24
낙태를 하고 이틀 후에 하혈을 해서, 산부인과를 두 군데를 옮겨가며 지혈
이 되었지만 몸은 이상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손가락 발가락부터 관절들이 아파왔고 여름이 되어도 추웠다.
낙태하기 전에 양가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더라면 그런 우는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철부지였으니까 어른들과 상의를 했더라
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혼자서 한의원으로 병원으로 다니면서 치료를 해봤지만, 몸은 회복이 되질
않고 점점 악화되어 갔다.
1년 후에 혈액검사를 했는데 류마티스 관절염이라 하면서 현대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불치병이라 했다.
나는 불가능이란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노력하면 좋아지겠지 생각하고 한약을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나와 갑천과의 인연은 4년 전 여름이다.
아파서 거의 15년 동안 주일미사만 드리고 집 밖을 나와 보지 못하다가,
자전거 타고 나가는 막내를 따라 처음으로 갑천에 나왔던 날,
하늘과 바람과 생명의 땅에서 울리는 동화 같은 자연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잊힌 과거가 환생을 하듯 자아를 상실해 버린 가슴으로 빛이 들어왔다.
숨을 쉬고 살아있음이 실감났고, 갑천은 그 어떤 친구보다 가까운 벗이
되어 갔다. 집에 있으면 풀과 꽃과 새들 그리고 강물이 눈앞에서 삼삼하게
보였다.
“과거를 사는 사람은 우울감에 살고
미래를 사는 사람은 불안 속에서 살며
현재를 사는 사람은 행복 속에서 삽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지 않을 사람 하나도 없으니 지금 이 순간을 행복
하게 사세요.”
이 말씀은 또렷하게 들렸다.
--- p.40
아, 미래에 대한 공포.
관절이 아파 몸이 점점 변형되어 갈 때, 통증보다 더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다.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을 땐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불안을 견딜 수 없어 온갖 미친 짓을 다해버렸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이제야 알았다.
순간의 난제들만 바라보고 해결하면서 기쁨과 행복이 동행하길 빌어본다.
그 어리석은 깊은 늪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
울창한 산속을 휘도는 진하고 강한 측백나무 향이 신비롭다.
측백나무 잎을 뭉개서 코앞에 들이민 것만 같다.
잠자는 세포와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
눈길 머문 곳마다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 둥지들도 보인다.
차디찬 눈보라와 모진 바람에 젖은 세월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 p.48
‘아니 저 할매는 딱 보면 몰겄냐?’난 속으로 투덜거렸다.
요한이 “집사람입니다.”하니까 입을 크게 벌리고서 눈알을 굴리며, 한참이
지나도록 놀란 표정을 감출 생각을 안 한다.
내가 똑바로 할머니를 쳐다봤지만 나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찌그러진 양철냄비 같은 나는 투명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맛있게 먹고 있던 밥이 완전히 쓴맛으로 변해버렸다.
오늘따라 요한은 가발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좀 더 젊어 보였다.
나는 밤새 시달려서 더욱 늙어 보일 것 같다.
내 옆에 있던 할머니가 미안했던지 나를 보며 복인이란다.
‘복이 많은 사람?’ 그 말이 색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나의 신경은 예민해졌고 옆 자리를 수시로 주시했다.
노년의 두 부부는 고기랑 딱딱한 반찬도 맛있게 씹어 정말 많이 먹는다.
--- p.60
빈 가방을 들고 먼 길을 다니면서 요한도 인생의 학교로 제대로 입문했다.
서울대생이란 후광 효과는 사라져 갔다.
내가 아파 죽는다 해도 건성으로 보이던 하느님이 요한의 눈 속으로 선명하
게 들어왔고, 비통한 심정으로 하느님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고속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설사가 나와 버려, 팬티를 벗어 버리고 바지
만 입고 올 때도 있었다.
볼이 움푹 패여 코만 톡 튀어나온 얼굴이 영락없이 피노키오 같았다.
그렇잖아도 말랐는데 얼마나 말라가는지 정말 불쌍해보였다.
일도 하지 않고 다니기 힘들다며 나와 버리고 싶다 할 때마다, 좀 더 참아
보라고 했지만 나도 마음이 아팠다.
깊은 겨울밤 혀도 안 풀린 채
둘이는 얼기설기 엮인 거미줄 같은 웃음을 웃어야 했다.
성질 내지 말아야지 하는 양심이 괴롭힌 걸까?
나의 수호천사가 나타나 아파서 힘들어 하는데 도와주라고 한 걸까?
아침이 되기까지 여러 차례 깨워도 “불렀어?” 하면서 가볍게 일어난다.
마음 하나가 저리 돌변하게 하다니 서글프고 미안했다.
--- p.69
많은 불치병들이 그렇듯이 밤이 되면 더욱 힘들다.
때때로 감당하기 힘든 통증이 밀려온다.
오늘도 추위와 함께 통증이 심해졌고, 어둠을 타고 날아온 겨울밤의 소리
도 여기저기서 웅성거린다.
열려있는 옥상 문이 간헐적으로 부딪히는 소리, 낙엽 구르는 소리, 바람이
창살에 휘감겨 우는 소리, 새벽녘엔 고양이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비정상세포들이 무심한 광기를 발동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저
바람소리와 함께 몸 안에서 광란의 칼춤을 춘다.
지칠 대로 지쳐버리고 나면 창밖에선 여명이 밝아온다.
오늘도 이 싸움에서 몇 번을 추슬러 봤지만 무너져 버렸다.
--- p.74
고약을 붙이고 5주일이 지나가던 어느 날 밤이었다.
밤마다 내 신음소리를 듣고 있던 요한은 미쳐버렸다.
자다 말고 갑자기 일어나, 무릎에 붙여 놓은 고약을, 발악하듯 손으로 오
도독 쥐어뜯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고약이 어떻게 류마티스약이냐며 한밤중에 소리를 질렀다.
걸어야 했지만 아까운 걸 다시 주워 붙이기엔 너무 아팠다.
그 무렵이었다,
전등불 꺼진 캄캄한 밤에 이불 속에서 떨다 보면 이상한 소리가 났다.
바퀴벌레가 안방 벽을 타고 기어가다 떨어진 소리였다.
집이 얼마나 더러웠을까?
--- p.85
어느 날 아랫집 아주머니 목소리가 완전히 다른 색깔로 들려왔다.
화를 내는 시간이 다른 날보다 훨씬 길었다.
불길한 예감으로 창문에 서서 지켜봤다.
첫째와 셋째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반쯤 이성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또 무슨 말썽을 부렸을까?
야단맞고 들어온 아이들은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대굴대굴 구르며 웃었다.
큰놈이 계단 중간에 서서 아주머니가 대문을 열고 집을 나가면, 아랫집
마당에다가 날아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오줌을 쌌단다.
어느 날부터 혼자하기 심심해서 셋째를 데리고 함께 싸면서, 쌀 때마다
누가 멀리 날아가는지 시합을 했다 한다.
집 안에서만 있는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이들이 고소하게 웃는 소리가
들리면 사이좋게 잘 놀고 있구나 하면서 안심을 했다.
--- p.92
아 그러나 하늘이시여, 뭐가 또 남았을까?
약 부작용이 날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약을 먹으면서부터 생리가 멈췄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6개월쯤 약을 먹었는데 하혈을 해서 몇 달간 멈추질 않았다.
산부인과에 가니까 자궁내막증이라고 하면서 수술을 했다.
그날 밤부터 잠은 사라지고 오히려 선명한 피가 다량으로 쏟아졌다.
빈혈이 불러온 불면증은 수면제가 듣질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소변에서도 피가 나왔다.
거의 빈사상태였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도, 내가 할 수 있는 짓도 더 이상 없었다.
손을 놓고 주님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약 저 약을 끊고 모든 치료를 중단하니까 지혈이 되었다.
류마티스약의 약발은 딱 3개월간 유지되었다.
그 이후에 무릎 관절부터 급격하게 변형되어 갔다.
양약을 먹는 동안 몸 안에 남아 있던 면역세포도 사라져 버렸다.
--- p.105
집에 들어 온 막내의 얼굴에 무섭게 서려있던 공포심이 반으로 줄어보였다.
나는 순간적인 판단을 했다.
막내를 내 앞에 세워 놓고 주먹으로 이마를 사정없이 쥐어박았다.
엄마 노릇을 못해서 항상 따뜻하게만 대해 줬기 때문에 눈물이 가득 담긴
토끼눈으로,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나를 보며 떨고 있었다.
아, 바라만 봐도 불쌍한 이 아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여기서 내가 무너지면 모든 것은 끝난다.
누가 이 아이의 웃지 못 할 공포를 없애 주겠는가?
나는 철저하게 내 감정을 통제해야 했다.
알아듣게 설명을 했는데도 이렇게 무서워하면, 이보다 더 아프게 맞을 거
라며 차보다 더 무서운 얼굴로 밀어붙였다.
뜻밖에도 약효는 직방이었다. 다음 날부터 담벼락에 달라붙진 않았고 서서
히 차의 공포에서 벗어났다.
--- p.113
14년 전 어느 날의 일기이다.
‘어쩌자고 큰 놈은 고등학교를 다니다 말고 자퇴를 했을까?
오늘 아침에도 밥을 먹다 말고 싸우다, 나는 방바닥으로 반찬 뚜껑을 집어
던졌다.
조용해진 시간에 막내가 나에게 다가와서 심각하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엄마는 성인이 되기는 조금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얼떨결에 한 대 얻어맞은 나는 밖으로 눈길을 돌려 쓴웃음을 삼켰다.
이놈은 중학교 들어가서 전교 1등을 하더니, 하고 싶은 게임과 판타지소설
좀 읽다가 공부는 나중에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단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그 성적을 유지하라고 학원을 보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놈은 허구한 날 PC방을 드나들었고, 학원에서는
자주 결석한다고 연락이 왔다.
--- p.125
4일에 한 번씩 벌침을 맞았는데 두 달을 넘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사흘간 잠을 설쳐 가고 싶지 않아 많이 불안했지만 견뎌 내려니 하고 침을
맞으러 갔다.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버텨낼 수 있는 한계점을 넘어서버렸다.
침을 맞고 왔는데 호흡곤란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청심환을 먹어 보고 벌독을 해독한다 해서 밤 껍질 삶은 물도 먹어 봤다.
그 순간뿐이었다.
불안정한 상태로 잠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력이 남아 있을 때 벌침을 알았더라면 분명히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잠을 자 보려고 개고기 넣은 한약을 먹었지만 소용없었다.
수면제로 버티는데 갈수록 맥박이 빨라지면서 몸은 차가워졌다.
질식을 했다 깨어난 몸은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혼돈과 집착으로 절박한 상황은 정신까지 혼미해졌다.
--- p.228
젊은 날 신중하지 못해서 철없이 일을 저질러 버렸고, 건강을 잃어버리고
나서 화려한 꽃길이 아닌, 평범하지 않은 나만의 길을 걸어야 했다. 주님께
서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추한 꼴로 죽었던가, 미쳤던가, 폐인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부족한 나에게 참 삶의 길이 무엇인지도 가르쳐 주셨다.
지금도 때때로 힘든 고통 앞에 무너지지만, 내 안에서 진심으로 자유를 느끼고 작은 것에 만족할 수 있을 때 행복했다.
우리들의 삶이 이승에서 끝나지 않음을 알기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비우고
살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청한다.
--- 본문 중에서